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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후 부산 오륙도 인식의 형성과 전개
The making and development of recognition of O Ryuk Do in Busan, after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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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숭실사학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25집 (2010.12)바로가기
  • 페이지
    pp.45-80
  • 저자
    김인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3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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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clarify that why aroused the national interest and public attention on oryukdo and appeared the name in history map and book for the first time in the early late 18century. Traditionally, the Japanese people saw that Oryukdo was named by tides(So called, theory of tides or number). Incidentally, at that time the elite Koreans believed that the island numbers was changing on the viewing angle(So called, theory of angle or distance). However, these days scholar’s understanding of such theory was very fragmented. Such kind of understanding was not played in fragmented or superficial characteristics or curious about the aesthetic. To summarize, the naming of Oryukdo was provided for rapid changes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specially the Korea-Japan relation-ship in the late Chosŏn dynasty period. There are three historic reasons for this naming-process. In other words, Oryukdo name has incorporated the hope of Chosŏn dynasty (1)to stop the Japanese invasion (2)to keep friendly relations with Japan (3)to fight desperately the fear of storm around this. In the Korean modern society, it were added the new image such as (1)lighthouse which observed the japanese economic invasion. (2)milestones which gazed at the reunion the separated brothers. After the liberation(1945), adding the new image which look like brushwood-door in the Cottage home on the separated for home. These historic demands would have made the name and image on Oryukdo of today. Due to the historical request, Oryukdo could create the image of ‘the strategy point on coastal defense’ and ‘milestone for good-neighbor diplomacy’ in the late Chosŏn dynasty period. And historic changes of the colonial aggression, liberation and division in 20century, Oryukdo could add the image of ‘the exploitation of the witnesses’ and ‘milestones of nation-disperse and reunion’.
한국어
이 연구를 통하여 조선후기 이후 어떤 이유로 오륙도가 특별한 국가적 관심을 얻게 되었으며, 근대 이후 국민적 관심까지 모으면서 오늘날의 오륙도 이미지를 구축해왔는지 살폈다. 정리하면, 요컨대, 조선후기에 선명하게 자신의 이름을 기록에 올린 오륙도의 어원에 대해선 기왕에는 조수설, 숫자설, 시각설, 방향설, 원근설 등 다양한 설이 제기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해가 오륙도가 가지는 단편적인 외형적 특성이나 오륙도에 대한 심미적 호기심에서 발동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후기 오륙도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을 키우고 다양한 사서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 요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후기 오륙도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은 (1) 조선의 침략하는 일본군을 저지하는 海防基地라는 측면 (2) 일본과의 교린 과정에서 양국사신의 입출국 이정표라는 측면 (3) 풍랑이 거세 항해가 무척 어려웠던 苦海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근대사회에 들어서 오륙도는 (1) 일본의 경제적 침략을 목도하는 등대라는 의미에서 (2) 민족 이산과 재회의 이정표라는 새로운 의미가 추가되었다. 즉, 개항기에는 오륙도 인근의 어장에 대한 일본인 어민들의 무단 불법 조업과 그에 대한 조선정부의 저항(1888)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대륙침략에 필요한 물자 수송의 원활을 위한 등대 설치(1936) 등이 그 예이다. 또한 해방 후에는 귀국하는 수많은 동포들을 반겨주는 고향집 사립문과 같은 이미지도 부각되었다. 요컨대, 오륙도라는 이름의 형성에는 단순한 외형적 특징이나 조수간만 등의 피상적 요인이 아니라 조선후기 일본과의 교린 관계 회복이나 해방이라는 문제가 절실한 시대적 과제였고, 이러한 사회적 기운에 힘입어 오륙도는 ‘海防의 식별표’ 혹은 ‘交隣의 이정표’로서 그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후 일제 침략과 해방 그리고 분단의 역사 속에서 수탈의 목격자 혹은 민족 이산과 재회의 이정표라는 이미지를 더하게 된 것으로 본다.

목차

I. 머리말
 II. 오륙도의 등장
  1. 문헌과 지도상의 오륙도
  2. 五六의 의미를 찾아서
 III. 조선후기 오륙도 인식의 형성
  1. 海房의 식별표
  2. 交隣의 이정표
  3. 苦海의 표지판
 IV. 근대 이후 오륙도 인식의 확장
  1. 收奪의 증언자
  2. 학살과 이산, 재회의 정표
 IV. 맺음말
 부록 : 만세덕 비문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키워드

오륙도 만세덕 교린 해방 교린 고해 수탈 Oryukdo islands Coastal defense Neighbor policy Hard-ships Exploitation Dispersion 龍臺 離散

저자

  • 김인호 [ Kim, In Ho | 동의대학교 사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The Center for History and Human Heritage]
  • 설립연도
    1983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1983년에 조직되어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이론, 고고학, 미술사, 과학사 등 역사학과 인접학문의 우수한 논문을 폭넓게 소개하여 역사학 연구자들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회원 상호간의 긴밀한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조직하였다. 숭실사학회에서는 정기적인 학술발표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으며, 연 1-2회에 걸쳐 학술지 '숭실사학'을 발간해 왔다. 앞으로도 숭실사학회에서는 회원들의 연구 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보다 정기적인 학술강연회 및 월례발표, 단행본의 출간, 및 답사활동 등을 통해 보다 내실 있는 학회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숭실사학 [SOONG SIL SAHAK(The Historical Review of Soong Sil University)]
  • 간기
    반년간
  • pISSN
    2005-9701
  • 수록기간
    1983~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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