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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关于 “间岛惨变”研究与纪念问题
관우 “간도참변”연구여기념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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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10집 (2010.12)바로가기
  • 페이지
    pp.163-182
  • 저자
    许寿童
  • 언어
    중국어(CHI)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3404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2010년은 중화민국사상 일본군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일으킨 대참변—<간도참변>발생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20년말 일제는 동북을 침략하여 연변등지의 조선인부락을 토벌하고 3000여명의 조선인과 부분적인 중국인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간도참변>은 조선민족사상의 일대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도참변>에 대한 연구와 기념수준은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전문적인 저서가 없거니와 논문, 특히 중국어 논문이 적고 관련기념시설도 많지않다. 초라한 기념비가 몇개 있을 뿐이다. 또한 <간도참변>의 명칭에도 문제가 있다. 중국에서는 <경신년대토벌>이라고 부르는데 이 칭호는 연변과 동북조선인의 피해상황을 제대로 반영할수 없다고 본다. 하기에 <연변경신참안>등 참변진상을 돌출하게 하는 명칭이 필요하다. <간도참변>에 관한 연구와 기념측면에서도 차후에 발생한 산동제남참변에 비해많이 뒤떨어져있다. 제남참변에 관한 연구성과와 다양한 기념시설은 매우많다. 과거 매스컴관계자인 톰즈 밀러가 “간도문제의 중요성은 산동문제에 못지않다”고 말했듯이 “간도참변”은 “제남참변”과 똑같이 중요하다. 그러나 연구와 기념문제에서 양자사이에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은 재고가 요망된다. 상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고방식을 바꾸고 반일과 항일사적을 중시함과 아울러 일제의 침략에 의한 피해사실에 대한 연구와 기념에 대해서도 충분히 중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자금을 마련함으로써 <간도참변>에 대한 연구와 기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목차

국문초록
 1. 绪言
 2. “间岛惨变”及其特点
  1) “间岛惨变”的背景与概况
  2) “间岛惨变”的特点
 3. “间岛惨变”研究与纪念情况及存在的问题—与济南惨案的比较
  1) “间岛惨变”的名称问题
  2) “间岛惨变”研究与纪念情况及存在的问题
  3) 济南惨案研究与纪念情况
 4. “间岛惨变”研究与纪念中存在问题的原因及对策建议
 5. 结束语
 參考文獻

저자

  • 许寿童 [ 허수동 | 中国 广东省 汕头大学 法学院 公共管理系 副教授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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