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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아시아의 인구이동과 문화체험

日本人満洲移民の生きられた世界 -その記憶と経験-
일본인의 만주이민과 생활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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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10집 (2010.12)바로가기
  • 페이지
    pp.67-102
  • 저자
    蘭信三
  • 언어
    일본어(JPN)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3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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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discusses the lives and experiences that Japanese immigrants to Manchuria underwent during the 20th century. From 1932 to 1945, some 270,000 Japanese immigrants were sent to Manchuria for the purpose of supporting the Japanese army stationed. Out of them, 80,000 died during six months after August 9th 1945, 170,000 repatriated to Japan from May 1946 to
1949, and about 10,000 remained in China even after 1958. Accordingly, their lives were complicated and multi-facet, as settlers in ‘Manchukuo’, as refugees during the war, as repatriates, and as Japanese people who were left-behind in China. Since their experiences have been suppressed in societies both in Japan and China in the post-war period, they have never alluded to these experiences to outside. Manchukuo being formally a ‘puppet regime’ for China and Japan, those Japanese people who were left behind in China had carefully interacted with Chinese, and repatriates in Japan, with Japanese. The main reason for this is that their lives and experiences in ‘Manchukuo’ have been denied as a part of ‘dark’ history of a ‘puppet regime’. So, their memory was struggling with dominant histories narrated in Japan and China. That is the ‘politics of memory’.

목차

Abstract
 1. はじめに
 2. 20世紀前半期の日本人の国際移動と満洲移民
  1) 20世紀前半期の日本人の国際移民史
  2) 20世紀前半期の日本人の植民史
  3) 北米南米移民と勢力圏への植民の連関性
 3. 満洲への日本人の移住
  1) 農村経済更生運動と満洲農業移民事業の展開
  2) 満洲農業移民事業の概要
  3) 満洲農業移民事業に付与されたその性格
  4) 様々に投影される満洲移民
  5) モデルとしての分村移民・分郷移民
 4. 満洲での開拓生活
  1) 開拓地での生活
  2) 開拓生活の困難
  3) 近代家族の誕生、植民地での近代化
  4) 階級関係と民族関係と
  5) 開拓生活の成否の分かれ目
  6) 植民地都市生活者との比較
 5. 敗戦体験とその後のライフコース-引揚げと「中国残留」と
  1) 1945年8月9日以降の日々
  2) 敗戦から引揚げまでの難民期
  3) 集団引揚げか、中国残留か
 6. 想起される「満洲」、想起される「日本」
  1) 集団引揚者の戦後経験
  2) 中国残留者の戦後経験
 7. 記憶の語りを聞き取ることの意味
  1) 経験を知ること
  2) 記憶の語られ方
 8. 結びにかえて
  1) 戦後日本社会の「語りの磁場」
  2) 「否定された満洲」に係わった体験の解釈
  3) ふたつの「記憶の裂け目」
  4) おわりに
 参考文献

저자

  • 蘭信三 [ 란신삼 | 日本 上智大学 敎授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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