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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아시아의 인구이동과 문화체험

해방 이전 화북지역 한인이주와 ‘생활체험’
Koreans migration to the Northern China(화북) and their lives before the independence from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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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10집 (2010.12)바로가기
  • 페이지
    pp.7-39
  • 저자
    김주용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3403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region of the Northern China includes Tianjin, Hebei, Shanxi, Shandong, Henan and Beijing. The region was not only a main activity region of the Joseon Uiyeongdae but also an area where many korean independent fighters moved against Japan in the history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owever, after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Korean communities that independent
activists formed around the 3. 1 independent movement in 1919 started to be deformed by Japanese power and pro-Japanese organizations. Like Tianjin, inner mongolia was also thought to be an 'utopia' to establish independent movement base in the 1920s but, after the war, it was not an ideal place any more. Korean community changed into a society to force submission to Japan in the middle of the japanese invasion and their resistance. Of course, some people could have a chance to assimilate into the korean mainstream after the independence. This paper is intended to discover period and regional features of Korean community in the Northern China.
First of all, Korean community before the Sino-Japanese war was organized by independent fighters. The center of the Northern China, Beijing and Tianjin were the places that Korean independent movement progressed most vigorously in whole China including Shanghai. And also, they were selected to draw Chinese corporation by Korean fighters. Koreans migrated there by uneasy situation of Manjuria and 3.1 independent movement and developed independent
movement. Most of them were poor. For example, one of the great independent fighters, Lee Hoeyeong was said that he was difficult to keep living even below subsistence level. It shows that many Koreans in the region should endure the position as 'homeless people'. On the other hand, their residential area was expanded to Da dong, Shanxi and Bao tou, Nei menggu. The main features of the community in the region after the Sino-Japanes war were the invasion of Japan and submission to it. As Japan occupied the region fast, Koreans also migrated and formed new residence there. But their residential expansion caused their submission to Japan. Appearance of little capitalists and the increase of illegal traders such as drug traffickers were much related to Japanese military industry. Korean organizations under the power of Japan or
Japanese organizations could not be free from Japanese influence. In particular, as the number of jobless people was growing, the community became changed into an unhealthy and distorted society.
한국어
近화북은 북경을 비롯해서 천진,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하남성 등을 일컫는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화북은 조선의용대의 활동지였을 뿐만 아니라 이회영, 신채호 등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와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1919년 3․1운동 전후 독립운동가들이 형성했던 한인커뮤니티는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일본 세력의 부식과 그에 따른 친일단체의 성립으로 변형되었다. 천진뿐만 아니라 내몽고 지역도 1920년대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향’이었지만 중일전쟁 이후 더 이상 향기를 느낄 수없는 곳이 되었다. 침략과 저항의 한복판에서 한인사회는 또다른 굴종이강요되는 사회로 바뀌어 갔다. 물론 일부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해방 이후한국에서 주류사회에 편입되는 기회도 가졌다. 본 논문에서는 화북지역 한인사회를 시기별, 세부 지역별로 그 특징을 도출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먼저 중일전쟁 이전 시기의 한인사회는 독립운동 세력이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북지역 가운데 그 중심인 북경과 천진 지역은 상해지역을 비롯해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곳이며, 중국과의 협력을 이끌기 위해 선택된 곳이기도 하다. 그 유형은 만주지역의 정세불안과 3․1운동으로 국내에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한 유형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들의 생활상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은 입에 풀칠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화북지역 한인들은 ‘망국노의 처지’를 그대로 감내해야 했다. 한편 북경과 천진뿐만 아니라 산서성 대동과 장가구, 내몽고 포두까지 거주지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한인사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침략과 굴종이라고 정리할 수있다. 일제가 빠르게 화북지역은 점령하면서 한인들 역시 그 노선을 따라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일제에 의한 거주지의 외연 확대는 또다른 굴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소자본가의 등장도 일제의 군수산업과 연계된 경우가 많았으며, 아편밀매와 같은 부정업자의 증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제의 세력권 안에서 또는 일제 기관의 영향 아래에서 운영되었던 한인단체들의 성격은 일제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한인들 가운데 무직자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한인사회는 건강한 모습 보다는 왜곡된 형태의 한인사회로 정형화되어 갔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중일전쟁 이전 한인이주
  1) 한인사회의 형성
  2) 거주지의 외연 확대
  3) 생활실태와 직업구조
 3. 중일전쟁과 한인사회의 변화
  1) 화북정권의 성립과 한인사회
  2) 직업의 차별화와 왜곡
 4. 맺음말
 参考文献
 Abstract

키워드

화북 신팔균 이회영 이자해 부정업자 Northern China(Hua bei) Shin pal gun Lee hoi young Li zi hai homeless people

저자

  • 김주용 [ Kim, Joo-Yong |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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