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 恭愍王 代 燕邸隨從功臣에 대한 一 考察 -柳淑의 動向 및 人的 關係網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Yeonjeo(Beijing residence)-sujong(attendance) meritorious retainers(燕邸隨從功臣) in the Reign of King Kong-Min(恭愍王), Koryo Dynasty(高麗) - With a Main Focus on the trend of Yu-Sook(柳淑) and Human network(人的 關係網) - 고려 공민왕 대 연저수종공신에 대한 일 고찰 -유숙의 동향 및 인적 관계망을 중심으로 -
In this paper, we examined the Yeonjeo(Beijing residence)-sujong meritorious retainers(燕邸隨從功臣) who served Gang-reung-dae-gun(江陵大君), with a main focus on the trend of representative meritorious retainer-Yu-Sook(柳淑 ; 1316∼1368) and mutual Human network(人的關係網). Gang-reung-dae-gun, the second son of the King Chung-Suk(忠肅王), entered the Yuan(元) Royal court as a kind of hostage. He resided in Yuan for ten years. At that time, people of various inclination attended and served him. In 1351, Gang-reung-dae-gun returned to Koryo and ascend the throne. He is the King Kong-Min(恭愍王). King Kong-Min rewarded people who served him as the Yeonjeo-sujong meritorious retainers. Some meritorious retainers(功臣) constituted Human network(人的 關係網) through mutual marital relations. But meritorious retainers of diverse features aimed at different political lines. And they were gradually weed out through many political convulsions. Throughout the rebellion of Cho il-sin(趙日新 ; ?∼ 1352) in 1352․the anti-Yuan reformation policies(反元 改革 政策) in 1356․the revolt of Heung-Wang temple(興王寺) led by Kim yong(金鏞 ; ?∼1363) in 1363․the centralization of Shin-don(辛旽 ; ?∼1371 ;priest), some of meritorious retainers were removed or exiled. Yu-Sook(柳淑), the unique retainer who was related to contemporary rising reformers, was overthrown and murdered by Shin-don. It symbolizes the political decline of Yeonjeo-sujong meritorious retainers. Decisively, As Shin-don took the helm of state affairs after the revolt of Heung-Wang temple was suppressd, Yeonjeo-sujong retainers meritorious left political circles.
한국어
본 논문에서는 江陵大君(후일의 공민왕)을 시종했던 燕邸隨從功臣들에 대해서, 대표적인 공신이었던 柳淑의 動向 및 공신들 간의 상호 人的 關係網에 중심을 두어 고찰하였다. 高麗忠肅王의 차남인 강릉대군은 어린 시절 入元宿衛하여 10여년간 원에 머물렀다. 당시 다양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 그를 시종하였다. 1351년 귀국하여 즉위한 공민왕은 자신을 시종했던 인물들을 연저수종공신으로 책봉하여 포상했다. 이들 공신들은 상호 인아 관계를 통해 인적 관계망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서로 다른 다양한 면모를 지닌 공신들은 다양한 정치적 노선을 지향했고 여러 차례의 정변을 거치며 점 차 도태되는 양상을 보였다. 곧 1352년 趙日新의 난, 1356년 反元改革, 1363년 興王寺의 난, 1365년 辛旽 집권 등을 거치며 여러 공신들이 살해되거나 유배되었다. 수종공신 가운데 당대의 개혁․신진세력과도 연계된 獨步적인 존재였던 柳淑이 신돈에 의 해 실각한 이후 살해되었다. 이는 신돈이 집권하면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수종공신 세력이 결정적으로 정계에서 퇴장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할 것이다.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