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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및 동아시아 인문학

일제 강점기 만주 이주의 세 가지 풍경 -『고향 떠나 50년』을 중심으로-
Three Scenes of Manchurian Immigration during Japanese 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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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8집 (2009.12)바로가기
  • 페이지
    pp.209-230
  • 저자
    송현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1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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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Jung Pan Ryong’s “Fifty Years after Leaving Hometown”, three scenes of the Manchurian immigration are well described. While exile and study abroad in the Soviet Union is also explained, this is excluded since they all happened after the writer settled in the Korean Autonomous Region. First scene is the scene where the Jungs immigrate to Manchuria at night. Damyang is where the Jungs have resided for generations. They have friendly neighbors and in-laws, while there is no direct relative, and they have their ancestors’ graves. Also, there was the family’s beloved house. The location Damyang is unchangeable, but the lives of the Jungs change by people living there, and they could not afford to reside in Damyang anymore. They had to leave their hometown because of Japanese police’s unjust treatment and the colonial government’s exploitative policy. The family seeks new life in Manchuria, but they lose direction. They have to make a decision. Since they sneaked out of their hometown, the family could be punished when go back. Nonetheless, the Jungs even consider going back to their hometown. Second scene is the scene the Jungs going to the Younggu Farm which a Korean man from Younggu introduces them. The scene to the Younggu Farm is more detailed than the previous scene. Tension of being pursued by moneylender and Japanese police disappears, and how the family members do and what happen while going to the farm with half hope and half fear. The Younggu Farm is a plantation built by Japanese colonialists to establish an agricultural base in the Northeast area for invasion of China. The condition for their settlement is more severe than other immigrants. There is no choice but to do physical labor. Nevertheless, starvation is unavoidable. However, the second son’s school principal, Song Jae Won of Youngheung Elementary School finds out their story and provides humane treatment to them for the first time. The third scene is when the family moves to the northern Manchuria’s Hadong, by invitation of Mr. Song. While going to the Younggu Farm, the family had fear of starvation and being new to the place rather than hope. They walked on the land of nowhere, without knowing anyone. However, their footstep toward Hadong village is full of hope and thrill, and there are people waiting for them. Moreover, they could arrive at the destination by riding carriage and bicycle. They do not need to fear and suffer cold. The Jungs’ encounter with Mr. Song is lucky. Thanks to Mr. Song’s care, the Jungs could escape from poverty, and the children could study and become self-sustainable. Although Mr. Song goes back to Korea, the Jungs retain valuable assets of farm and knowledge. They could not settle safely and completely in Manchuria.
한국어
정판룡의 『고향 떠나 50년』에는 만주 이주의 세 가지 풍경이 잘 나타나 있다. 물론 하방이나 소련 유학 등의 과정이 서술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서술자가 조선족 자치주에 완전히 정주한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첫 번째 풍경은 정씨 일가가 야반도주하여 만주로 이주하는 풍경이다. 담양은 정씨 일가가 대대로 살아온 공간이다. 가까이 지내던 정든 이웃이 있고, 친척은 없으나 인척이 살고 있었고, 선조가 묻혀 있는 땅이다. 오랫동안 살았던 추억이 담긴 정든 집이 있는 곳이다. 담양이라는 공간은 불변의 곳이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 의해 정씨 일가의 삶은 변화되어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본 경찰 가족의 부당한 행패와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그들은 더 이상 고향에 머물 수 없었다. 그들은 만주로 이주하여 살길을 찾지만 길을 찾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야반도주한 처지이기 때문에 다시 고향에 돌아가면 몰매를 맞을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두 번째 풍경은 영구에서 온 조선 청년이 소개해준 영구농장을 찾아가는 풍경이다. 영구농장을 찾아가는 풍경은 야반도주의 풍경에 비해 구체적이다. 빚쟁이와 일본 경찰에 쫓기는 긴박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영구농장을 찾아가면서 느낀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심정과 이주를 하면서 가족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이 아주 상세히 표현된다. 영구농장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중국 침략을 위한 식량기지를 동북지방에 구축하기 위해 세운 농장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이종시사촌 언니 가족을 만나 정주하게 된다. 그들의 정주를 위한 조건은 다른 이주민들의 경우보다 더욱 열악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았다. 고작 육체적인 노동이 전부였다. 기아를 면하기 어려웠지만 둘째 형이 영흥소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그들 가족의 힘겨운 사연을 송재원 교장 선생이 알게 되어 처음으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 세 번째 풍경은 송 교장의 초청으로 북만 하동으로 이주하는 풍경이다. 영구농장을 찾던 때 그들은 희망보다는 굶주림과 낯설음에 두려움을 느꼈었다. 누구 하나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땅이요 멀고 먼 길을 걸어갔었다. 그런데 하동촌을 찾는 발걸음은 희망과 설렘에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차와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추위와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정씨 가족이 송 교장과 만난 것은 천운이라 할 수 있다. 송 교장의 보살핌으로 정씨 가족은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녀들은 공부를 하여 자립할 수 있었다. 송 교장이 조선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남아 있었다. 농사지을 땅이 있었고, 배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온전하게 만주 땅에 정주하게 된다.

목차

국문요약
 1. 문제의 제기
 2. 야반도주하여 만주로 이주하는 풍경
 3. 낯선 사람의 소개로 영구농장으로 이주하는 풍경
 4. 친지의 초청을 받고 하동농장으로 이주하는 풍경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정판룡 고향 떠나 50년 이주 풍경 이주민 정주민 Jung Pan Ryong Fifty Years after Leaving Hometown Immigration Scene Immigrant Settler

저자

  • 송현호 [ Song, Hyun-Ho | 아주대 인문학부 국어국문전공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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