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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楊花津이 간직한 근대의 기억
The memory of modernity on Yanghwajin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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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서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6호 (2009.08)바로가기
  • 페이지
    pp.193-227
  • 저자
    전우용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1090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영어
Yanghwajin, one of core ferry on western riverside of Han river, has been the best sightseeing resort since the founding of Joseon dynasty. And it was the main commercial point on the riverside in the latter Joseon period. Since the opening of ports, the natural scenes of Yanghwajin have continued, but it's human-geographic elements have changed significantly. The constancy of natural scenes means that the sudden changes of modernization passes the Yanghwajin and it's environs. So this area was a region of decline. The Greatflood in 1925 have deepened the decline of this area. After 1930s, Japanese imperialists have aggressed into China, and they have begun to develop Korea as a supply base for aggressive war. Yanghwajin and its environs also have begun to receive the baptism of colonial industrialization. Construction of railways, excavation of roads and building of a power plant have recovered the reputaion of Yanghwajin as the best point of sightseeing on the suburbs in Seoul. However, Yanghwajin at that time was not the same place at past. Around the Yanghwajin the new places have located, such as a graveyard for foreigners, Seoul central broadcasting station, Danginri power plant, Yongdeungpo industrial zone. The experience of colonial modernization which took advantage of economic condition of war, makes new sitespecificity on Yanghwajin.
한국어
한강 서부의 주요 나루터인 楊花津은 서울이 조선 왕조의 수도가 된 이후부터 勝景地로 각광받았다. 조선 후기에는 魚物 거래의 중심지로서 京江商業 발달에 일익을 담당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항 이후 楊花津의 자연 풍광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으나 인문 지리적 요소는 크게 변했다. 자연 풍광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근대화의 격변’이 비켜갔음을 의미하는바, 일제 강점기에 양화진 주변은 ‘쇠퇴하는 곳’에 불과하였다. 1925년의 을축대홍수는 인위적 방치로 인한 쇠퇴를 극단화한 자연 재해였다. 1930년대 이후 일제가 대륙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공업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양화진 주변은 비로소 ‘개발’의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철도가 놓이고 도로가 개설되었으며,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편리해진 교통 덕에 ‘風光野色이 近郊第一’이라는 옛 명성도 되찾았다. 그러나 이 때의 양화진은 이미 과거의 양화진과 달랐다. 양화진 주변에는 외국인 묘지, 경성중앙방송국, 당인리발전소, 영등포 공장 지대 등의 인위적 풍광이 덧붙여졌다. 전쟁 경기에 편승한 식민지 근대화의 경험이, 양화진에 새로운 ‘장소성’을 만든 것이다.

목차

I. 들어가며
 II. 개항과 楊花津
  1. 楊花津 開市와 龍山 移設
  2. 개항 이후 京江商業의 變動과 楊花津
 III. 일제 강점기 양화진 일대의 변화
  1. 을축대홍수와 양화진
  2. 당인리발전소와 양화진
  3. 경성부역 확대와 양화진
  4. 양화진 주변의 새 名所
 IV. 맺으며 - 근대 양화진의 장소성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전우용 [ Chun, Woo-Yong |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The Institute of Seoul Studies]
  • 설립연도
    1993
  • 분야
    사회과학>지역개발
  • 소개
    서울학연구소는 ‘서울학’을 육성, 확산하기 위해 서울 600년을 계기로 하여 1993년 서울특별시의 지원 아래 서울시립대학교 부설로 설립되었습니다. 서울학의 연구대상은 도시 서울입니다. 서울학은 서울의 장소, 사람, 일, 문화를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 과정과 힘을 탐구하여 서울이 지닌 도시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서울학여느 종합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학제적 연구를 지향합니다. 서울에 대한 여러 기성학문 분야(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건축 및 도시계획학등)의 연구관심과 성과가 상호조명되고 교차되는 데에 서울학에 영역이 있습니다. 서울학의 학문적 관심은 오늘의 서울을 만들어낸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지만, 그 실천적 관심은 현재의 서울에 대한 심화된 성찰을 통해 보다 나은 서울의 미래를 그리는데에 있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서울학연구 [The Journal of Seoul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225-746X
  • 수록기간
    1994~2018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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