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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라는 하나의 공간과 한중 두 민족의 마주보기 - 한국과 중국동북 현대문학에 투영된 ‘타자’ 형상 비교
A Space called Manchuria and Korean Chinese Two Nations Confronts - A Comparative Study about Korea and North East chinese Literatures' Images of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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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7집 (2007.10)바로가기
  • 페이지
    pp.40-67
  • 저자
    김창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0768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영어
Because they both belonged to the zone of Confucianism, from the ancient times China and Korea have had many cultural similarities and frequently have exchanged and influenced each other's literature. After Japanese occupation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literature of China (especially in the North‐East) and Korea were immersed in similar types of historical and linguistic context. At this paper I compare the images of Korea in North‐East Chinese literature and the image of North‐East China in Korean literature. Here I analyze images of ‘the Other’ in the modern literatures of both North‐East China and Korea. There were the following changes in the images of Korean in North‐East China after September 18, 1931, the beginning of the war in Manchuria. First, the images of patriots changed from nationalistic fighters to internationalistic fighters. Second, the boundary of the description of Korean images extended and deepened. Next, I divide images of North‐East China in the minds of Korean writers mainly Korean writers in Manchuria into three categories. These are images of the foreign land as the dark city in the eyes of elites, as the place of hope for immigrant peasants, and as the base of inde- pendence in the eyes of resistance fighters.
한국어
한중 양국은 유교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양국은 많은 문화적 유사성을 지녀왔으며 서로의 문학에 대한 빈번한 교류는 물론 영향을 끼치기도 했었다. 19세기말 일제강점기 이후 중국과 (특히 동북지역) 한국의 문학은 역사적, 언어적 맥락에 있어 비슷한 유형에 접어들기에 이른다. 본 논문을 통해 필자는 중국 동북 지역문학에 비쳐진 한국의 모습과 한국 문학에 비쳐진 중국 동북지역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과 동북중국 모두의 문학에서 “타인”의 이미지를 분석하고 있다. 1931년 9월 18일 만주국 내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동북 지역 내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아래와 같은 변화를 겪는다. 첫째로, 애국 지사의 모습이 민족적 투사에서 국제적 투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둘째, 한국에 대한 이미지 묘사의 영역이 넓고 깊어졌다. 다음으로, 필자는 한국 작가들(주로 만주국 내의 한국인 작가들)의 정신세계에 투영된 동북중국이라는 이국의 이미지를 엘리트들의 시각에 비쳐진 어두운 도시, 이주 농민들의 희망의 땅, 저항 운동가들의 눈에 비쳐진 독립의 본거지라는 세 가지 분류로 나누어 보았다.

목차

1. 만주공간과 타자형상의 상호성
 2. 디아스포라와 타자인식의 전환
  1) 한민족 디아스포라와 만주인식의 변화
  2) 중국인의 한국 이미지 전환
 3. '타자' 형상의 다양성
  1) 한국문학 중의 만주와 중국인
  2) 동북문학 중의 한국인
 4. '그들' 혹은 '우리' : 한중 양국의 전략적 동맹에 관한 기억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

  • 김창호 [ Kim Changho | 강원대학교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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