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research aims to analyze mapping processes and map contents of the 1:100,000‐scale Manchurian map made by Imperial Japan using 1,048 map sheets recently republished in Japan. The Manchurian survey for modern and large‐scale map‐making by Imperial Japan was started by the outbreak of Chino‐Japanese War and lasted until 1930s. The General Staff Headquarters and its subordinates such as Land Survey Board, Kwantung Army, the Headquarters for Northern China Front were involved in the mapping processes. The map covers Manchuria and some part of Russian territory extending up to 135°30´E in the east and 55°N in the north. In regard to the technical aspect of the mapping the Bessel 1841 ellipsoid and polyhedric projection were adopted. Such contents as transportation routes, physiography, vegetation, land use were represented in detail compared to other items. In addition many and various military items were shown and the terms such as “Military Top Secret” or “Secret” were stamped on the sheet, which mean that the map were used for military pur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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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가 제작한 1:10만 축척의 만주지도의 발간 및 제작 현황과 지도 내용을 최근 일본에서 복각된 1,048매의 도엽을 이용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일제의 만주에 대한 대축척 지도 측량은 청일전쟁 발발로 시작되어 193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며 여기에는 참모본부와 그 예하의 육지측량부, 관동군, 북지나방면군사령부 등이 관련되었다. 1:10만 만주지도의 공간적 범위는 동쪽으로는 135°30´E, 북쪽으로는 55°N으로서 청의 국경 너머 러시아 영토 깊은 곳까지 제작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연구자마다 그 범위가 약간씩 달라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지도제작의 기술적 측면으로서 일제는 Bessel 1841 타원체와 다면체도법을 적용하였다. 지도의 내용은 교통로, 地貌, 식생, 토지이용 등이 상대적으로 세분화되어 있고 군사적 항목이 많으며 軍事極秘와 같은 용어가 인쇄된 점으로 보아서 군사적 용도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1. 서론 2. 일제에 의해 제작된 만주 1:10만 축척 지도 1) 1:10만 만주지도 현황 2) 일제의 만주지역 측량 및 지도제작 과정 3) 청 및 러시아의 지도 입수와 이용 3. 1:10만 만주지도의 지도학적 특성 1) 타원체 및 투영법 2) 지도 도엽의 구성 4. 만주지도의 내용 1) 지리적 위치 2) 내용 3) 欄外 朱記 5.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