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 Wuel Dang(Kim Si-Seub) could be compared with Tao Yuan-Ming in that Tao Yuan-Ming have a resemblance concerning love for nature, a firm attitude about injustice, counter-measure in reality implementing Tao Yuan-Ming and living an idyllic life. Mae Wuel Dang tried to assimilate into Tao Yuan-Ming’s life style by quoting Tao Yuan-Ming’s particular poem’s line and anecdote. Mae Wuel Dang tried to encourage peasants to engage in farming diligently by composing a poem after being influenced by Tao Yuan-Ming’s Encouragement of Agriculture. And he stressed that governors must not call out peasant especially at the busy farming season by writing Love of People. Mae Wuel Dang also reflected Tao Yuan-Ming’s love for a chrysanthemum in his poem by comparing a mum which sends forth a sweet fragrance till withering with the symbol of a hermit and a noble scholar. Mae Wuel Dang’s philosophy for drinking showed similarity in that Tao Yuan-Ming tried to drink for forgetting solitude from life and disharmony with his society, while Tao Yuan-Ming tried to drink for escaping from humane conflict and worrying in his political surroundings. Although Mae Wuel Dang learned and grew up being influenced by Confucian ideas, he finally became a monk because he was so surprised and depressed about Se-Joh’s usurping the throne. Later, he was infatuated with Taoism by learning of some kind of alchemy. Therefore, Mae Wuel Dang’s literary idea is consistent with Tao Yuan-Ming’s whose idea was in harmony with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nd the cremation after his death showed his philosophy about devotion to nature.
한국어
도연명과 매월당은 어려서부터 자연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성품 면에서 자연을 좋아하고 名利를 멀리하였다. 도연명은 晉․宋年間에 君臣의 관계였던 劉裕가 군주를 시해하고 劉宋을 세우자 政治道義가 소멸된 시대에 벼슬자리에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마지막 벼슬인 彭澤令을 사직하고 전원으로 귀거래한 것과 매월당은 조선의 首陽大君이 癸酉靖難을 일으켜 不義한 방법으로 端宗의 왕위를 찬탈하자 정치도의가 상실된 정치풍토에서 벼슬에 뜻을 두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과거시험 준비를 하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중이 되어 방랑과 은거의 생활로 들어간 것은 兩人의 동질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매월당의 漢詩와 도연명 詩를 비교하면, 매월당은 도연명처럼, 不義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불굴의 情神으로 大道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읊어 兩人은 歸去來를 통해 大道實踐의 의식을 반영하였다. 매월당이 도연명처럼 전원에 歸隱하여 몸소 논밭을 경작하고 이에서 얻은 소득으로 가쁨을 느끼며, ‘固窮節’을 실행한 것은 儒家思想에 바탕을 둔 實踐躬行이다. 매월당이 도연명의 국화사랑과 연관시켜 시를 읊은 것은 찬 서리에 굽히지 않고 꽃이 시들 때까지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가을 국화의 節操가 隱逸者의 象徵이자 선비의 高潔한 자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도연명과 매월당은 사회와의 부조화와 인생무상에서 오는 고독감을 잊기 위해 술을 취하도록 마셨으며, 兩人이 지은 飮酒詩은 각각 千古의 興趣를 읊었다. 도연명과 매월당은 동질성이 있지만, 兩人은 서로 다른 국가에 태어나 각기 다른 시대상황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삶을 살아갔기에 相異點도 발견된다. 그 예로 매월당의 행적에는 도연명과 달리 범상치 않아 奇人이거나, 義人이거나, 혹은 狂人으로 행동한 점이 있고, 도연명은 儒家 본연의 자태로 自然으로 歸依할 때까지 始終一貫된 儒家의 가르침에 따라 선비의 자태를 유지하였지만, 매월당은 어려서 儒家의 학습을 받고 성장했으나 중년에 들어서는 중이 되 어 佛家人으로 행세하였고, 말년에는 鍊丹術을 익혀 仙家에도 접근하였다. 그래서 후인들은 매월당에 대해 “행동은 儒家이고, 모습은 佛家이다.(行儒而迹佛)” “마음은 儒家이고, 모습은 佛家이다.(心儒跡佛)”라고 평하였다. 이에 매월당은 佛家에서 죽자 바로 火葬하지 않고 매장했다가 3년 후에야 다시 화장한 것은 매월당이 도연명의 儒家 방식에 따라 自然歸依한 것을 쫓고자 했던 평소 생각을 주위 사람들이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