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조선 중기 삼당시인의 한사람인 손곡 이달에 대한 점진적인 학당의 과정을 추적하여 보려고 하였다. 손곡 이달은 정사룡에게서 두보를 배웠고 박순의 문하에 드나들면서부터 본격적인 학당을 지향하였다. 그는 當時의 ‘詩必盛唐’이라는 견해에 얽매우지 않고 성당 시인들의 장끼가 들어나는 시체를 중점적으로 학습하면서 심도 있은 학당을 시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당시의 源流라고 할 수 있는 전 시기의 문학총집『文選』(梁, 蕭統) 에 대한 학습을 중시하고 中唐 시기 일가를 이룬 유장경, 위응물에 대하여서도 홀시를 하지 않으면서 훌륭한 시선집을 선정하여 독파함으로써 학당의 폭을 넓혀갔다. 이달의 점진적인 학당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겪었다. 우선 당나라시기에 유행되던 시체에 대한 擬作을 지으면서 당시의 주제 및 분위기가 자신의 시적 문맥에 겹치도록 하여 당풍에 가까운 시를 창작하려고 하였다. 다음으로 각종 시체 및 시풍 사이의 자유로운 전환을 시도하면서 악부체의 이백 시 <遠別離>를 고체시로 적어본다든가, 두보의 칠언고시 <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에 유사한 내용을 자유분방한 시풍의 <漫浪舞歌>로 엮어보기도 하였다. 또한 왕유의 오언 절구의 <雜詩>와는 풍격과 시체를 달리하여 칠언 절구 <路中憶蓀谷莊示孤竹>를 지어보기도 하였다. 그 다음으로 이달은 시창작에서 唐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까지는 전 시기 문학작품에 대한 계승과 학습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후 이달은 전 시기의 문학작품에 대한 點化, 飜案, 換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자체의 독특한 시풍을 형성해갔다. 이달은 唐詩의 ‘말 밖에 그 뜻을 두다(意在言外)’, ‘즐거운 정경으로 슬픔을 써 그 슬픔이 곱절로 되게 하다(以乐景写哀, 一倍增其哀)’ 등등의 작시기교를 원숙하게 사용하면서 당풍의 경지에 이르는 시들을 창작하였다. 총적으로 이달은 학당의 과정에서 넓고도 높은 식견을 보여주면서 갖가지 꽃에서 화분을 채취하여 꿀을 만드는 벌과도 같이 당나라의 문학적성취가 높은 시인들로부터 그 영양분을 섭취하여 나중에는 자신의 독특한 시풍격을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나중에 ‘三唐詩人’ 가운데서도 문학적 역량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