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esent study purposed to examine Kim Gwang-joo’s Shanghai experiences and explain how his works configure Shanghai. This study was particularly focused on the time of his move to Shanghai, his relation with anarchists, and his life after the Chinese-Japanese War. Kim Gwang-joo moved to Shanghai in around 1928, and then learned the ideology of anarchism from Lee Hoe-yeong from around 1930 and sometimes made and distributed manifestos and declarations together with Jeong Hae-ri. This organization was Namhwa Club, which is believed to be subordinate to Namhwa Korean Youth Society. After that, Kim Gwang-joo kept a distance from Namhwa Korean Youth Society and devoted himself to literature, play and film activities based on Bohemian, a theatrical club. In around the autumn of 1936, he eloped with a Chinese woman, but came back to Shanghai and broke up with her. After having stayed a while in Shanghai occupied by the Japanese troop, he moved to Tianjin in January 1938 and, since then, had wandered about various areas of China until the liberation. Kim Gwang-joo, who had shown interest in literature from his arrival in Shanghai, published a literary coterie magazine titled 6 or 7 times, and then published another coterie magazine titled and participated in play and film activities. Publishing his works in Korean newspapers and magazines from around 1933, Kim Gwang-joo configured his Shanghai experiences in a number of essays and novels. After returning home on the liberation, however, he hardly dealt with his Shanghai experiences, only criticizing groups of people pursuing money and power and charging the society with its moral depra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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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김광주의 상해 체험을 검토하고 그의 작품에 상해가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김광주의 상해 생활 중에서 상해에 이주한 시기, 무정부주의자들과의 관계, 중일전쟁 이후의 삶 등을 중심으로 살폈다. 1928년 경 상해에 이주한 김광주는 1930년경부터 이회영에게서 아나키즘 사상을 배우고, 정해리와 격문과 선언문 등을 제작해 살포하기도 하였다. 이 조직은 남화구락부로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하부 조직으로 보인다. 이후 김광주는 남화한인청년연맹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극 모임 보헤미안을 중심으로 문학과 연극, 영화 활동에 열중하였다. 1936년 가을 경 중국인 처녀와 애정 도피를 하다가 상해로 돌아온 김광주는 그녀와 헤어진다. 일본군이 점령한 상해에 머물던 그는 1938년 1월 천진으로 이동하고 이후 해방 때까지 중국 여러 지역을 방랑하였다. 상해 도착 시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인 김광주는 김명수와 함께 '습작'이라는 동인지를 6-7차 발간하였고, 이후 보헤미안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하고 연극, 영화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33년경부터 한국의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발표한 김광주는 상해 체험을 여러 편의 수필과 소설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 후 귀국한 김광주는 돈과 권력을 쫓는 인간 군상을 비판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당대 현실을 고발할 뿐, 자신의 상해 체험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상해에서의 김광주 1) 상해로의 이주 시기 2) 남화한인청년연맹과의 관계 3) 중일전쟁 시기의 삶 3. 상해 체험과 김광주의 문학 4. 남는 문제들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남화한인청년연맹아나키즘중일전쟁해방인텔리무력 투쟁Namhwa Korean Youth SocietyanarchismChinese-Japanese Warliberationintellectualarmed struggle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