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Home 검색결과

결과 내 검색

발행연도

-

학문분야

자료유형

간행물

검색결과

검색조건
검색결과 : 1,296
No
1

가토 노리히로의 「전후후론」(1996) 재고 - ‘문학’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

이경희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110권 2017.02 pp.95-11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가토 노리히로의 「전후후론」(1996.8)을 중심으로, 이 전후 세대 비평가가 제시한 ‘문학’의 사상적 구상을 검토한 것이다. ‘문학’ 중심의 「전후후론」은 정치적・사회적 현안에 초점을 둔 「패전후론」(1995.1)의 후속논의이다. 물론, 「패전후론」에서도 ‘문학’에 의거한 ‘공공적 감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전후후론」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요시모토 다카아키와 다자이 오사무라는 두 축을 교차시키면서, 사상의 기점으로서의 ‘문학’을 전면화한 것이다. 가토는 ‘타자사상과 자기사상’으로 재편한 ‘정치와 문학’의 문제 틀 속에서 요시모토의 사상을 조명하고 있다. 걸프전 당시 요시모토가 헌법 수호를 표명하자 가토는 요시모토가 ‘문학’에서 ‘정치’로 이동했다고 판단하였다. 요시모토가 떠난 ‘문학’의 공석에서 가토는 ‘정치와 문학’의 대립 구도를 해제하고자 했다. 거기서 그가 제시한 방법은 끝까지 ‘문학’을 단념하지 않으면서 ‘정치’로 향하는 것이다. 한편, ‘정치와 문학’의 논쟁이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가토의 이러한 시도는 ‘전후’라는 틀을 벗어나 있다. 요시모토의 헌법 수호는 전쟁세대로서의 헌법 이해에 의거한 것이다. 때문에 가토는 요시모토의 헌법 이해에 대해 전후세대와의 단절이라고 하는 한계를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그가 주목한 것이 다자이의 문학이다. 그는 다자이의 「토카통통」(1947)에서 공적 윤리와 논 모럴(=‘문학’의 본질)의 대립을 해제하는 단초를 찾고자 했다. 특유의 직관과 집요한 상상력이 엮어낸 그의 「도카통통」론은, ‘전후’의 모럴(‘정치’)과 ‘전후 이후’의 논 모럴(=‘문학’)을 일원화하는 사상적 회로를 구상화한 것이다. 다만, 이 같은 구상화는 논리적 헐거움을 지니며 사상으로서의 이론화를 지연시키고 있다.
This paper aims to discuss the thought of ‘literature’ taking shape around Katō Norihiro's Theory of Post-postwar (August, 1996). Katō highlights Yoshimoto Takaaki's thought within the frame of the problem ‘Politics and Literature’ revised into ‘Self-thought and Nonself-thought’. When Yoshimoto declares safeguarding the Constitution, Katō considered Yoshimoto to have transformed into a man of ‘literature’ from a man of ‘politics’. During Yoshimoto’s absence from literature, Katō tried to break up the confrontation between politics and literature. Thereafter his approach was to head toward ‘politics’ without entirely giving up ‘literature’. From the viewpoint that the argument between politics and literature originated in the 1920s, Katō’s attempted to escape from the ‘postwar’ framework. Besides, Yoshimoto’s safeguarding of the Constitution was based on the war-generation’s understanding of the Constitution. Therefore, Katō emphasized the extent of the gap between the prewar generation and postwar generation in terms of their understanding of the Constitution. On the other hand, Katō was discovering the clue for overcoming the generation gap in Dazai osamu’s literature. By means of analyzing Tokatongtong(1947), he took concrete shape to the circuit to the thought to unify the ‘postwar’ moral(‘politics’) and ‘since postwar’ nonmoral (‘literature’). However, he does not even advance the logic to theorize this circuit to the thought of literature.

5,500원

2

여성혐오와 윤리상담

이경희

한국윤리교육학회 윤리교육연구 제44집 2017.04 pp.219-24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적개심, 타자화, 비난, 혐오 현상은 만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일상화, 전략화, 폭력화하면서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성혐오 현상은남녀 간 대립과 도덕ㆍ윤리적 문제이자 사회문화적인 문제, 자원에 대한 재분배를 요구하는 정의의 문제이다. 또한, 성 생물학과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과학적 문제, 성역할과 헤게모니의 이양에 관한 역사적 문제, 미래가치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가 포함된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본 논문은 최근, 도덕ㆍ윤리학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윤리상담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시도함으로써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포괄적, 통합적, 총체적 접근을 통해 ‘윤리상담’을 다른 상담적 접근과 차별화하고 여성혐오와 윤리상담과의 연결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도덕ㆍ윤리 수업에서 활용하는 수업모형 중에서 여성혐오 문제해결을 위한 윤리상담에 적용 가능한 모형을 분류, 제시하고 여성혐오 문제와 현상에대한 치유 가능성과 대안 및 한계를 논의하고 있다.
In the history of mankind, discrimination, exclusion, and misogyny of whether they are east or west, is a are ordinary and widespread phenomenon. However, recently, neo-liberalism has been intensified and new aspects have been emerging as a result of dailyization, strategicization and violence. The phenomenon of misogyny is a problem of justice that requires conflicts between men and women, moral and ethical issues, socio-cultural problems, and redistribution of resources. It is also a complex problem involving philosophical questions about the historical and future value of science, gender role and hegemony transfer in terms of sex biology and evolution. In this article, through a comprehensive, integrated and holistic approach to the phenomenon of misogyny, we try to differentiate the ethics counseling, from other counseling approaches and try to connect misogyny and ethics counseling. In addition, among the instructional models used in the moral ethics class, useful models are classified and presented in the existing ethics class ethics counseling, and the possibility of healing and alternatives to the female aversion are discussed.

6,900원

3

중등 기혼 여교사의 다중역할 갈등

이경희

국민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연구 제6권 제1호 2004.11 pp.29-7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9,400원

4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Ⅲ -유초신지곡 中 중령산 1, 2장을 중심으로-

이경희

한국국악학회 한국음악연구 제44집 2008.12 pp.87-11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Ⅱ’에 이어 계속되는 3번째 논문이다.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에서는 영산회상 중 세령산 선율이 분석되었고,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Ⅱ’에서는 유초신지곡 중 상령산 선율이 분석되었으며, 본 글에서는 유초신지곡 중 중령산 선율이 분석되었다. 대금산조의 경우에는 시김새가 대단히 중요하게 인식되어 이것이 비교적 정확하게 스승과 제자 간에 전달이 되는 경향이 있으나 대금정악에 있어서는 오늘날 특별하게 시김새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김새는 음악의 성격을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어서 이를 무시하고는 제대로 된 대금정악의 악상을 묘사할 수가 없다. 동일한 선율이라도 시김새 있는 연주와 시김새 없이 그냥 평범히 연주하는 것의 음악적 차이는 실로 크기 때문이다. 흔히 대금정악 연주자들 간에는 대금정악의 시김새가 각기 다를 수 있고, 김성진의 연주를 굳이 똑같이 따라할 필요성이 있는가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개성적으로 다르게 연주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발상이다. 그러나 정형화된 시김새의 틀은 없다고 하지만 김성진의 시김새를 등한시하고 더 좋은 형태의 시김새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모방할 만한 훌륭한 모델을 무시하고 목적지를 어렵게 돌아가는, 또는 헤매는 형국이 될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대금정악의 최고봉인 김성진의 대금 선율을 분석하여 그만의 특징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고, 구사되는 시김새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밝히며, 시김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김새의 모방할 만한 모델을 찾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김성진이 연주하여 녹음한 중령산 1, 2장을 오선보로 채보하여 원래의 악보(ꡔ국악교재(대금)ꡕ)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 분석하였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김성진이 연주한 중령산 1, 2장의 대금 선율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김성진은 ꡔ국악교재(대금)ꡕ의 악보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약간의 선율 변화를 추구하여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연주하였다. 연주자는 악보에 의지하여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따라서 악보가 있는 음악은 선율과 박자 음정 등에 있어서는 동일하게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김성진은 선율자체에 어느 정도 변화를 줌으로써 다른 연주자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였다. 둘째, 김성진은 출현음을 뒷부분에서 농음(林, 潢, 汰, 㳞, 淋)하거나 혹은 바로 농음(黃, 林, 潢, 汰, 㳞, 淋)하여 선율의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셋째, 김성진은 출현음을 퇴성(仲, 南, 潢, 汰, 㳞, 湳)하여 선율의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넷째, 김성진은 후대로 갈수록 이 같은 시김새를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음악적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This research is the third part which follows ‘An Analysis of Melodies of Daegum Performed by Nogseong Kim Seong-jin, Part I and II’. In this research, the researcher notated on the musical scores the first and second sections of ‘Jungnyongsan’ performed and recorded by Kim Seong-jin and analyzed them in comparison with the original scores. The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Kim Seong-jin did not completely follow the original score, rather performed with some variation in melodies which showed his own musical characteristics. Second, he tried varieties in melodies by Nongum(It means the technique of playing by trembling sounds) either immediately or later the appearing sounds(林, 潢, 汰, 㳞, 淋). Third, he also tried varieties in melodies by Toeseong(It means the technique of playing by shedding sounds)(仲, 南, 潢, 汰, 㳞, 湳). Fourth, in his later years Kim Seong-jin enriched the musical substance by using more and more ‘sigimsae’ which means the variations made by Nongum or Toeseong.

6,600원

5

국악과의 창설과 지역사회 문화발전의 관계에 관한 연구-청주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창설과 폐과에 기하여-

이경희

한국국악학회 한국음악연구 제54집 2013.12 pp.279-30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1987년 청주대학교 예술대학에 국악과가 창설되고, 이후 2010년 폐과된 상황에서 그간의 24년간 청주대학교 국악과가 지역사회의 국악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연구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학과가 신입생을 모집하기 일 년 전인 1986년 일 년간의 국악에 대한 지역의 신문기사를 조사하였고, 폐과된 2010년의 일 년간의 국악에 대한 신문기사를 마찬가지로 동일한 신문인 충청일보를 통해 조사하여, 국악과가 존속해 온 24년 후의 지역의 국악문화가 어느 정도 성장 변화하였는지 비교하였다. 기사의 양적인 비교는 1556% 성장하였고, 질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모습을 보여 청주대학교에 국악과가 창설된 이후 충청북도 지역의 국악문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청주대학교 국악과는 지역에서 국악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시키며 중등학교 국악 교육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주었고 그들 중에서 인재를 발굴하여 전공자로 배출시켰으며, 이들이 졸업한 후에는 예술 현장과 교육 현장에 뛰어들어 순환적으로 지역의 국악문화를 성장시키는 선순환적 고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졸업생들의 활동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지역에 분포하는 3대 관립 국악관현악단에서 비중 있게 활동함으로써 지역의 국악문화 성장에 기여하여 왔다. 둘째, 지역의 예술 강사와 방과후학교 교사로 활동함으로써 지역 국악교육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여 왔다. 셋째, 국악그룹 활동 및 개인 활동으로 지역의 국악문화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왔다. 청주대학교 국악과는 또 대학 주최로 전국 초․중․고 학생국악경연대회와 충청북도 중․고등학교 학생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여 국악인재를 발굴하는 동시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름․겨울 방학기간을 이용한 국악 강습을 실시하여 지역민이 바라보는 국악에 대한 품격과 위상을 높여왔다.
This research examined what influences the Departmen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of Cheongju University had on the local traditional music culture in Chungcheongbuk-do, for the past 24 years from the founding of the Department in 1987 through its closing in 2010. For this research, the local newspaper articles from Chungcheong Daily for one year before the Department began recruiting new students and after its closing, respectively, were reviewed, and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culture for those 24 years were compared. During this period, the number of newspaper articles had grown 1,556%, and the qualities of those articles had also been largely improved. Such facts strongly evidence the phenomenal cultural growth of Korean traditional music in Chungcheongbuk-do. The Departmen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of Cheongju University helped improve the imag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in Chungcheongbuk-do, had a positive influence on the educ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t middle schools, and discovered many talented young students who later majored in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became the center of a dynamic cycle of its development as teachers and music players after their graduation from Cheongju University. The activities of the graduates from Cheongju University can be grouped into three categories: First, by working at three Korean traditional music orchestras operated by local and provincial governments, those graduates have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local music culture; Second, as after-school teachers and local art instructors, the graduates have taken a major role in local education; and Third, as group and individual music players, they had become the foundation of debeloping local Korean traditional music culture. The Departmen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of Cheongju University had held both the local competitions for the students from Chungcheongbuk-do Province and the national competition to recruit the promising young talents in the field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also presented the education programs for local citizens every summer and winter. Such continuing efforts had contributed to the promotion of overall image and statu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in this local community.

5,800원

6

서용석 대금산조 진양의 시김새에 관한 연구

이경희

한국국악학회 한국음악연구 제61집 2017.06 pp.177-20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고에서는 서용석류 산조 중 진양을 분석하였는데 주로 시김새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한국음악이 시김새의 활용으로 선율적으로 유동성을 띠게 되고, 이 점이 서양음악과 차별화되는 아주 큰 특징이라는 것이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번에 서용석류 산조(중 진양)의 심층적인 분석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서용석류 산조 중 진양에서 사용된 시김새는, 장식음을 제외하고, 크게 3부류로 나눌 수 있는 데 그것은 농음, 흘려 내리거나 꺾어서 내기, 그 외의 경우 들이다. 둘째, 농음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아주 다양하여, 보통 정도로 농음하는 경우, 뒷부분에서 농음하는 경우, 횟수가 파악될 정도의 분명한 농음, 흘려 내리거나 꺾어 내면서 농음하는 경우, 지공을 모두 개방한 상태에서 치켜 올려 소리 내며 농음하는 경우 등이 있는데, 특히 계면조에서, 흘려 내리며 농음하거나, 꺾어서 농음하는 등 더 많은 종류의 농음이 사용되며, 긴 시가의 음을 처음부터 곧바로 농음하는 것이 특징이다. 셋째, 흘려 내리는 경우는 보통 정도로 흘려 내리기, 짧게 흘려 내리기, 길게 흘려 내리기, 넓은 음역을 흘려 내리기 등이 있으며, 계면조에서는 꺾는 음이 나타나는데 꺾은 다음 바로 농음하는 경우도 있다. 넷째, 그 외의 경우로 음을 끌어 올려서 내는 경우와 뒷부분을 강하게 힘주어 짧게 끊는 경우, 대금의 지공을 이용한 독특한 장식음 등이 활용되고 있다. 다섯 째, 서용석류 산조 진양에서, 우조 도입부의 경우, 음조직은 계면조이나 시김새에 의해 남성적이며 꿋꿋한 우조의 악상이 표현되고 있다.
In this research, from Seo Yong-sok style Sanjo Jinyang(very slow tempo) was analyzed, and mainly the use of Sigimsae was given an in-depth examination. It is commonly known that Korean traditional music has melodious fluidity with the use of Sigimsae, and it is the very unique characteristic which distinguishes Korean music from the Western music. In this research, an in-deth analysis of Jinyang from Seo Yong-sok style Sanjo confirmed this knowledge, and came the following conclusion: First, Sigimsae used in Jinyang from Seo Yong-sok style Sanjo can be classified into three kinds: Nongeum, Flowing or dropping, and the others. Second, Nongeum are so various as to include moderate vibration, vibration at the end, clear vibration whose beats can be counted, vibration with a flowing or dropping, high pitching vibration with all openings open, etc. Especially in Gemyeonjo Key more various kinds of Nongeums like Nongeum with a flowing or dropping are used, and note of long tone is vibrated right from the beginning. Third, flowings include a moderate flowing, a short flowing, a long flowing, a flowing over a wide range of notes, etc. In Gemyeonjo Key dropping notes are used and immediate vibrations after dropping are characteristic. Fourth, playing with pitching notes, playing with strong short cuts at the end, and are unique ornaments using Daegeum’s openings are also used. Fifth, Seo Yong-sok style Sanjo Jinyang’s introduction is consisted of Gemyeonjo Key that feels feminine way, but Sigimsae makes it change into a kind of the masculine and grand style which is originally shown in the Ujo of Sanjo. Sanjo was assumed to have appeared before the 19th century when modern music in Western countries approximately had appeared. While the Western modern music was a new style which came out of pursuing new music different from the existing one, Sigimsae seems to be a new style formed in our own way before it was affected by the Western music. Currently Korean traditional music, while variously trying in pursuit of new style music, faces the practices which limit its effort to get out of the influence of Western music. Therefore, it is assumed that more attention to Sigimsae and its active application might help open a new way for the composition of new Korean music as well as great performance. Sigimsae as a musical technique which complements the plainness of single tunes, lies in the opposite to harmony. Sigimsae and harmony cannot coexist. It can be argued that Korean music pursues Sigimsae, while the Western music pursues harmony.

6,600원

7

복음화2000-성 평등한 한국천주교회를 위한 제언 3

이경희

우리신학연구소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786호 2007.05 pp.18-1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모든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8

복음화2000-2 성 평등한 한국 천주교회를 위한 제언 5

이경희

우리신학연구소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788호 2007.06 pp.20-2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모든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10

글로벌 경제위기하에서 중동의 에너지 산업 변화

이경희

한국무역보험학회 무역보험연구 제10권 제2호 2009.06 pp.127-14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그동안 풍부한 석유판매수익금(오일머니)으로 상대적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중동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경기 침체가 석유 수효 감소효과로 나타나 국제유가 하락에 영향을 미쳐 석유 의존도가 높은 중동의 경제 성장률을 후퇴시키고 있다. 중동의 주요 진원지는 부동산 관련 금융시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확대되어 중장기적으로 경기침체가 가속화 될 경우 부정적 영향이 크게 미칠 전망이다. 그러나 중동 산유국 정부가 축적된 오일머니로 직접 금융손실을 통제하며 유동성 공급 및 금융시장 보호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충격이 완화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주요선진국은 포스트오일 시대를 준비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저탄소 사회구축을 요구하는 시민 사회의 압력으로 대체에너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중동은 불안정한 석유 시장과 에너지 고갈이라는 전 세계적 이슈에 동참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미래의 산업 그린비지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Global economic crisis is expected to affect the Middle Eastern economy that has been considered as to be safe due to the high revenue(oil money) from the oil export. Economic performance of the Middle Eastern oil producing countries, which are highly dependent to the oil export, is deteriorating given the recession of the global economy. Financial crisis originated from the withdrawn of the investors due to the sub-prime mortgage problem is expected to affect the Middle Eastern economies deeply if the problem continues. Recently, advanced countries are developing substitute energy with the green economic policy. This policy is expected to continue because it could help to achieve energy selfsufficiency of the energy importing countries from the expansion of the use of renewable energy, which is also the demand and pressure of the population. In this case, the demand of the oil from the Middle Eastern oil producing countries would continue to decrease given the expansion of use of renewable energy. Therefore, Middle Eastern oil producing countries are developing new industries that could reduce the reliance of the unstable oil export market. In this paper, we would analyze the Middle Eastern economy that is based on oil export and the transformation of energy industry of these economies from the change of global economic environment due to green energy development policy.

6,000원

12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Ⅳ-영산회상 중 상현도드리를 중심으로-

이경희

한국국악학회 한국음악연구 제45집 2009.06 pp.219-24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Ⅱ’,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Ⅲ’에 이어 계속되는 4번째 논문이다. 앞의 논문들에서는 각각 영산회상 중 세령산, 유초신지곡 중 상령산 1, 2장, 유초신지곡 중 중령산 1, 2장의 선율들이 분석되었으며, 본 논문에서는 영산회상 중 상현도드리의 선율이 분석되었다. 전통적으로, 구전 되어온, 대금산조의 경우는 시김새 하나하나가 정확히 전달되어 온 반면 악보에 의존하여 전수가 된 대금정악의 경우는 오늘날 그 시김새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연주자마다 다른 형편이다. 그러나 대금정악의 연주에 있어서 시김새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시김새없이 연주가 된다면 대금으로서의 특징 자체를 잃어버린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김성진이 남긴 녹음자료를 채보하고 기존의 악보와 비교하여 어떻게 시김새를 넣어서 연주하였는가를 밝히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국악사양성소에서 김성진이 참고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국악교재(대금)』악보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 김성진 대금정악>, 그리고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녹음자료의 상현도드리 선율을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김성진은 영산회상의 상현도드리를 연주함에 있어 『국악교재(대금)』선율을 악보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미세하게, 약간, 그리고 상당히 다르게 변화시켜 연주하여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다. 둘째, 김성진은 장식음을 많이 사용하여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다. 셋째, 김성진은 농음을 사용하여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다. 농음의 방법은 처음부터 바로 농음하거나(黃, 仲, 林, 無, 潢, 汰, 㳞), 처음에는 농음하지 않다가 뒷부분에서 농음하는데(仲, 林, 潢, 汰), 대체로 음이 짧은 경우는 바로 농음하고 길게 늘어질 경우에는 뒷부분에서 농음하였다. 넷째, 김성진은 퇴성을 사용하여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다. 다섯째, 김성진은 후대에 갈수록 더 많은 선율변화, 장식음, 농음, 퇴성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적 내용을 보다 풍부하고 깊게 만들었다.
This research is the fourth part which follows ‘An Analysis of Melodies of Daegum Performed by Nogseong Kim Seong-jin, Part Ⅰ, Ⅱ and Ⅲ’. In this research, the musical scores of the two ‘Sanghyon Doduri’s from ‘Yongsan Hoesang’ performed and recorded by Kim Seong-jin was notated and analyzed. They were compared with the previously known scores. The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Kim Seong-jin, not completely following the original score, performed “subtly,” “a little” to “quite” differently to express musical varation. Second, he pursued musical variations by using a lot of grace notes. Third, he tried varieties in melodies by “Nongum” which is the technique of playing by trembling sounds. The technique of “Nongum” is played either by directly trembling from the beginning (黃, 仲, 林, 無, 潢, 汰, 㳞) or trembling only at the later part but not in the beginning (仲, 林, 潢, 汰). Usually for short notes, he played “Nongum” directly, and for extended notes at the later part. Fourth, he also tried varieties in melodies by “Toeseong” which is the technique of playing by shedding sounds. He used “Toeseong” at the relatively limited range of musical notes (太, 無, 汰). Fifth, in his later years Kim Seong-jin enriched his musical substance by using more and more variations in melodies, grace notes, “Nongum” and “Toeseong”.

7,200원

13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V - 가곡 중 우조 초수대엽, 우조 이수대엽, 언락을 중심으로 -

이경희

한국국악학회 한국음악연구 제49집 2011.06 pp.203-25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선행연구인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 ‘녹성 김성진의 대금 선율 분석 연구 ’에 이어 5번째로계속되는 논문이다. 앞의 글에서는 영산회상 중 세령산, 유초신지곡 중 상령산 1 2장, 유초신지곡 중중령산 1 2장, 영산회상 중 상현도드리의 선율이 분석되었고, 이어 본 논문에서는 가곡 중 우조 초수대엽, 우조 이수대엽, 언락의 선율이 분석되었다. 국악사양성소에서 발간한 『국악교재(대금)』악보와 그가 연주한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⑤ 김성진 대금정악>의 이 곡들을 비교하여 김성진의 음악적 특징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김성진은 우조 초수대엽, 우조 이수대엽, 언락을 연주함에 있어 『국악교재(대금)』의 악보대로만 연주하지 않고 미세하게, 약간, 그리고 상당히 다르게 변화시켜 연주하여 음악적인 변화를추구하였다. 둘째, 김성진은 이 3곡을 연주함에 있어 비교적 장식음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악보에 충실히 의존하는 대신 장식음을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셋째, 김성진은 농음을 사용하여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는데, 대개 음의 길이가 짧을 경우는 처음부터 바로 농음하고, 음의 길이가 길 때는 처음에는 농음하지 않다가 뒷부분에서 농음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추구하였다. 넷째, 김성진은 퇴성을 사용하여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다. 다섯째, 김성진은 우조 초수대엽보다 우조 이수대엽에서, 우조 이수대엽보다 언락에서 더 넓은 음역대의 음들을 변화시켜 줌으로서 뒤의 곡으로 갈수록 더 다양하게 변화를 주어 연주하였다. 일반적으로 악보가 있으면 연주자는 악보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변화있게 연주한다 하더라도 그 변화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김성진의 경우 악보와 연주 사이의 차이가 실로 크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김성진에게 악보는 악보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똑같이 연주해야 하는 엄격한틀로 인식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악보에 기록된 선율을 똑같이 연주하지 않고 약간이라도 다르게변화하여 연주할 수 있다는 사고, 그리고 동일한 선율 속에서도 하나하나의 음들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농음하고 퇴성하고 하여 변화 있게 연주해야한다는 사고가 김성진이 『국악교재(대금』에 기록된 가곡 중 우조 초수대엽, 우조 이수대엽, 언락을 대하였던 태도인 셈이다.
This research is the fifth part which follows Part I, Part , Part III and Part IV of ‘An Analysis of Melodies of Daegum Performed by Nogseong Kim Seong-jin’. In this research,the melodies of ‘Chosudaeyop in U-key’, ‘Isudaeyop’ in U-key and ‘Onrak’ among Korean traditional authentic songs are analyzed.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First, Kim Seong-jin did not completely follow the original score, but played with a subtle, a little, and a considerable variations in melodies to pursue his own musical variety. Second, he did not strictly depend on the score, but played freely with grace notes. Third, he used Nongum (the technique of playing by trembling sounds) to pursue musical variety. With short notes he usually used Nongum from the beginning, and with long notes he used Nongum in the later part, but not in the beginning. Fourth, he also used Toeseong (the technique of playing by shedding sounds) to pursue musical variety. Fifth, Kim Seong-jin played songs in the later stage with more variations by changing a much broader range of notes for ‘Isudaeyop in U-key’ than ‘Chosudaeyop in U-key’, and then for ‘Onrak’ than ‘Isudaeyop in U-key’.

10,200원

14

데까르뜨의 도덕론에서 관대함과 사랑의 문제

이경희

한국가톨릭철학회 가톨릭철학 제15호 2010.10 pp.97-12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데까르뜨에 의하면 행복은 영혼의 완벽한 만족에 있다. 이 만족은 최고의 선을 향유하는 데서 오는 결과이다. 그리고 최고의 선은 덕의 실행이다. 세속적 덕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이 라이프니츠가 비판한 것처럼 스토아학파의 체념의 윤리학을 연장하는 데 그친다면 데까르뜨의 도덕론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임시적 도덕률에 불과할 것이다. 데까르뜨에게서 확정적 도덕률은 어떻게 가능할까? 최고의 선이 덕의 실행이라고 할 때 우선 이는 자유의지를 기초로 한다. 자유의지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을 향유한다면 우리는 영혼의 완벽한 내적 만족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유의지를 적절히 행사할 때 자신을 존중하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균형잡힌 자기 존중은 관대함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데까르뜨에 있어 완벽한 내적 만족을 이룬 사람은 관대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유의지에 기초한 관대함은 한계를 갖는다. 관대한 사람이 자유의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외부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자유의지는 자기 외적 기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최종 근거인가? 여기서 데까르뜨는 최고의 행복을 최고선을 소유하는 데 두었다고 할 때 그 연장선에서 이 최고선을 신으로 규정한다. 결국 데까르뜨는 세속적인 도덕성의 뿌리를 신성에서 구한다. 자연에 대한 순종에서 지혜를 구하는 스토아학파의 세네카를 비판하고 초월적이고 무한한 신성에 호소함으로써 그는 라이프니츠가 요청했던 희망의 도덕을 제시한다. 그는 신의 무한한 의지에 복종하는 지혜를 통해 현실에서의 고통을 이겨내는 위안을 제공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이나 관대함 등이 인간의 유한한 조건에 그치지 않고 신적 기준과 교통함으로써 비로소 가장 완벽한 도덕성에 이르게 된다. 도덕의 기준이 유한한 인간의 기준에 제한될 때 이는 임시적 도덕률이 될 수밖에 없다. 데까르뜨에 있어 초월적 기준에 대한 요청은 확정적 도덕률을 위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의 도덕률은 근원적으로 신적 기준을 기초로 하는 형이상학으로부터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산재한 그의 여러 언급들을 검토함으로써 지상에서의 인간의 덕들이 초월적인 기독교의 덕들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신성에 기초한 덕 개념을 통해 자신의 도덕적 입장 속에 확정적 도덕률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추론해볼 수 있다.
The Problem of Generosity and Love in Descartes’s Moral Theory -Crossing the Border of Stoic ‘Morality without Hope’- Lee, Kyung-Hee (Yonsei Univ.) According to Descartes, true happiness consists in the perfect satisfaction of the soul. This satisfaction is the result which comes from achieving the highest good. The highest good is the exercise of the virtue. As Leibniz criticised, if Descartes’s effort to accomplish the secular virtue amounts to no more than an prolongation of the ethics of resignation in the Stoics, his moral philosophy could be nothing but a provisional moral code which couldn’t give us hope. What makes the definitive moral code in Descartes be possible? When the highest good is the exercise of the virtue, first of all, this condition is based on our free will. If we enjoyed the highest good which we can obtain through the free will, we can have the inner perfect satisfaction of the mind. And when we properly exercise our free will, we have the self-esteem. Owing to this self-esteem, the generosity can be possible. Thus the person who have the inner perfect satisfaction is the generous man. But the generosity based on the free will have the limit. How the generous man can solve the problem not reaching of the power of his free will. Is human free will the final foundation not requesting any its exterior criterion? When Descartes asserts that the true happiness consists in having the supreme good, he determines the supreme good as God. Descartes finds out the root of the secular morality from the divinity. Criticizing Seneca in the Stoics who pursued the wisdom from the obedience to the law of nature and appealing to the infinite divinity, he presented the morality with hope Leibniz claimed. Descartes would like to console people in their actual sufferings through the wisdom of resignation to the will of God. Descartes suggests that the love and the generosity that we experience in this world are not amount to human finite conditions and a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divine criteria. When the criteria of moral judgements is restricted to human finite measure, the moral code based on that criteria could be nothing but a provisional moral code. Descartes requests the transcendental criteria for the definitive moral code. We can find out that Descartes’s moral code can be possible fundamentally by his metaphysics founded on the divine criteria. From Descartes’s many moral scattered remarks, we can gather that human virtues in this world are rooted in Christian virtues in his moral philosophy. Therefore we can infer that he waned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the definitive moral code through concepts of Christian virtues in his moral stand.

7,000원

15

어느 전공투세대의 민주주의론 ― 가토 노리히로의 전후론을 중심으로 ―

이경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411-43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전후 첫 세대 문예비평가 가토 노리히로가 ‘전후’의 문제들과 마주하며 구상해 온 ‘민주주의’의 사상적 궤적을 검토한 것이다. 가토는 1960년대 말, 전후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기운 속에서 ‘민주와 평화’ 이념의 신화화를 부정(전공투운동)하며 사상 형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냉전 종결 전야에 그는 『미국의 그림자』(1985)로 논단에 데뷔했다. 여기서는 ‘반미’와 무관해 보이는 ‘전후’ 일본의 예사롭지 않은 내셔널리즘의 분출을 예감하고 내셔널리즘의 극복을 또 하나의 과제로 설정하면서 ‘젊은 민주주의자’ 에토 준과 ‘노년의 민권론자’ 나카에 조민을 횡단했다. 나아가 포스트 냉전기의 전후론을 대표하는 『패전후론』(1997)에서 그는 ‘민주와 평화’의 신화를 해체할 사상적 방법론의 확립을 시도하면서 이를 적용한 헌법 재선택론, 애도를 통한 사죄론을 제시했다. 또 근년의 『전후입문』(2015)에서는 난바라 시게루의 전면강화론과 헌법의 평화적 수정론을 제고하면서, 내셔널리즘의 극복(『미국의 그림자』)과 신화적 민주주의 재편(『패전후론』)을 하나의 연속체로 꿴 대미자립안을 개진했다. 가토는 현재 일본의 정치 상황에 대한 민주주의 실천의 ‘직접적인 커미트먼트(활동)’라는 점에서, 『전후입문」이 자신의 전후론으로서 지니는 이례성을 언급했다. ‘직접적인 커미트먼트’란, ‘전후’의 기점이 지녔던 세계성을 회복할 ‘국내적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가 표방하는 민주주의는 이념 그 자체보다도 일본의 대미자립을 지탱하는 저항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후입문』 이전의 논의들과 연속해 있다.
This paper aims to disclose the whole path of Katō Norihiro’s postwar theory. As one of the first generation ‘postwar’ literary critics, he has deeply examined ‘postwar’ issues such as Constitution, US-Japan relationship, democracy and nationalism. In his latest postwar theory, Introduction to Postwar(2015), Katō reconsidered Nanbara Shigeru’s advocacy of an overall peace and the peaceful amendment of Constitution. Consequently, he proposed the idea of self-reliance from America, which synthesizes the overcoming of nationalism and the reorganization of mystical democracy in a single continuum. As Katō tries to form a ‘national consensus’ on the scheme ‘worldness of the entrance of postwar= idea of democracy and peace’ in Introduction to Postwar, his ultimate aim of Japan’s self-reliance from America seems to be a natural consequence of the previous works America’s shadow(1985) and Theory after the Defeat(1997).
本稿は、戦後第1世代の文芸評論家で、冷戦終結の前夜から「戦後」の問題に取り組んできた加藤典洋の思想の軌跡の全貌を明らかにしたものである。彼は、論壇デビュー作である『アメリカの影』(1985)において、「反米」とは無縁に見える80年代の日本からナショナリズムの噴出を予感し、江藤淳(「若き民主主義者」)と中江兆民(老年の民権論者)を交差しつつ、ナショナリズムの克服という思想的課題に取り組んだ。一方、ポスト冷戦時の戦後論の先駆けとなった『敗戦後論』(1997)においては、神話としての「民主と平和」を内破するための思想的方法論を確立し、それを踏まえた憲法「選び直し」論や謝罪論を展開した。それから、最近の『戦後入門』(2015)においては、南原繁の全面強和論や憲法の平和的修正論を見直し、ナショナリズムの克服(『アメリカの影』)と神話的民主主義の再編(『敗戦後論』)とを繋いだ対米自立案を構想した。加藤は、『戦後入門』にふれ、現在日本の政治状況への「触接的なコミットメント(働きかけ)」という点で、自分の戦後論としては異例的だと述べている。ただそれは、これまでの思想的軌跡からもわかるように、「戦後」の入り口にあった世界性、それをふまえた「国内のコンセンサス」を作り上げるためのもので、最終的には、日本の対米自立を念頭においたものであった。その意味で、『戦後入門』の異例さも『アメリカの影』や『敗戦後論』によって着実に用意されたものだと言える。

6,100원

16
17

복음화2000-2 성 평등한 한국 천주교회를 위한 제언 7

이경희

우리신학연구소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790호 2007.06 pp.21-2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모든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18

축사

이경희

국제관광학회 국제관광학회 학술대회 주5일제와 국제관광 ; Five-day Workweek and International Tourism 2006.06 p.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20

니체의 주인도덕에 기반한 인성교육 모형개발

이경희

한국교양교육학회 교양교육연구 제11권 제6호 2017.12 pp.475-50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한국은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을 특별히 제정할 만큼, 인성교육은 지금 우리에게 화두이다. 인성교육의 목적은 인간적인, 인간다운 성품의 소유자가 되어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말은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자유의지를 실현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말이다. 한국은 경제 강국으로 발전했으나 한국인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한국인은 권력을 원하며 그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의 지렛대인 더 많은 돈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정치적으로 해방되었지만, 한국인은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돈을 새로운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인은 너무 오랫동안 사대주의 사상에 매여 주인의식을 함양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한국인에게 주인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인성교육은 주인의식을 함양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주인의식을 함양하는 방안은 두 가지이다. 우선 자기 자신이 가치의 척도가 되어 주위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 다음 삶의 고통을 긍정하고 그것을 삶의 필연적 계기로 삼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인간은 고통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역량이 확장되어 갈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면, 교육의 최종 목적도 행복이 되어야 한다.
Personality education is now issue for us as Korea specially enacts the Humanity Education Promotion Act in 2015. The aim of humanity education is to nurture human beings who can become owner of human character and live “humanly”. Living humanly is meaning to try to live as the subject of life itself, realizing free-will, getting out of restraint and oppression. It is “not slave but living as the master of life”. Korea has developed into an economic country but Koreans are getting poorer. Because Koreans want power and first the lever of power, much money. Koreans could not enjoy freedom and made money a new owner though Korea was politically liberated. Koreans have not been able to afford time good enough to cultivate their masters’ consciousness historically because we were in the idea of toadyism for a considerable long time. The sense of mastership lacks to Korean. Therefore humanity education should focus on cultivating the sense of mastership. There are two ways of cultivating the sense of mastership. First, I must have a habit of giving value to things around me, making myself a measure of value. Then I have to build up a training to affirm the pain of life and make it the inevitable moment of life. Because man overcomes suffering and feels genuine happiness as his power expands. If the ultimate goal of life is happiness, the ultimate goal of education should be happiness.

7,300원

 
1 2 3 4 5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