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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직 아악부의 궁중무 전승

김영희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2호 2016.09 pp.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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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강점기에 이왕직 아악부에서 궁중무가 연행된 양상을 연구한 논문이다. 이왕직 아악부는 일제강점기에 이왕가(李王家)를 관리하기 위해 설치․운영했던 이왕직의 직제 속에 있었다. 이왕직 아악부는 이왕가의 제사를 모시는 일이 주요 업무였고, 그렇기 때문에 명칭도 아악부(雅樂部)였었다. 이왕직 아악부의 인적 기반이었던 아악부원양성소는 1919년에 1기를 시작으로 1941년에 6기까지 모집했고, 음악과와 보통학과의 과목들을 가르쳤다. 아악부원양성소 초기에 제사에서 추는 일무(佾舞)만 교육했으나, 1926년부터 ‘법무(法舞)’라는 이름으로 궁중무도 가르쳤다. 궁중무 교사는 김영제, 함화진, 이수경, 성경린, 김보남이었다. 이왕직 아악부 시기에 궁중무 공연은 어전공연(御前公演), 해외공연, 초청공연, 이습회(肄習會) 공연, 기록을 위한 공연이 있었다. 어전공연은 ‘고종탄신62세축하연’(1913), ‘순종오순축하연’(1923), ‘영친왕환영연’(1930)에서 행해졌다. 이 잔치들은 서양식 의례로 진행되었고, 궁중무는 여흥의 일환으로 추어졌다. 3회의 어전공연이 있었기에 궁중무가 후세에 전승될 수 있었다. 해외공연은 일본 교또(京都)부의 초청을 받은 공연이었고, 외부 초청공연은 주요 인사나 외국인들을 위한 악무 공연들이었다. 그리고 아악사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이습회 공연이 아악부의 내부와 외부에서 있었고, 영상 촬영을 위한 공연도 있었다. 이 촬영은 총독부가 조선의 문화들을 조사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일본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이왕직 아악부에서 연행한 궁중무는 <처용무>, <수연장>, <포구락>, <무고>, <봉래의>, <가인전목단>, <보상무>, <춘앵전>, <장생보연지무>, <향령무>, <연백복지무>, <만수무>와 <선유락>, <검기무>, <헌선도>, <항장무>와 민속춤인 <승무>가 연주되었다. 또 총독부의 지시에 의해 일본 황기 2600년을 기념한 <황화만년지무>(1940)도 창작되었다. 이왕직 아악부 시기의 궁중무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일제의 강점이라는 정치적 환경과 서구 지향으로 변하는 공연 문화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of the transmission patterns of court dance at Yiwangjik-Aakbu during Japanese rule. The study first examined Yiwangjik-Aakbu in the context of the Yiwangjik organization, which was established to manage the royal Lee family during Japanese rule. Yiwangjik-Aakbu's main duty was to hold ancestral rites for the royal Lee family, which explains the title “Aakbu.” The study then examined the curriculum of the Aak Student Training Center, which functioned as a base for human resources for Yiwangjik Aakbu. The training center was set up in 1919 and taught general subjects in addition to music. In its early days, the only type of dance it covered was Ilmu, which was performed during ancestral rituals. In 1926, the court dance was introduced as a regular subject at the training center. During the Yiwangjik-Aakbu period, the court dance was performed at the palace, overseas, by the invitation of outside organizations, as a part of Yiseuphoi, and for recording purposes. The court dance was performed at the palace to commemorate the “62nd birthday of King Gojong” (1913), the “50th birthday of King Sunjong” (1923), and as a “welcoming ceremony for King Yeongchin” (1930). Those banquets followed the Western ceremonial process, with the court dance performed as part of the entertainment. Moreover, it was performed overseas by the invitation of Kyoto, Japan. When it was performed by the invitation of outside organizations, its audience included major figures and foreigners. It was also performed at an event hel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here were Yiseuphoi performances, which aimed to improve the Aaksas’ skills, in and outside the Aakbu. The court dance was also performed for videotaping purposes as part of a work to examine Joseon culture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based on its political calculations. The court dance performed for those occasions included Cheoyongmu, Suyeongjang, Pogurak, Mugo, Bongraeui, Gainjeonmokdan, Bosangbu, Chunaengjeon, Jangsaengboyeonjimu, Hyangryeongmu, Yeonbaekbokjimu, Mansumu, Seonyurak, Geomgimu, Heonseondo, and Hangjangmu, as well as the Buddhist dance (僧舞), a type of folk dance. In addition, Hwanghwamannyeonjimu (1940) was created to commemorate the Japanese history of 2600 years by the order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he court dance of Yiwangjik-Aakbu was performed in the political environment of Japanese rule and in the modern performance environment oriented toward the Western styles, thereby inheriting the tradition of the Korean Empire.

6,700원

2

‘구비문학(口碑文學)’이라는 개념과 범주의 형성 과정 탐색

김영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7집 2015.10 pp.54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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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 탐색의 핵심 대상을 언어로 규정할 때 이는 크게 ‘구술언어’와 ‘문자언어’로 대별된다. 문학의 역사가 이 두 가지 언어 사이의 길항 관계나 교섭 양상을 핵심 동력으로 전개된다고 할 때 ‘기록’과 ‘구술’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서술하느냐 하는 것은 문학사 연구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구술’과 ‘기록’의 문제는 ‘구술에서 기록으로의 이행’이라는 진화론적 도식을 공고히 하거나 ‘구술언어=피지배언어’, ‘문자언어=지배언어’라는 환원론적 이중언어 공식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인식되어왔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인식의 배후에 ‘구비문학(口碑文學)’이라는 개념과 범주가 자리잡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구비문학’이라는 말 속에는 서로 엇갈리며 때로는 부딪히는 ‘구술’과 ‘기록’의 관념이 기묘하게 동거하고 있다. 시간성에 얽매이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구(口)’와 공간적이면서 고정적인 관념을 가리키는 ‘비(碑)’가 서로 붙어 있고, 여기에 리터러시(literacy)에 입각한 개념인 ‘문학(文學, literature)’이 결합되어 있다. 서로 모순되는 관념들의 이와 같은 기묘한 동거는 ‘구비문학’이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에 개입한 의지와 지향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긴장과 역동을 짐작케 한다. ‘구비문학’이라는 학문 범주 형성의 씨앗은 일제강점기 일본인과 조선인 학자들이 주도한 ‘설화’ 및 ‘민요’의 수집과 연구에서 맨처음 발견된다. 해방 후 다양하게 전개된 탈식민의 지향 속에서 ‘구비문학’은 제국/식민주의 담론이자 식민지 ‘조선학’의 하위 영역을 구성하던 ‘민속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의 하위 영역으로 재편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구비문학’이 ‘한국문학’의 하위 범주로 구성되어 안정적인 위치를 형성한 것은 해방 직후나 1950년대가 아니라 1970년대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 ‘한국문학’은 ‘민족문학’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하면서 식민지 경험의 단절면을 지우는 지속성을 확보하고 ‘민족문학’ 내부에 민중적 지향을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이와 같은 연구 지향에 부합하는 것이 바로 ‘구비문학’이었다. 이 글은 ‘구비문학(口碑文學)’이라는 개념과 범주가 어떤 동기와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는지 살펴보고 이와 같은 용어의 발명이 이후 문학사 인식과 서술에 남긴 흔적을 따라간다. ‘구비문학’이라는 개념의 계보학적 탐색 작업은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오래도록 견고한 틀을 유지해온 구술-기록을 둘러싼 관념, 역사적 도식, 관계망 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성과를 이끌어낼 것이다.
This study is intended to analyze historical formation process of the conceptualization and the categorization of ‘oral literature’. In Korea, the study and the investigation of oral transmission(for example folktale, myth, legend, folksong, proverb, riddle and so on.) has been started from colonial period as a substudy of folklore. The term ‘oral literature’ was made by researchers of Korean literature in 1960s. The ‘oral literature’ became to be a branch of Korean literature, deriving out of folklore at the time. It is a significant event in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research. The core theme is to cognize and to narrate tension, rivalry, interchange and contrast inherent interaction between orality and literacy.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the relationship of orality and literacy has been interpreted towards the tendency of intensifying the idea that the culture has evolved into literary culture from oral culture, and discourse that oral language has belonged to the subjugated class and literary language has belonged to the establishment class. The term ‘oral literature’ came into light to the field of the research of korean literature in the 1960s, but was not established as a branch of korean literature until the 1970s. In those times, the researchers of korean literature intended to formulate ‘korean literature’ as a ‘national literature’ to find continuity, removing severance from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made by colonial experience, and the properties of the people as the subjugated class in ‘national literature’. The formation of ‘Oral literature’ accorded with the purpose of korean literature research in 1970s. The escape from ‘Korean folklore’ meant that ‘oral literature’ was recognized as a substudy of Korean literature and that it finally got to get out of the shadow of the colonial period. Korean folklore derived from ‘Choseon folklore’, which has been deeply influenced by Japanese folklore. Korean literature was formed as a ‘national literature’, and it has symbolic meaning of breaking away from colonialism. But the term ‘oral literature’ connotes a contradiction between orality and literacy. So we need to interpret and solve the contradiction, and to trace the historical process of the formation of ‘oral literature’ in Korean literature genealogically.

9,100원

3

불평등의 기차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 「세계화 시대와 소외된 노동」에 관한 응답

김영희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65집 2013.12 pp.7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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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본소득을 제안하는 임경석의 「세계화 시대와 소외된 노동」에 대한 논평 논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소외는 근본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상품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에 기인한다.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신자유주의’로의 변모를 통해 영구화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은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전 세계의 시장을 하나로 연결시켰고, 보호 장치 없는 약소국가의 시장을 열게 만들었다. 보호 무역 철회, 이로 인한 약소국의 경제적 예속화를 전제로 한 시장의 세계화는 정보 혁명으로 이어지고, 대형 마켓이나 인터넷 없이도 행복했던 제 3세계의 시민들까지도 시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효율성은 자국의 경제를 보호할 힘도 장치도 갖고 있지 못한 약소국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호주의 정책을 표방해 왔던 강대국을 위한 효율성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방식의 효율성은 부의 분배를 차등화 했다. 국가 간 빈부 격차 심화로 인한 기아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이에 못지않게 한 국가 내에서의 경제적 상층과 하층의 빈부 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임경석은 이러한 불평등의 문제와 노동 소외를 치유할 대안으로 ‘글로벌 기본소득(Global Basic Income)’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과연 기본소득은 불평등의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논자는 그가 제안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짧은 논의를 통해, 글로벌 기본소득이 소외를 극복할 의미 있는 정치적 치유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This Thesis is a review on Im Kyung-suk’s thesis “The Globalized age and alienated work”. An alienated work is basically due to unfair of the exchange between the bourgeoisie and the working in the capitalistic world. Inequality of exchange is perpetuated by the Neo-liberalism. We have to minimize the intervention of nation for economic efficiency and this neo-liberal idea connects most markets around the world by the flows of goods and the circulation of money. So it tried to bludgeon into the markets of a weak nation. The Globalization of markets is required the retraction of protected trade policies led to the information revolution. The citizen of a third-world country gathered on the Globalization of markets. An economic efficiency, it is a profitable for powerful nation which claim to stand for protectionist policy, it’s not a profitable for a small and a weak nation which don’t have a power to protect their markets. Therefore a distribution of wealth is different in grades. The world is plagued by a starvation and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is more seriously widening. Im Kyung-suk makes a proposal Basic Income to make a stop inequality and cure the alienation of labor. I will bring in problems of Global Basic Income. I will be open doubt that Basic Income is going to be a political Cure.

4,800원

4

중국과 북한의 농업집단화에 대한 비교 고찰

김영희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제35집 2012.04 pp.417-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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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중반 중국과 북한은 모두 사회주의이념에 따라 사회주의적 개조의 일환으로 농 촌에서 농업집단화를 실행하였다. 중국과 북한의 농업집단화는 중국공산당과 북한노동당의 사회주의노선과 농촌정책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강력하게 추진되었는데 이는 농민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가정구조와 사회관계 등 각 방면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본고는 중국과 북한의 농업집단화의 전반 실행 과정에 대한 비교와 고찰을 통하여 지난 세기 전사회주의권에서 실행되었던 농업집단화 운동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자 한다. 아울러 국제적 범위에서 나타난 이러한 특수한 정치현상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유익한 교훈과 계시를 줄 수 있다.
In the 1950s,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made the old small-peasant economy a part of the socialist reform in line with the concept of socialism, and started its agricultural cooperative movement in countrysides. According to the lines on socialism and the countryside policies of the DPRKLabor Party, the cooperative movement was thoroughly promoted ,which brought great changes to the peasant’s way of thinking, values, family structures, social relations and so on. This thesis compared the process of agriculture collectivize between Chin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n order to to get deeper understanding of agriculture collectivize reform carried out in socialism circle of last century. Meanwhile, it will provide helpful lessons and reference for the future development of human society, through the study of this special political phenomenon happened worldwide.

6,400원

5

간호학생들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태도 및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김영희

한국심리협회 심리행동연구 제2권 2호 2010.12 pp.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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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인식 및 태도를 조사하고 효과적인 자원봉사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자원봉사 경험이 있는 105명의 간호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본 연구 결과 참여한 대학생은 자원봉사활동을 자유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발성’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으며 자원봉사활동의 제도화에 대해서는 긍정적 반응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 이유가 우리사회에 도움이 필요로 하는 불우한 이웃이 많기 때문이라고 이타적 동기가 가장 많았다. 참여 대학생의 자원봉사 제도 및 방법에 관한 인식 조사 결과에서는 자원봉사를 학점으로 이수하는 것과 아닌 것에 의견이 나뉘어 있으며 자원봉사를 학점화 하는 것이 싫어하는 대상자는 자원봉사를 하는 형식적인 봉사보다는 대가없이 순수한 봉사를 불우 이웃 등에게 제공함으로써 함께 사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러므로 나 자신의 성장과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봉사에 가치를 두고자 함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본 연구를 통한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인식변화는 단순한 학점취득 및 취업에 필요한 것에서 이웃에 대한 진정한 봉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변화를 가져왔으며 자원봉사 제도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 온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대학생들은 전공분야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결망을 통한 공식적인 제도적 지원을 마련된다면 고급 인력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 할 수 있으리라 본다.
This research treat nursing students general recognition, necessity of the institutionalization about voluntary activity. This research used a descriptive survey design. The subjects were 105 nursing students on experimental voluntary activity. SPSS program was used to analyze the collected data and statistical data on real number and percentage were obtained. The effects of the research are as follows. (1) Students gave voluntary thing a great significance. Nevertheless, they had affirmative opinions o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se activities. It means that they express sympathy in its social need. So it is necessary for them to be participated in voluntary activities by the positive public relations and institutional settlements. (2) The motive of students participation for those activities are mostly altruistic like the public service mind of the unfortunate people. Consequently to give rise to their participation, such motives must be stimulated. (3) Students generally have high intellectual faculties. Therefore many various programs which they can make the best use of major field must be developed, If not so, their abilities can't be put to practical use effectively. (4) Students not only have the positive attitudes toward giving points for the voluntary activities but also want to determine activity for themselves, the development of the program regarding the self-regulation of the students at most is needed. The voluntary activities offer not only the charitable act of helping others simply, but also the instructive experiences in personal like. Furthermore, these activities have the great instructive worth of contributing to good welfare society. In conclusion, the voluntary activity must be able to be activated, settled down through the institutionalization.

6

“독일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

김영희

제주평화연구원 JPI 정책포럼 No. 2009-17 2009.12 p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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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2차 대전 후 전승국인 미.영.불.소에 의해 4개 지역으로 분할되어 점령 통치를 받다 1949년 9월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1949년 10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수립되어 동.서독으로 분단됨.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4개 지역으로 분할되어 점령 4개국이 직접 관할하는 “특수지역”으로 동독내에 위치한 “섬”과 같았음.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이 통일 될때까지, 베를린문제와 독일통일문제 등 독일전체에 관련된 사항은 전승 4개국의 권한과 책임 사항이었음. 서독은 세계 3대 경제대국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국가의 주권에 제약을 받는 나라였음. 따라서 독일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통일이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1985년 3월 소련에 고르바쵸프가 등장한 후 소련 및 동구권에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전파되었고, 동독에도 1989년 1월부터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대량 시위가 급속히 확산되었음. 1989년 여름 폴란드, 체코, 헝가리의 서독대사관에 동독탈주민이 대거 진입하고, 급변하는 정국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됨. 1961년 8월 13일 동독이 주민들의 대량 탈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베를린장벽은 1989년 11월 9일 동독공산당 대변인의 “역사적인 말실수”에 의해 순식간에 붕괴됨. 유럽에서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이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시기와 방법으로 붕괴된 것임. 그리고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스스로 편입하는 방식의 동.서독 통합이 이루어짐. 필자가 가까이서 본 독일통일은 하나의 “종합예술품”임. 독일통일은 100만이 넘는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고, 통독주역은 동독주민들이며, 서독 정치가들의 정확한 기회 포착과 과감한 추진력, 서독의 막강한 경제력의 뒷받침, 서독의 노련한 외교력, 서독 공무원 집단의 저력과 전문성, 통일 후 30년 동안 동쪽지역 재건을 위한 세금 인상을 감내하는 서독주민들의 인내심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예술품”이라고 봄. 한국의 분단 상황은 독일과는 매우 다름. 한국은 대외적으로 주권의 제약을 받는 국가가 아니지만, 전쟁을 겪은 남.북한의 관계는 동.서독의 관계와 비교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임. 따라서 독일통일이 한국의 모델이 될 수는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분단극복을 위해 시행한 많은 성공적인 사례와 통일과정에서 행한 실수는 한국의 분단극복을 위해 여러 시사점을 주고 있음. 한국은 통일을 대비한 준비에서 독일통일이 주는 교훈을 적극 연구하고 우리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임.

5,500원

8

7,200원

9

농업집단화 제재 소설의 인물유형 연구 - <개간된 처녀지>ㆍ<산촌의 변혁>ㆍ<석개울의 새봄>을 중심으로 -

김영희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제24집 2008.08 pp.227-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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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20년대로부터 5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주의권에서는 사회주의이념에 따라 낡은 소농경제형태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의 일환으로 농촌에서 농업집단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따라서 사회주의권에 속했던 여러 나라 문단에는 농업집단화를 제재로 한 문학작품들이 속출하였다. 이런 문학작품들은 농업집단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계층, 계급의 동향 및 그들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를 통하여 일련의 인물들을 부각해냈다. 이런 인물들은 대개 농업집단화를 주도하는 인물형상, 농업집단화 과정에서 방황하고 동요하는 인물형상, 농업집단화를 반대하고 파괴하는 인물형상 등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형상들은 부동한 민족, 나라의 작가들에 의해 부각된 만큼 그 구체적인 양상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특점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농업집단화 제재 문학작품들의 비교 연구에 한 근거를 마련해준다.본고에서는 소련, 중국, 북한의 대표적인 농업집단화 제재 소설의 인물형상에 대한 비교 고찰을 통하여 농업집단화에 대한 해당 소설의 대응 양상의 일단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During the 1920s to 1950s, in order to carry out socialism reform, the socialism circle strongly pushed forward the agriculture collectivize according to the ideology of socialism. The agriculture collectivize is a step of socialism reform. On this background literature works related to this subject appeared in socialistic countries. These literature created a series of characters through the tendency and complicated relations of different classes. These characters can be classified into three types: the character of people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agriculture collectivize; the character of unstable; and the character of people who opposed and destroyed agriculture collectivize. However, those characters developed their own features in different writers' works from different countries and nations, which proved the foundation for comparition and study of agriculture collectivize style literature. This thesis studied how literature reflect agriculture collectivize reform, through the comparison and research of the representative novels of the Soviet Union, China and North Korea.

5,500원

11

해방공간의 전통춤

김영희

한국춤문화자료원 춤과 지성 3호 2006.12 pp.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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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12

韓國における3歲未滿兒担?の保育者と保護者の育兒意識に關する硏究

김영희

한국일본교육학회 한국일본교육학연구 제11권 제1호 2006.08 pp.177-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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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promote the quality of child care for young children under 3 as a survey research of caregivers and parents perspectives of a child‐rearing consciousness in Korea. The data of the study were collected using a rating scale for parents. These questionnaires for caregivers and parents were translated into Korean by researches based on questionnaires originally developed by Suwa. A total of objects were 250 child care centers caregivers and 250 parents in Seoul and Kyounggido. The results of this study were as follows : According to the above results, child care centers′caregivers and parents in Korea had perspective of the theory of attachment behavior as the most significant item. That is, caregivers and parents thought that a mother‐child attachment formation for young children under 3 was critical in life‐span. Therefore, young children under 3 must be brought up by their mothers.
本硏究は,育児意識に関する保育者と保護者を対象とした調査研究で,韓国における3歳未満児の保育の質を向上させるために行った調査である。本硏究の調査方法は,先行研究に準じて項目別に単純集計を行い,又,保育者と保護者との意識の有意差を検証するためには,カイ二乗検定を試みたが,有意水準は1%下にて検証した。アンケ-トの內容は,諏訪論文の質問項目を韓国語に翻訳して使用した。この研究のサンプル数は,ソウルと近畿道にある乳児保育施設の250人の保育者と保護者250人である。その結果を要約すれば次のとおりであるが,重要な項目として,韓国の保育施設に勤めている保育者と子どもを預けている保護者は,母親と子どもの愛着形成は大変重要であるので,3歳未満児は,母親によって育てられるべきであるという,「3歳児神話」がきわめて根強いことが明らかにされた。今後,韓国における3歳未満児の保育の質を高めるためには,育児支援体制の確立と共に「母性神話」や「3歳児神話」からの克服が何よりも緊急なことであると言える。

4,800원

14

레뷰춤의 수용 과정

김영희

한국춤문화자료원 춤과 지성 2호 2005.11 pp.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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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16

들뢰즈의 ‘표현(Expression)’에 관한 연구

김영희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23집 2003.12 p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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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들뢰즈가 ‘표현’ 개념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사유를 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들뢰즈가 ‘표현’ 개념에 처음으로 주목한 것은 스피노자 연구에서다. 스피노자 연구에서 표현은 두 개의 트리아드로 나타난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실체, 표현들인 속성, 표현된 본질’의 첫 번째 트리아드와 ‘스스로를 표현하는 속성, 표현들인 양태, 표현된 변양(modification)’의 두 번째 트리아드. 실체는 속성들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지만, 속성들은 양태들 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속성들은 일의적인 존재의 형식들이다. 수적으로 단일한 하나의 실체는 수적이지 않은 실재적인 구별들인 속성을 통해, 속성들의 표현인 양태를 통해 다양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존재는 하나의 단위(un unité)이지만, 여러 개의 의미로 말해진다. 표현 개념은 스피노자에게서 존재의 일의성을 새우도록 하며, 내재적 철학의 토대가 된다. 존재들 사이의 본성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역량 혹은 강도의 차이들만이 존재한다. 들뢰즈는 표현 개념을 통해서 첫 번째로, 차이의 존재론적 기반을 세우고자 한다. 들뢰즈가 표현의 트리아드를 통해서 주목하는 것은 양태의 차원이다. 양태들은 역량의 정도에 따라 변용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우리가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신체를 만나, 즐거움을 가지더라도, 그 즐거움은 여전히 하나의 정념, 수동적인 변용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체와 함께 이루어진 그리고 우리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것은 선이다. 들뢰즈는 역량, 코나투스, 공통 개념 등을 통해서, 스피노자 철학에서 긍정의 사유를 제안한다. 이것이 ‘표현’ 개념을 통한 사유의 두 번째 기획이다.
Ce que je cherche dans cette étude, c'est le projet de Deleuze par le concept l'expression. Deleuze considère le concept d'lexpression chez Spinoza avant tout. Il y a deux triades de l'expression chez Spinoza: en premier lieu, la substance s'exprime, les attributs sont des expressions, l'essence est exprimée. En second lieu, les attributs s'expriment, les modes sont des expressions, la modification est exprimée. La substance s'exprime dans ses attributs, mais attributs s'expriment dans les modes. Les attribut sont des formes d'être univoques. Les attributs sont des conditions communes, communes à la substance et aux modes. ll n'y a qu‘une substance pour tous les attributs. La distinction numérique distingue jamais des substances, mais seulement des modes enveloppant le même attribut. Être est une unité, mais il est univoque. Le concept d'lexpression permit de fonder chez Spinoza l'univocité de l'être. Elle est fondement de la philosophie de l'immenance. Il n'y a pas de différence entre l'êtres par nature. Ce plan univoque de l'être est traversé par la puissance et l'intensité. D'une part, Deleze propose l'ontologie de la différence par le concept de l'expression. Il s'agit de l'étage de la mode pour Deleuze. Modes ont le pouvoir d'être affecté par le degré de la puissance. Quand nous rencontrons un corps qui convient avec notre nature, sa puissance s'additione à la nôtre. Nous ressentons de la joie. Encore la joie est une passion. Mais le bon est ce qui se compose avec notre corps et augmente notre puissance. Par la puissance, conatus, les notions commune, Deleuze propose la pensée de l'affirmation. D'autre part, Deleuze propose la pensée de l'affirmation par le concept de l'expression. Elle est probléme pra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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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길

김영희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사학 1989 봄 통권49호 1989.06 pp.9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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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ovement of Nitrification Efficiency by Activated Nitrifying Bacteria Injection at Low Temperature

Dongil Lim, Younghee Kim

한국도시환경학회 한국도시환경학회지 VOL.18 No.4 통권 제48호 2018.12 pp.473-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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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Lab 규모의 생물반응장치를 제작하여 운전조건 변화(온도, 저해물질(Cl), 활성화된 질산화균 투입 등)가 질 산화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저온 조건에서 질산화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하였다. NO2 −-N+NO3 −-N 농 도 실험에서 20oC의 경우 염소를 투입하여 질산화균을 사멸한 후 활성화된 질산화균을 투입하면, 정상수준까지 회복하는 데 약 4일 정도 소요되었다. 10oC의 경우, 활성화된 질산화균을 투입하여 이전 상태로 회복 되는 데는 약 7일 정도 소요되어 20oC 에 비하여 약 3일이 더 소요되었다. 비질산화속도 실험에서는 10oC 운전조건에서 활성화된 질산화균 투입 후 1일경과시 비 질산화속도는 0029 mgN/gSS/hr에서 6일 경과시 0.767 mgN/gSS/hr까지 증가하였다. 선형 모형식과 지수함수 모형식에 의한 8일 경과후의 비질산화속도는 각각 0.840, 3.625 mgN/gSS/hr로 예측되어 정상수준인 2.592 mgN/gSS/hr을 상회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저온 운전시 활성화된 질산화균을 주입하면 질산화효율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향후 연구에서 현장별 운전특성을 고려한 ANB 투입량의 결정, 효율적인 ANB reactor의 설계 등에 대한 추가적 인 연구가 진행된다면 동절기 질산화효율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study, we have developed a lab scale bioreactor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of nitrification reaction according to operation condition (temperature, inhibitor (as Cl), activated nitrifying bacteria (ANB). etc) to improve nitrification efficiency at low temperature. Recovery rate of nitrification took about 4 days to reach the normal level by injected ANB after inhibition shock of CI injection at 20oC, when measured the concentration of NO2 −-N+NO3 −-N in the effluent. In the case of 10oC, recovery of nitrification rate took about 4 days to reach the level of half to the normal level and 7 days for complete recovery which took 3 days more than those at 20oC. At 10oC considering the winter season, the specific nitrification rate(SNR) of the from 1 day to 6 days after injected ANB according to its operation condition increased from 0.029 to 0.767 mgN/gSS/hr. The simulated SNR for the 8th day after the injected ANB at 10oC was 0.840, 3.625 mgN/gSS/hr, respectively as linear function and exponential function, expecting to exceed level of 2.592 mgN/gSS/hr at normal condition. It was confirmed that injection of ANB during low temperature operation has many effects for improving nitrification efficiency through this study. In future studies, if further studies are carried out the determination of ANB injection and the design of efficient ANB reactor considering the changes of operating characteristics by site, it will contribute to the improvement of nitrification efficiency in winter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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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W고등학생의 주관적 구강관리인식과 융복합적 요인에 대한 연관성

조민진, 최은미, 김영희

한국융합학회 한국융합학회논문지 제9권 제11호 2018.11 pp.127-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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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원주시 W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주관적 구강관리인식과 관련된 융복합적 관련 요인을 파악하고 자 하였다. 설문지 총 218부를 분석한 결과 주관적 구강관리인식도는 3.59±0.44 이었고, 일반적 특성 중 종교, 패스트푸드 섭취횟수, 탄산음료 섭취횟수가 주관적 구강관리인식도와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p<.05). 입 냄새 제거를 위해 칫솔질을 한다 와 타인에 대한 입냄새 인지정도가 주관적 구강관리인식과 관련성이 높았으며, 자신의 입 냄새에 대한 불편감을 느끼지 못 하는 경우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므로 탄산음료나 패스트푸드와 같은 정크 푸드 섭취를 줄이고 칫솔질 횟수를 증가 시켜 주관적 구강관리인식도를 높여줘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등학생들에게도 구취관리에 대한 올바른 구강건강관 리방법을 제시해주고 향후 연구에서도 구취 예방법에 대해서 연구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convergence related factors of subjective oral care awareness in high school students. 218 data were analyzed; subjective oral care awareness were 3.59±0.44, significantly affected by religion, intake of fast food and carbonated drink(p<.05). According to analysis, students who stated reasons for halitosis as ‘Tooth brushing to eliminate bad breath’ and ‘Friends bad breath are discomfort’ showed high subjective oral care awareness, however, it was low when students were not aware of their bad breath. Therefore, increasing tooth brushing frequency and reducing the intake of carbonated drink and junk food are needed to boost subjective oral care awareness. Also, it is considered that educational contents and materials for factors which affects subjective oral care awareness should be developed for high school student’s Oral health education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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