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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강점기(1910~1939년) 대전소방조의 결성과 활동

김상욱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6 2018.09 pp.11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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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대전지역의 화재진압과 재난 방지를 담당하였던 대전소방조의 활동을 살펴보는 것이다. 개항 이후 대전은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호남선 철도가 지나가면서 교통 중심지역으로 부상하였다. 철도노무자를 중심으로 일본인거류민이 늘어나고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대전에도 화재예방을 위한 소방조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대전지역의 화재는 1930년대에 많이 발생하였으며 그것은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시가지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인 점포와 공장이 집중된 春日町 일정목, 本町 등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중심지역에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소방조의 진압활동도 여기에 집중되었다. 대전소방조의 화재진압 출동인원은 1929년을 기점으로 출동소방수가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대전의 일본 거류민들의 기부금으로 구입한 자동차펌프 등 최신 소방장비가 화재현장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펌프 등 최신장비는 화재현장에 신속 출동하여 높은 수압으로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하였기에 인력절감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아울러서 대전지역 소방활동의 우수성과 재난대처의 인프라가 훌륭하게 구비되어있음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전소방조의 활동은 화재진압 업무 외에도 출초식 및 춘계ㆍ추계소방훈련 동원과, 신사경비 등 공공시설 경비에도 동원되었다. 당시 전국의 소방조들은 3ㆍ1만세운동과 소작쟁의 등 한국인들의 반일운동시위 탄압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대전은 일본인들의 거주비율이 높았던 까닭에 대전소방조가 경찰보조활동에는 적극적으로 동원되지 않았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 대전소방조는 조선소방협회 지부설립 및 충남연합훈련대회 등 각종소방행사와 소방활동행사를 주최하였다. 아울러서 스즈키 조두는 전국의 각종 조두회의 및 행사에도 참석하여 대전소방조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섰다. 당시 활발한 소방조활동은 화재나 재난으로 부터 지역거주민들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도시 인프라의 가치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유치하려는 의도를 가진 스즈키 조두 등 대전의 유지들은 소방조를 앞세워 소방장비확충 및 각종 소방조 행사에 적극 참석하였다. 대전소방조의 이같은 노력은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충남도청의 대전 유치를 계기로 대전소방조는 최신 소방장비를 갖추면서 소방조직도 새롭게 정비하였다.
This study aimed to speculate on activity of the Daejeon Fire Fighting Service which was in charge of fire defense and disaster prevention in Daej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fter port opening, as Daejeon had Gyeongbuseon Railroad constructed and Honamseon Railway track passed through, it became a transportation hub. The number of Japanese residents, especially, railway laborers increased and a urban area was formed when activity of fire fighting service began. A number of fires broke out in 1930s because Chungnam provincial office was moved to Daejeon and the urban area expanded. They broke out in areas such as Chuniljeong, Iljeongmok and Bonjeong where a number of Japanese stores and factories were located and Japanese people resided, and fire fighting activity focused on the areas. The number of fire fighters who moved out to defense fires tended to decrease from 1929 because advanced fire fighting equipment including pumps for vehicles Japanese residents purchased through funding were used. As the advanced equipment was effective to control fires using high hydraulic pressure, it also made a contribution to saving human power. Therefore, it showed that a fire fighting service system and infrastructures for disaster control were well-organized. The Daejeon Fire Fighting Service was mobilized for service opening ceremonies, seasonal fire fighting activities and security of public facilities in addition to fire defense. At that time, all the fire fighting services nationwide were mobilized to oppress anti-Japanese movements such as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and tenancy disputes. However, it did not seem that the Daejeon Fire Fighting Service was actively mobilized for assistance of the police as the rate of Japanese residents was high in Daejeon. In late 1920s, the Daejeon Fire Fighting Service hosted a variety of fire fighting events and activities including branch establishment of the Joseon Fire Fighting Association and joint exercises in Chungnam. In addition, a chief head Suzuki participated in meetings and events nationwide to improve image of the Daejeon Fire Fighting Service. Its activities protected residents against fires or disasters and helped to improve values of urban infrastructures. Therefore, influential people including Suzuki who intended to move Chungnam provincial office from Gongju to Daejeon actively participated in activities of the fire fighting service. Such efforts of the Daejeon Fire Fighting Service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movement of the Chungnam Provincial Office to Daejeon in 1932. Using it as an opportunity, the Dajeon Fire Fighting Service had advanced fire fighting equipment be prepared and its organization reorganized.

9,300원

2

공공행정서비스의 맞춤화 구현방안 연구

김상욱

한국디지털정책학회 디지털융복합연구 제14권 제8호 2016.08 pp.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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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사회화가 심화됨에 따라 최근 우리나라도 ‘정부3.0’을 기치로 맞춤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정부의 공공서비스는 크게 데이터서비스와 행정서비스로 구분되는데, 본 연구는 후 자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데이터의 경우 플랫폼서비스로 가능하지만, 행정의 경우는 맞춤의 정수인 개인화 서비스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행정의 맞춤서비스라는 개념이 모호하여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마 련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맞춤’에 대한 개념적 고찰에 근거하여 서비스의 수요자 지향성(Degree of Citizen-Oriented)과 공급자 주도성(Degree of Government-Driven) 등 두 가지 기준으로 행정서비스 분류 틀을 개발 하고 각 분면별 특성과 구현요건을 제시하였다. 이와 함께 행정서비스의 개인화 수렴조건을 ‘3V’, 즉 연계성 (Versatile), 선택성(Variety), 신속성(Velocity) 등 세 가지로 제시하고 분류 틀의 서비스 유형별 개인화 수렴조건이 어 떻게 충족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과 개념적 사례, 그리고 정책적 시사점을 논의하였다.
As the Internet is becoming more socialized, Korean government, publishing a slogan, Government 3.0, has recently began to find a way to deliver its administration services to the public in more personalized manner. Policy directions to implement this advanced idea, are however still at large, primarily because of the vague nature of ‘personalized’. This study, therefore, explores the possibility of getting public administrative services closer to personalization. To achieve this objective, this study attempts to develop a integrative framework of classifying the administration services to the public, based on two dimensions – the degree of citizen-oriented and the degree of government-driven, both of which are perhaps key determinants of personaliztion of services. For each quadrant of the framework, key features, characteristics, and conditions to be met are explained and followed by exemplary cases and policy imp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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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국의 지역별 문화산업의 효율성 격차 - DEA-Window 방법 -

김상욱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한중관계연구 제2권 제1호 2016.03 p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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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각 지역들은 우수한 문화적 기반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문화산업의 발 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지역별로 경제발전수준의 격차가 크고 산업의 기반 이 상이하기 때문에 산업 성장의 효율성에서도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본 연구는 과연 지역별로 급성장하고 있는 문화산업의 지역별 상대적 효율성은 어떠할까에 의문을 가진다. 따라서 본 연구는 지역별로 상대적 효율성을 비교해 봄으로써 지역별 문화산업 성장을 평가하고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시사점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특히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들과는 달리 DEA-Window 방법을 이용하여 지역별 상대적 효율 성을 비교해 보기로 한다. 투입변수는 자산, 종사자 수 그리고 문화사업비를 이용하고 있다. 산출변수는 영업수입을 이용하고 있다. 자산과 종사자 수는 기존의 연구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는 변수이다. 문화사업비는 정부의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을 반영하기 위해 선정하였다. 그리고 문화산업은 서비스산업의 일종이기 때문에 부가가치 보다는 영업수입이 산출변수 로서 더욱 적합하다고 본다. 분석기간은 2005년-2013년으로 설정하였다. 지역은 31개 성·시· 자치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분석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지역별 문화산업의 상대적 효율성은 지역 격차가 크다. 둘째, 중국의 지역별 문화산업의 효율성은 점차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셋째, 중국의 지역별 문화산업의 효율성은 지역경제발 전 수준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The cultural industry becomes the leading industry in China. Most local government develops the cultural industry for regional economic development. From 2000’s, the cultural industry grown fast each year, the industry scale also more and more big. The percentage of GDP reached by 3.8 percentage in 2012. Although the amount and the scale of the cultural industry more than bigger, but the efficiency is another question. So this paper analyze the efficiency of the cultural industry from regional level in China. This paper use the DEA-Window method. This method different from another methods, it can solve the problem which produced by the fluctuation of te raw data. The DEA-Window method same as the moving average method. The input variable include asset, employment and local government cultural expenditure, and the output variable is the revenue. The local government cultural expenditure can consider the local government’s policy support. And the cultural industry is one of the service industry, and then the revenue variable can consider the performance of the cultural industry, because the cultural industry difficult separating the intermediate goods. The periods set from 2005 to 2013. The regions include 31 region. The results as follows. First, the regional efficiency of cultural industry has regional difference in China. Second, the regional average efficiency of cultural industry more and more improved from 2005 to 2013. Third, the difference of efficiency also appears in the same regions.
随着区域经济发展水平的提高, 各区域都在寻找新的经济增长部门, 其中, 文化产业成为 重要的支柱产业之一. 中国的各区域都具有雄厚的文化基础, 而且积极推进利用文化背景的 文化产业发展战略. 问题是各区域的经济发展水平不同, 而且产业基础也不同, 因此产业增 长的效率也会存在差异. 在这样的背景下, 本文主要探讨区域文化产业的相对效率. 通过区 域文化产业的效率比较, 我们可以评价区域文化产业的发展成果. 本文在前人研究的基础上 利用DEA-Window方法, 其方法可以缓解较大的数据变化所造成的效率分析的偏差. 投入 变量包括资产, 从业人数和文化事业费, 产出变量包括营业收入. 其中, 文化事业费反映区 域政府对当地文化产业发展的支持程度. 文化产业属于服务产业, 难以分开出来中间品, 因 此, 与附价值相比, 利用营业收入更有利于文化产业的效率分析. 分析期间为2005年至2013 年. 其分析期间是文化产业的增长阶段, 有利于区域文化产业效率的比较. 区域为31个省市 自治区. 分析结果可以概括三点. 第一, 中国区域文化产业的相对效率差异较大. 第二, 中国 区域文化产业的效率逐渐提高. 第三, 中国区域文化产业的效率不一定跟区域经济发展水平 一致.

5,700원

4

우리나라 학교급식 사업방향

김상욱

한국학교보건학회 한국학교보건학회지 Vol.3 No.1 1990.06 p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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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5

4,000원

6

1910년대 전북지역의 화재발생과 소방조의 결성

김상욱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제53호 2018.07 pp.243-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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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호남평야의 미곡산지에 거주하였다. 전북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미곡을 군산으로 실어내기 위한 철도가 1912년에 설치되면서 인구증가와 함께 화재가 다발하였다. 이시기 전북지역의 화재발생과 손해액은 1920년대에 비하면 아직은 적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1910년대에는 1920년대에 비하여 전북에 정착한 일본인의 경제적인 정착이 아직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0년대의 전북지역의 화재는 발생 건수로 보면 한국인이 많았지만 손해액은 일본인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한일인의 경제력의 차이와 인구거주의 多寡에서 기인하였다. 일본인 소유의 정미소, 면화공장 등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재산손실이 많이 발생하였다. 또한 인구가 많고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 지역에는 화재가 늘어났다.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 제도 개편에 착수하면서 통치기구를 정비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4년 府제 실시와 함께 거류민단도 해체하였다. 1915년에 발포한 「조선총독부소방조규칙」은 소방조를 일제의 경찰보조기관으로 만들었다. 소방조의 구성도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한일공동소방조의 결성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소방조의 구성원은 한국인이 다수였지만 소방조의 운영권과 주도권은 일본인이 행사하였다. 전북지역에도 한일공동소방조의 결성이 늘어나면서 일본인이 소방조 운영을 주도하였다. 미곡이출의 중심 항구였던 군산이나 전북의 행정중심지였던 전주 그리고 김제·정읍·이리 등 일본인 지주들의 토지침탈이 활발한 지역에서 소방조의 결성이 이루어졌다. 전북지역의 소방조결성은 전북이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라는 특수성을 배경으로 결성되었다. 일본인들은 전북내륙평야의 미곡을 실어내기 위한 철도 인근에 농장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농장과 사업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학교조합, 번영회를 만들고 소방조를 결성하여 소방조가 그들의 이익과 안전을 받침대가 되도록 하였다.
After Korean ports were opened to foreign countries, Japanese people stayed in rice producing area of the Honam Plains. As railroads were built to deliver rice from the rice producing area of Jeonbuk to Gunsan in 1912, the population increased and many fires broke out. In 1910s, fires and the amount of damages were still not big in comparison with damages of 1920s as the economic settlement of Japanese people in Jeonbuk was still progressing in 1910s. At Jeonbuk in 1910s, more fires broke out to Korean people, but Japanese people had relatively more damages from fires. It was derived from difference in economic power between Korean and Japanese people and the quantity of the population. When fires broke out in rice mills and cotton plants owned by Japanese people, many damages were caused. Also, fires increased in the areas where many Japanese people staye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organized the governing body as it began to reorganize its colonial rule system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disorganized a residents association along with execution of the Bu system in 1914.「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Fire Fighting Service Rules」 which was announced in 1915 made the fire fighting service as a subsidiary organ of Japanese imperialism. Although the fire fighting service was composed of both Korean and Japanese people and most of the members were Koreans, but Japanese people managed it. As more Korean and Japanese fire fighting services were formed in Jeonbuk, Japanese people dominated the management. Fire fighting services were usually formed at Jeonju, Kimje, Jeongeup and Iri where Japanese landholders took Korean land by force. Fire fighting services in Jeonbuk were organized based on particularity that Jeonbuk was the nation’s top rice producing area. Japanese people managed farms near railroads to transport rice from the inland. Based on the farms and business, they organized school unions, prosperity projects and fire fighting services to use them as tools for their interest and safety.

7,300원

7

학교보건의 활성화방안

김상욱

한국학교보건학회 한국학교보건학회지 Vol.5 No.1 1992.06 pp.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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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8

행정 프로세스 확장에 따른 공공 데이터 융합 관리 방안

김상욱

한국디지털정책학회 디지털융복합연구 제13권 제5호 2015.05 pp.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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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빅 데이터’의 사회적 잠재성을 정부의 대국민 서비스와 연계지어, 정부의 행정서비 스 혁신에 빅데이터의 사상이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였다. 특히 주민 생활공간과 정부 업무공간의 이 원화가 초래한 정부 행정서비스의 본원적 한계를 행정 프로세스의 외부 확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 였다. 또한 이로부터 제기될 수밖에 없는 선결과제, 즉 주민 공간의 각종 사물데이터를 어떻게 행정 데이터 영역에 편입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였다. 이로써 행정서비스 영역에 대한 빅데이터 기반 조성이 신고와 신청에 의 존하던 수동적 행정서비스를 선제적으로 바꿔내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explores the possibility of innovative government’s administrative services to the public by reflecting the social implications of ‘Big Data’. In particular, the idea of OPP (Order Penetration Point) and SOP (Service Offering Point) as a management scheme for the extension of administrative processes into the resident's living space is proposed to overcome the inherent limits of e-government service quality, the root cause of which is believed in the segregation of two spaces - the resident's living space and the government's offices. Furthermore, a discussion is made on how to integrate sensor data from the resident’s living space with traditional administrative database, which is a new challenge in the course of synchronizing the two spaces. The implications on the process extension are also provided centering around the shift from reactive to proactive services.

4,000원

9

중국 통계자료의 문제점에 대한 고찰

김상욱

한중경상학회 한중경상연구 제8집 제2호 2009.08 p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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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0원

10
11

「내러티브의 교육적 접근」에 대한 토론문

김상욱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회 국제학술대회 한중 문화 속의 민속 2004.11 pp.127-12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13

문화콘텐츠산업의 경제적 특징 분석을 통한 지원정책 방안 연구

김상욱

경인행정학회 한국정책연구 제11권 제1호 2011.06 pp.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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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94년 문화콘텐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담기구를 설치하여 다양한 지원정책을 만들고 추진한 결과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개년 간 문화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연평균 4.2%가 증가하였으며 수출도 매년 10%이상 증가하였다. 그러나 정부정책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책들이 시장경제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지 않은 채 수립되고 집행되었다. 문화콘텐츠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경제적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정부지원정책도 환경변화와 시장의 변화에 대한 대응과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추진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모든 정책이 생산자를 중심으로 단발성 직접지원 위주였다면 간접지원 방식으로 바꾸고, 과도한 규제와 지원을 완화하여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In 1994, South Korea created an official organization for cultivating the cultural contents industry and a lot of diverse policies have been drawn up and implemented in support. Through these efforts, The outcomes of these efforts are evident with an increase in annual sales in the cultural contents industry by 4.2% between 2004 and 2008. There is an annual increase of 10% in exports, too. Despite achievements, a lot of government policies have been created and implemented without proper examination in terms of the market economy. According to the policies, there have been some inefficient results In order to develop the cultural contents industry, it should pursue the policies that allow the market to self regulate. For that,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essence of market with analyzing the characteristics of consumers and producers first. Based on that, government supporting policies should help to support and cope with environmental and market changes and contribute to the invigoration of the industry by increasing its competitiveness.

5,500원

14

4,500원

15

제주마 보존 및 개량을 위한 연구 동향 및 고찰(총설)

임병휘, 김상욱, 강다원, 박경도, 도경탁

강원대학교 동물자원공동연구소 동물자원연구 제30권 1호 2019.03 pp.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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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pony, a natural monument no. 347 living in Jeju Island, Korea, has been conserved as a genetic resource and a racing pony. A total of 125 studies written about this breed have been published in various fields, primarily animal science (106), veterinary medicine (13), and others (6), from 1961 to 2018. Specifically, the majority of studies have been published in animal breeding and genetics (84), which are subcategories in the field of animal science. However, most of the research in breeding and genetics for Jeju pony were performed in the early 2000s, and studies using recently developed techniques are inferior to other breeds (thoroughbred etc.). Our current understanding of both the conservation and utilization of the breed is still incomplete. Thus, it is important to use recently developed technologies to improve management and breeding strategies for this pony breed. In this study, we review studies on Jeju ponies in the field of animal breeding and genetics and discuss problems that need to be addressed. Reviewed studies were divided into 6 categories: systematic classification, coat color, body measurement and growth, racing performance, behavior, and effective population size. Finally, we suggest ideas for future research projects that could potentially contribute to the Jeju pony industry.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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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언어를 내재한 오브제로서의 뉴미디어아트 연구 - 작품 <틱-톡 토크> 분석 중심으로

권양희, 김상욱

한국영상학회 CONTENTS PLUS 제16권 No.1 2018.02 pp.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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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에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면서 적극적이고 다양한 예술 표현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 미술의 주요 소재로 다루던 오브제에서도 테크놀로지 미디어 장치와 기술을 활용하면서 기술과 아트의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서 마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듯하다. 이에 본 저자는 뉴미디어 아트에서 오브제 활용의 분석을 통하여 오브제로 확장된 예술표현을 분석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현대미술에서의 오브제 아트의 의의와 의미를 이어 뉴미디어아트에서의 디지털 매체를 매개로한 오브제 아트로서의 맥락만을 잇고자함은 아니다. 뉴미디어 아트에서의 오브제에 대한 고찰은 다양하고 급속히 진화해 갈 뉴미디어 아트의 모습에 확장된 오브제로서의 가능성을 조망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뉴미디어 아티스트의 오브제 활용의 분석과 함께, 본 연구자의 빛언어를 내재한 오브제 “틱-톡 토크” 작품분석으로 오브제로서의 선택적 요인과 디지털 매체와의 심층적 매개 과정을 통해 확장된 새로운 매체로서의 역할이 가능함을 기술하였다. 작품 “틱-톡 토크”는 발견된 사물의 디지털 매개과정을 통해 빛이라는 시각적 언어를 통해 인간과 감정을 소통하는 오브제로 거듭난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가진 발견된 사물은 본질적 사물의 관념에서 벗어나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빛이라는 언어를 내재하게 되며, 이 빛은 언어적 유희를 가진다. 뉴미디어아트에서의 오브제 이용에 디지털 층위를 더함으로써 새로운 종으로 탄생되는 사물들은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생활공간 속에서 생명력 있는 문화적 매개자로 그 역할을 함께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As contemporary art utilizes digital media, various expressions of art are actively realized. The objet, referring to the main subject of contemporary art, appears to create a new species in the complementary relationship between technology and art while utilizing technological media devices and technology. Therefore, the author intends to create an opportunity to analyze the extended expression of art through objet analysis in the area of new media art. This is not merely a link to the meaning of objet art in contemporary art, instead defining the context of objet art through digital media in the new media art. The consideration of the objet in new media art can provide an overview of the possibilities of an objet undergoing extended appearances in the diverse and rapidly evolving new media art. This paper analyzes the utilization of new media artists' concepts of objet and conducts a study of the objet art "Tick-Tock Talk" work to expand the selective factors as an objet and a possible deeper media coverage process with digital media. The work "Tick-Tock Talk" is created through a digital mediation process of an objet found in the visual language of light, i.e., as an objet communicating with human beings and emotions. An objet with a long time trail will be free from the notion of an essential thing, embracing the language of light for communication with the audience, and light in this case has a linguistic part. By adding a digital layer to the use of an objet in New Media Art, we hope that objet, born as new species, will serve as a lifelong cultural intermediary in our future living spaces.

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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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처리관점에서 본 대중의 특성과 공공데이터 플랫폼 설계 시사점에 관한 탐색 연구

김상욱, 이재숙

한국융합학회 한국융합학회논문지 제8권 제11호 2017.11 pp.373-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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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관점이 업무자원을 넘어 새로운 가치자원으로 진화하면서, 그 처리방식의 무게중심도 단순 카테 이션(Cartesian) 방식에서 맥락(Context)식별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최근 정부도 공 공데이터 개방을 통한 민간 활용 여건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정보처리관점에서 조직원과 대중의 차이 를 탐색 차원에서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데이터 플랫폼 설계의 기본 방향과 주안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그간 추상에 머물러 있던 ‘대중의 집단지성’에서 벗어나 ‘집단지성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실천적 대안 모색의 시발점이 될 것이며, 공공데이터 개방에 필수적인 빅데이터 기반 구축의 실천적 아이디어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As the viewpoint of data evolves from business resources to value resources, the focus on the data processing is rapidly shifting from the cartesian (alphanumeric) to the contextual. In response to this trend, the government is actively promoting the utilization of public data by the private sectors. With a focus on the fact that the mainstream of public data users is the crowds, this study, therefore, seeks to identify differences between the members and the crowds from information processing view, followed by presenting directions and main points for the design of data platform. This study is perhaps to be a starting point for finding practical alternatives for creating 'collective intelligence ecosystem' and to be a basis for building a big data base in response to the opening of publ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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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성 비타민 첨가 급여가 칡소 정액의 성상에 미치는 영향

유대중, 최영선, 구민정, 김상욱, 김기수, 박상국

한국동물번식학회 Reproductive & Developmental Biology(Supplement) Volume 41 No 2 Supplement 2017.06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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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희소 재래가축으로 지정된 칡소의 생식세포 유전자원 중 동결정액 생산 · 보 존을 위해 활용되는 씨숫소를 대상으로 지용성 비타민제 첨가급여에 따른 동결정액 생산 시 채정량 및 정자 생존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자 수행하였다. 공시축의 사양관 리는 한우사양관리(국립축산과학원, 2007) 기준에 준하여 사육하였다. 지용성 비타민 Vitamin- A 35,000 IU, Tocopherol acetate 10 IU/일을 최초 정액채취일 30일 전부터 급이 하였다. 공시축은 정액채취를 위해 승가훈련 및 성성숙이 완료된 칡소 5두를 공시하였고, 정액채취 빈도는 월 2회로 하였다. 정액 채취는 암소 보정 후 공시축의 승가를 유도한 다음, 인공질에 음경을 삽입하여 채 정을 실시하였다. 동결정액 생산용 원정액은 현미경 검사결과, 정자의 생존율이 80∼85% 이상 확인되는 것을 활용하였다. 동결정액 생산용 희석액 조성은 Tris amino-methane 250 mM, Citric-acid monohydrate 80 mM, Fructose 60 mM, Penicillin G+Streptomycin 1%, Egg-Yolk 20%, Glycerol 7%로 하였다. 동결정액의 생산은 원정액을 1차 희석한 다음, 저 온실로 이동시켜 5℃로 온도 하강을 실시한 이후, Glycerol이 첨가된 희석액으로 2차 희 석을 실시한 이후 항동해제 평형을 유도하였다. 동결정액의 생산은 액체질소를 활용한 간이동결로 실시하였다. 동결이후 생존율 검사는 38℃에서 15초 이상 융해 후 현미경 검 사로 실시하였으며, 운동성 직진도 등은 컴퓨터정자분석기(Computer Assisted Sperm Analysis) 를 활용하여 조사하였다. 정액채취 결과, 지용성 비타민 처리군에서는 13.5 mL 내외 로 채정되었고, 무처리군은 9.0 mL 내외였다. 원정액의 생존율은 처리군 및 무처리군 모 두 85% 내외였다. 동결융해 이후 생존율을 검사한 결과, 생존율은 처리군 72.0%, 무처리 군 72.5%로 조사되었다. 운동성은 처리군 92.6%, 무처리군 94.8%로 조사되었고, 선형성 은 처리군 31.2%, 무처리군 32%였다. 직진도는 처리군 50%, 무처리군 51.3% 각각 조사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지용성 비타민 급여가 칡소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되며,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지용성 비타민의 적정 급여 수준을 설정하고, 동결 정액 생산을 위한 표준화기술에 적용한다면 가축 유전자원 보존 · 증식에 기여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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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선호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비교연구- 아시아, 유럽을 중심으로

김지훈, 김상욱

한국경영정보학회 한국경영정보학회 학술대회 지능정보화 시대의 ICT 전략 2017.06 pp.34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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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은 아시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케이팝의 인기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케이팝엔터테이먼트 회사들의 지속적인 투자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왜 같은 상품이 한 국가에서는 인기가 많고 다른 나라에서는 인기가 없는 것일까? 이에 아시아에서 케이팝 성공전략을 분석하고 유럽에는 어떤 전략으로 진출해야 성공할 수 있을지를 비교 분석해서 결론을 도출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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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10-1939) 공설군산소방조의 결성과 활동

김상욱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제50호 2017.04 pp.21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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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899 when Gunsan Port was opened, a Gunsan Fire-fighting Team was organized at a foreign settlement. Asayama Kenzo, chief of Gunsan branch of the first Japanese consulate, hurried to organize a fire-fighting team at Gunsan for Japanese who settled in Gunsan. As the population and buildings increased in Gunsan, a great number of fires broke out, resulting in much damage. Fires was divided in Gunsan into two stages: In the first stage, most of fires broke out at rice mills: at Samgyo Rice Mill on December 1917, Joil Rice Mill on July 1924, Josun Rice Mill in 1926, and a crop plant in 1931. In the 2nd stage, fires broke out at paper goods stores and drapers run by Koreans as follows: Sechang Paper Goods Store on 1932, a draper in 1935, Youngjeong 2 Jeongmok Paper Goods Store on April 12, 1935, and a draper owned by Kim Jong-Sun on November 1935. As many fires broke out, the Gunsan Fire-Fighting Team was usually in charge of fire control instead of assisting the police. After the Korea-Japan annexation, the title of Gunsan Fire-Fighting Team at Foreigner's Settlement was changed to Public Gunsan Fire-Fighting Team and it was supervised by the police chief. Police chiefs in Gunsan reorganized the Gunsan Fire-Fighting Team to be in charge of fire control and supplemented fire-fighting equipment. Gunsan Police Station invited the police chief of Gyongsung named Okuma to inspect its fire-fighting training, equipment and water system. As advanced fire-fighting pumps were introduced, permanent water establishment which could manage fire-fighting equipment was needed. In comparison with volunteer fire-fighting teams who were engaged in fire-fighting service while having regular jobs, a permanent fire-fighting team became a good opportunity to further develop fire-fighting services. The rate of introduction of permanent fire-fighting service to Gunsan was the highest in our country. The reason why the number of permanent fire-fighters increased in Gunsan was a result of extensive support from rice dealers or rice-relating merchants who took the lead of rice export in Gunsan. The roles of the Gunsan Fire-fighting Team were roughly divided into three: First, fire preventive activity, fire control and lifesaving from flooded River Geumkang. Second, the team assisted the police to secure safety of Japanese. Their assistance was clearly shown in organization of the Gunsan Fire-fighting Team at foreigners' settlements. Therefore, there were much more number of Japanese who lived in Gunsan under Japanese rule. Finally, the team was mobilized for guarding the port and night pat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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