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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유학과 영남유학의 특성

황의동

[NRF 연계]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 Vol.38 2005.12 pp.105-129

...학연, 지연 그리고 정치적 당파에 기인한 바가 크다. 양대 학파의 일반적 특성을 살펴보면, 기호유학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된데 대해, 영남유학은 비교적 단조롭게 전개된 면이 있다. 기호유학의 경우 율곡학파와 우계학파의 학풍이 다소 다르고, 율곡학파 내에서도 율곡직계와 非師承 율곡학파의 학풍에도 차이가 있다. 또한 權尙夏 문하에서는 人物性同異논쟁이 전개되었고, 任聖周는 극단적인 主氣의 철학을, 奇正鎭은 극단적인 主理의 철학을 열었다. 또한 金昌翕, 趙聖期, 林泳, 趙翼, 朴世采 등은 율곡성리학과 퇴계성리학의 절충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특히 기호유학은 성리학 외에도 禮學, 實學, 義理學, 陽明學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영남유학의 경우 부분적으로 예학, 실학의 학풍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퇴계성리학과 의리적 학풍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南冥學派의 경우는 실천유학을 지향하며 의리의 실천에 주력하였다. 또한 異學觀에 있어서도 기호유학이 보다 개방적이었다면, 영남유학은 주자학 내지 퇴계학의 保守에 치중하였다. 아울러 철학의 내용면에서 볼 때 기호유학은 理學과 實學을 겸비하였다면, 영남유학은 理學 중심이었다.또한 성리학적 특징을 보면 기호유학은 理氣의 조화를 추구한 반면, 영남유학은 主理的 입장에서 理의 인식과 실천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기호유학은 율곡의 氣發理乘一途說을 準據로 삼고 있는데 대해, 영남유학은 퇴계의 理氣互發說을 準據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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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학은 크게 보아 기호유학과 영남유학의 양대 산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는 학연, 지연 그리고 정치적 당파에 기인한 바가 크다. 양대 학파의 일반적 특성을 살펴보면, 기호유학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된데 대해, 영남유학은 비교적 단조롭게 전개된 면이 있다. 기호유학의 경우 율곡학파와 우계학파의 학풍이 다소 다르고, 율곡학파 내에서도 율곡직계와 非師承 율곡학파의 학풍에도 차이가 있다. 또한 權尙夏 문하에서는 人物性同異논쟁이 전개되었고, 任聖周는 극단적인 主氣의 철학을, 奇正鎭은 극단적인 主理의 철학을 열었다. 또한 金昌翕, 趙聖期, 林泳, 趙翼, 朴世采 등은 율곡성리학과 퇴계성리학의 절충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특히 기호유학은 성리학 외에도 禮學, 實學, 義理學, 陽明學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영남유학의 경우 부분적으로 예학, 실학의 학풍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퇴계성리학과 의리적 학풍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南冥學派의 경우는 실천유학을 지향하며 의리의 실천에 주력하였다. 또한 異學觀에 있어서도 기호유학이 보다 개방적이었다면, 영남유학은 주자학 내지 퇴계학의 保守에 치중하였다. 아울러 철학의 내용면에서 볼 때 기호유학은 理學과 實學을 겸비하였다면, 영남유학은 理學 중심이었다.또한 성리학적 특징을 보면 기호유학은 理氣의 조화를 추구한 반면, 영남유학은 主理的 입장에서 理의 인식과 실천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기호유학은 율곡의 氣發理乘一途說을 準據로 삼고 있는데 대해, 영남유학은 퇴계의 理氣互發說을 準據로 삼았다.

Korean Confucianism is divided into the Giho and Yongnam schools. The former includes Yulgok's school and the Wookye school and the latter, the Toygye school and Nammyung school. The two main schools' characteristics are as follows: First, while the Giho school was developed in various directions, the Yongnam school stuck to an unchangeable doctrine. Second, the Giho school is open to other philosophical doctrines such as Buddhism and Taoism but the Yongnam school, specifically, the Toygye school, presents a conservative stance adhering to the Doctrine of Chu-tz. Third, the Giho school includes the Doctrine of Chu-tz and the Oriental Positive school and the Yongnam school mainly focuses on the Doctrine of Chu-tz. Fourth, in terms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Doctrine of Chu-tz, while the Giho school emphasizes the balance and harmony of "ri" (basic principle) and "gi" (force of nature), the Yongnam school focuses on the recognition and practice of "ri." Fifth, the Yulgok school among the Giho school succeeded in the "Gibalrisungsul" theory of Yulgok, but the Toygye school follows the "Rigihobalsul" theory of Toy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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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령 성씨 유학자들의 학문과 사상

황의동

[NRF 연계]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 Vol.50 2008.12 pp.293-317

...학연, 지연, 혈연 등 복잡한 배경에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가문을 중심으로 한 문중학문의 연구는 다소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조선조 현실을 고려하면 그 필요성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창령 성씨는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성삼문, 성담수, 성승, 성희는 충절의리를 지켰고, 성수침, 성우, 성제원, 성운, 성세창 등은 도학으로 명망이 높았고, 성혼, 성만징, 성기운, 성근묵, 성구용 등은 성리학에 밝았다. 특히 성삼문의 죽음은 창령 성씨의 가학을 ‘隱居自守 聖賢自期’로 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학풍은 성혼의 사위인 윤황을 통해 파평 윤씨의 가학으로 이어져갔으며, 17세기 이후 우계학파로 발전해 갔다. 창령 성씨의 시조는 성인보인데, 5세손 성여완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성여완의 아들인 성석용(회곡공)과 성석인(상곡공)의 후손에서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회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승, 성희, 성삼문, 성담수, 성몽선, 성몽정, 성현, 성기운, 성구용 등이 있고, 상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간, 성현, 성우, 성운, 성수침, 성수종, 성혼, 성문준, 성지선, 성근묵 등이 있다. 대체로 회곡공파는 범 율곡학파에 속하고, 상곡공파는 우계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회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삼문이라 할 수 있고, 상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혼이라 할 수 있다. 성혼은 ‘동국 18현’의 하나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도학으로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의 理氣一發說은 율곡과의 성리 논변을 통해 세워진 값진 학문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창령 성씨의 가학과 파평 윤씨의 가학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성삼문의 죽음과 윤선거의 江都사건 그리고 성혼의 가학이 사위인 윤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우계학파는 조선조 유학사에서 율곡학파와는 또 다른 학풍을 지니며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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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유학은 학연, 지연, 혈연 등 복잡한 배경에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가문을 중심으로 한 문중학문의 연구는 다소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조선조 현실을 고려하면 그 필요성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창령 성씨는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성삼문, 성담수, 성승, 성희는 충절의리를 지켰고, 성수침, 성우, 성제원, 성운, 성세창 등은 도학으로 명망이 높았고, 성혼, 성만징, 성기운, 성근묵, 성구용 등은 성리학에 밝았다. 특히 성삼문의 죽음은 창령 성씨의 가학을 ‘隱居自守 聖賢自期’로 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학풍은 성혼의 사위인 윤황을 통해 파평 윤씨의 가학으로 이어져갔으며, 17세기 이후 우계학파로 발전해 갔다. 창령 성씨의 시조는 성인보인데, 5세손 성여완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성여완의 아들인 성석용(회곡공)과 성석인(상곡공)의 후손에서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회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승, 성희, 성삼문, 성담수, 성몽선, 성몽정, 성현, 성기운, 성구용 등이 있고, 상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간, 성현, 성우, 성운, 성수침, 성수종, 성혼, 성문준, 성지선, 성근묵 등이 있다. 대체로 회곡공파는 범 율곡학파에 속하고, 상곡공파는 우계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회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삼문이라 할 수 있고, 상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혼이라 할 수 있다. 성혼은 ‘동국 18현’의 하나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도학으로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의 理氣一發說은 율곡과의 성리 논변을 통해 세워진 값진 학문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창령 성씨의 가학과 파평 윤씨의 가학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성삼문의 죽음과 윤선거의 江都사건 그리고 성혼의 가학이 사위인 윤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우계학파는 조선조 유학사에서 율곡학파와는 또 다른 학풍을 지니며 발전해 왔다.

Confucianism of Korea has developed complicatedly related with schools, regionalism and kinship. Sung family from Changryong has many Confucian scholars. Some representatives of them are Sam-moon Sung, Dan-su Sung, Hee Sung, Su-chim Sung, Woon Sung, Je-won Sung, Hyun Sung, Man-jing Sung and Gi-woon Sung. Sung family from Changryong did not actively participate in politics after Sam-moon Sung died and instead, they devoted themselves to studying and self discipline. These traditions succeeded to the family scholar tradition of Yun Family from Papyung. Sam-moon Sung, Dan-su Sung, Hee Sung, Woon Sung, Je-won Sung, Gi-woon Sung and Gu-yong Sung protested the unjust and were against the foreign powers. Also, Hon Sung, Man-jing Sung, Kun-mook Sung, Gi-woon Sung, Gu-yong Sung were very knowledgeable to Sung Confucianism. However, in general, Sang Gok Gong party of Sung Family from Changryong became Woogye school and Hyo Gok Gong party, Yulgok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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