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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 한인아나키즘세력의 동방아나키즘연맹체 결성과 활동

양지선

[NRF 연계] 백산학회 백산학보 Vol.112 2018.12 pp.71-94

...한인대표로 참여하였다. 이후 신채호는 스스로 연맹체 결성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단결과 직접행동을 촉구하며 동방연맹을 결성하였다. 화남지역에서도 연맹체 결성이 추진되고 있었다. 먼저 유기석, 이을규, 이정규 등이 중심이 되어 재중공산무련을 조직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28년 6월 14일 한국, 중국, 타이완, 일본 등 각국의 아나키스트들이 상하이에 모여 O.A.F.를 결성하였지만 곧 유명무실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때 화북에서 활동하던 중국,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이 O.A.F.를 찾아와 연대를 제안했고, 프랑스조계에서 연석회의를 열어 함께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통해 화북과 화남에서 각각 추진되던 연맹체 결성과 활동이 화남지역으로 집중되었음은 물론 직접투쟁에 보다 무게중심을 둔 투쟁방략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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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후 동방아나키즘연맹체 조직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스기 사카에가 가장 먼저 연맹체 조직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관동대지진과 그의 죽음으로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5년여 뒤인 1926년, 중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유기석이 다시 한번 연맹체 결성을 제안하였다. 유기석은 동방아나키즘세력의 통일된 기관으로 동아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자고 주장했다. 연맹체의 조직과 연대활동에 대한 구상은 곧 구체화 되었다. 먼저 화북지역에서 연맹체 조직을 시도하였다. 한국, 중국, 타이완, 베트남, 인도, 일본 6개국의 아나키스트들이 1927년 톈진 프랑스조계에 모여 A동방연맹을 조직하자 신채호가 이필현과 함께 한인대표로 참여하였다. 이후 신채호는 스스로 연맹체 결성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단결과 직접행동을 촉구하며 동방연맹을 결성하였다. 화남지역에서도 연맹체 결성이 추진되고 있었다. 먼저 유기석, 이을규, 이정규 등이 중심이 되어 재중공산무련을 조직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28년 6월 14일 한국, 중국, 타이완, 일본 등 각국의 아나키스트들이 상하이에 모여 O.A.F.를 결성하였지만 곧 유명무실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때 화북에서 활동하던 중국,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이 O.A.F.를 찾아와 연대를 제안했고, 프랑스조계에서 연석회의를 열어 함께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통해 화북과 화남에서 각각 추진되던 연맹체 결성과 활동이 화남지역으로 집중되었음은 물론 직접투쟁에 보다 무게중심을 둔 투쟁방략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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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국어 교과서 ‘「됴션말 독본」 첫 책, 「됴션말 교과셔」 둘재 책’의 표기법 고찰― 「國文子母音略解」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

송미영

[NRF 연계] 한국언어문학회 한국언어문학 Vol.107 2018.12 pp.13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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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orthography targeting 『Tyosyonmal tokpon』 chot chack and 『Tyosyonmal kyokwasyo』 tuljae chack published in 1927. Since mass immigration to Hawai began in 1903, the Korean society was formed in the American area. Wuseong(又醒) Park, Yongman(朴容萬) is the representative person who lead the Korean society in U.S. and head of the Korean National Independence League. And Wuseong School was established in Palama, Hawaii in April 1927 and an elementary Korean textbook was directly published and used as a teaching material. The characteristics of orthography of 『Tyosyonmal tokpon』 chot chack and 『Tyosyonmal kyokwasyo』 tuljae chack published by Park, Yongman are as follows. First, This book was composed mainly with ㅅ-initial compound cluster writing and for final consonants, 9 ones including ‘ㄷ and ㅆ’ were marked. And the nominal stem-final consonants show writing that consonant groups were not simplified except ‘ㄶ, ㅀ’, etc. writing of spelling and syllabification is shown in several examples, while it writing of syllabification and excessive syllabification is shown within substantives and predicates. This can be a plan to clarify and write basic forms of stems. The characteristics of orthography examined above are synonymous with 「Kukmunjamoeumyakhae(國文子母音略解)」(1909) published by Park, Yongman through news paper. Clarifying and writing consonant groups of stem words, expanding writing of syllabification or excessive syllabification would be an expedient to separate writing from pronunciation. And new letters were adopted to mark foreign languages. 13 consonants were additionally created and a vowel, ‘ㆍ’ tried to be marked as ‘十’. This means that a writing plan was devised to make Overseas Koreans learn their mother tongues in the relationship with foreign 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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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재일한인사회주의자들의 노동계급론의 변화

박순섭

[NRF 연계]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Vol.35 2018.12 pp.45-74

...한인사회는 노동계급의 혁명전위 설정에 유리한 경제적 조건과노동환경을 지녔다. 그에 따라 1920년대 초반 사회주의 유입시기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과 노동계급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일한인사회주의자들은 재일한인노동조합이나, 아나키즘과의 경쟁을 통해 노동계급론을 견고히 했다. 하지만 1926년부터 이루어진 재일한인사회주의 그룹의 국내 진출을 계기로그들이 지녔던 혁명론의 특수성이 약화되었다. 국내로 진출한 ML파 사회주의그룹은 광범한 단일전선 수립에 집중해 노동계급의 독립적, 차별적 지위를 약화시켰다. 이는 코민테른의 요구에 부합하는 동시에 국내 사회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했다. 이 같은 ML파의 노선은 일월회·조선공산당 일본부·신간회 동경지회 등을매개로 재일한인사회주의 운동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 동안의 국내운동의 파쟁성이 비판되고 ‘단일전선’ 수립이 촉구되었다. 그 속에서 기존의 노동계급론 심화는 비현실적인 운동방법으로 배척되었다. 이는 결국 급속히 성장하는 국내외 공장노동자 계층을 혁명역랑으로 포섭할수 있는 개념적 토대를 미비하게 만들었다. 또한 1928년 12월 테제의 핵심 지시사항인 노동자, 농민 위주의 당 건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재일한인사회주의운동이 점유하던 노동계급론과 프롤레타리아 혁명론 또한 1920년대 말엽 일본 운동계에 완전히 흡수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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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재일한인사회는 노동계급의 혁명전위 설정에 유리한 경제적 조건과노동환경을 지녔다. 그에 따라 1920년대 초반 사회주의 유입시기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과 노동계급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일한인사회주의자들은 재일한인노동조합이나, 아나키즘과의 경쟁을 통해 노동계급론을 견고히 했다. 하지만 1926년부터 이루어진 재일한인사회주의 그룹의 국내 진출을 계기로그들이 지녔던 혁명론의 특수성이 약화되었다. 국내로 진출한 ML파 사회주의그룹은 광범한 단일전선 수립에 집중해 노동계급의 독립적, 차별적 지위를 약화시켰다. 이는 코민테른의 요구에 부합하는 동시에 국내 사회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했다. 이 같은 ML파의 노선은 일월회·조선공산당 일본부·신간회 동경지회 등을매개로 재일한인사회주의 운동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 동안의 국내운동의 파쟁성이 비판되고 ‘단일전선’ 수립이 촉구되었다. 그 속에서 기존의 노동계급론 심화는 비현실적인 운동방법으로 배척되었다. 이는 결국 급속히 성장하는 국내외 공장노동자 계층을 혁명역랑으로 포섭할수 있는 개념적 토대를 미비하게 만들었다. 또한 1928년 12월 테제의 핵심 지시사항인 노동자, 농민 위주의 당 건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재일한인사회주의운동이 점유하던 노동계급론과 프롤레타리아 혁명론 또한 1920년대 말엽 일본 운동계에 완전히 흡수되게 된다.

In the 1920s Korean residents in Japan had favorable economic conditions andworking conditions for setting the principals of revolution in working class. As aresult, the role of proletarian revolutionary theory and working class was emphasizedfrom the influx of socialist ideas in the early 1920s. However, due to the advancement of the Korean Socialist group in Japan since1926, the specificity of the revolutionary theory has weakened. ML Faction, whichhas entered the domestic movement, has become obsessed with the establishmentof a wide single front and weakened the independent and discriminatory status ofthe working class. The ML Faction line affected the Korean Socialist Movement in Japan through theJanuary Association, the Chosun Communist Party Japan Branch, and the ShinganhoeTokyo Branch. Especially, the conflict of domestic movement has been criticized andthe establishment of ‘Single Front’ has been urged in common. In the meantime, theexisting working class theory deepening was rejected as an unrealistic movementmethod. This eventually led to a lack of a conceptual foundation for the rapidly growing domestic and overseas factory workers to be included in the revolutionary capacity. It also became a factor that made it impossible to build workers and farmers-orientedcommunist parties, which were the core instructions of December Theses in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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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한인국제결혼여성의 생애사에 나타난이주의 의미

남혜경, 김영순

[NRF 연계]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 교육문화연구 Vol.24 No.6 2018.12 pp.667-685

...한인 국제결혼여성들의 생애사에 나타난 이주의 의미를 찾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독일에 간호사로 이주한 후 정착하고 독일 남성과 결혼한 한국여성 6명을 연구 참여자로 선정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연구 참여자 스스로 자기생애기술을 하였고 그 후에 심층 인터뷰를 실행하였다. 생애사는 만델바움(Mandelbaum, 1973)의 생애사 분석법을 활용하여 연구 참여자의 삶을 3가지 차원 즉, 삶의 영역, 전환점, 적응의 차원으로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삶의 영역은 ‘환경-난파된 집안경제, 대응-주경야독, 집안경제의 조력자, 원동력-지속적인 도전’으로 분석되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삶의 방향, 이주, 국제결혼, 스스로 전환점을 만듦’이 있었다. 적응은 사회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으로 분류하였다. 사회적 적응 요인은 가족과 친구의 지지, 경제적 자립이 있었고 개인적 적응 요인은 스스로 결정하고 꾸준히 행함, 오기와 소신, 그리고 결핍에 대한 반작용, 다른 사람을 후하게 대함과 참아내고 견뎌냄이 있었다. 아울러 이들의 생애사에 나타난 이주의 의미는 ‘기회’, ‘주체성’, ‘안착하지 못한 이주’로 결론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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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 국제결혼여성들의 생애사에 나타난 이주의 의미를 찾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독일에 간호사로 이주한 후 정착하고 독일 남성과 결혼한 한국여성 6명을 연구 참여자로 선정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연구 참여자 스스로 자기생애기술을 하였고 그 후에 심층 인터뷰를 실행하였다. 생애사는 만델바움(Mandelbaum, 1973)의 생애사 분석법을 활용하여 연구 참여자의 삶을 3가지 차원 즉, 삶의 영역, 전환점, 적응의 차원으로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삶의 영역은 ‘환경-난파된 집안경제, 대응-주경야독, 집안경제의 조력자, 원동력-지속적인 도전’으로 분석되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삶의 방향, 이주, 국제결혼, 스스로 전환점을 만듦’이 있었다. 적응은 사회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으로 분류하였다. 사회적 적응 요인은 가족과 친구의 지지, 경제적 자립이 있었고 개인적 적응 요인은 스스로 결정하고 꾸준히 행함, 오기와 소신, 그리고 결핍에 대한 반작용, 다른 사람을 후하게 대함과 참아내고 견뎌냄이 있었다. 아울러 이들의 생애사에 나타난 이주의 의미는 ‘기회’, ‘주체성’, ‘안착하지 못한 이주’로 결론지을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meaning of migration shown in the life history of Korean internationally-married Korean women in Germany. For this purpose, six Korean women who worked as nurses after immigrating to Germany and marrying to German spouses were selected as research participants. In-depth interview was conducted in order to document their life history. The participants' life history was analyzed in three different aspects (life domain, turning point, and adaptation) by using Mandelbaum's life history analysis method (Mandelbaum, 1973). The results of the analysis indicated that their life domain was shown as "the environment-the wrecked house economy, "the action-the day to work and the night to study, the helpers of family finance," and "impetus-a new challenge of life." The turning point was described as "unexpected direction of life," "the migration," "international marriage," and "making a turning point by oneself." The factors of social adaptation were "the support from family and friends" and "the financial self-reliance," while individual factors were "self-decision-making and consistency," "obstinacy and belief," "reaction of deficiency," and "treating others generously, patience, and endurance." Meanwhile, the meaning of migration in their life history was presented as "opportunity," "identity," and "unsettled mi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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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적 강도(救濟的强盜)」 연구 -1세대 재미 한인의 체험과 문학적 혼종성

황재문

[NRF 연계] 춘원연구학회 춘원연구학보 Vol.13 2018.12 pp.345-384

...한인으로, 1904년에 하와이로 이주했고 1907년에 다시 캘리포니아로 건너갔다. 그는 농장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며 자녀와 조카들을 교육시켰는데, 1920~1930년대 전후로는 여러 편의 소설과 논설을 썼다. 그의 작품들은 출판되지 않은 원고본으로 남아 있었는데, 최근 유족들이 이 유고를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기증하여 그 내용을 살펴볼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구제적 강도(救濟的强盜)」 및 그 전편에 해당하는 「오월화(五月花)」은 1세대 재미 한인인 작가, 그리고 2세대 재미 한인인 자녀 세대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작품의 주인공은 아들인 ‘잭 전’이지만, 그 속에는 전낙청 일가의 한반도, 하와이, 캘리포니아 생활의 체험과 함께 고전소설에서부터 신소설, 미국의 영화 및 대중문화와 같은 문화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전낙청 일가의 이주민으로서의 체험은 작품에 일종의 문화적 혼종성이라 할만한 요소를 부여하게 되는데, 본고에서는 작품의 소개와 함께 그 혼종성의 양상을살피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작품의 형식 및 문장 측면에서 살펴보면, 문장부호나 띄어쓰기 없이 한글로만 표기하는 고전소설 식의 표기를 취하면서도 신소설과 유사한 대화 표기 방식을 사용하고 한자 이외에 영어 단어까지 포함한 문장을구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양손에 캔디’와 같은 변형된 속담은 그 단적인 사례이다. 소재 및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는 미주에서 살아가야 했던 한인의 생활 및 고민의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인종 차별 및 황백통혼(黃白通婚), 대공황 이후의 실업 문제를 비롯한 사회 문제, 누드화와 훌라 춤, 탭 댄스 등 하와이 및 미주에서 마주친 문화적 충격과 같은 것이 그 사례가 된다. 요컨대 「구제적 강도」은 193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고전소설의 형식을 활용하면서 재미 한인의 생활을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 이민 문학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사례이면서 한국 전통 문화와 미국의 문화가 마주쳤을 때 생겨나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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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낙청(1875~1953)은 하와이 노동 이민에 포함되었던 1세대 재미 한인으로, 1904년에 하와이로 이주했고 1907년에 다시 캘리포니아로 건너갔다. 그는 농장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며 자녀와 조카들을 교육시켰는데, 1920~1930년대 전후로는 여러 편의 소설과 논설을 썼다. 그의 작품들은 출판되지 않은 원고본으로 남아 있었는데, 최근 유족들이 이 유고를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기증하여 그 내용을 살펴볼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구제적 강도(救濟的强盜)」 및 그 전편에 해당하는 「오월화(五月花)」은 1세대 재미 한인인 작가, 그리고 2세대 재미 한인인 자녀 세대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작품의 주인공은 아들인 ‘잭 전’이지만, 그 속에는 전낙청 일가의 한반도, 하와이, 캘리포니아 생활의 체험과 함께 고전소설에서부터 신소설, 미국의 영화 및 대중문화와 같은 문화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전낙청 일가의 이주민으로서의 체험은 작품에 일종의 문화적 혼종성이라 할만한 요소를 부여하게 되는데, 본고에서는 작품의 소개와 함께 그 혼종성의 양상을살피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작품의 형식 및 문장 측면에서 살펴보면, 문장부호나 띄어쓰기 없이 한글로만 표기하는 고전소설 식의 표기를 취하면서도 신소설과 유사한 대화 표기 방식을 사용하고 한자 이외에 영어 단어까지 포함한 문장을구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양손에 캔디’와 같은 변형된 속담은 그 단적인 사례이다. 소재 및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는 미주에서 살아가야 했던 한인의 생활 및 고민의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인종 차별 및 황백통혼(黃白通婚), 대공황 이후의 실업 문제를 비롯한 사회 문제, 누드화와 훌라 춤, 탭 댄스 등 하와이 및 미주에서 마주친 문화적 충격과 같은 것이 그 사례가 된다. 요컨대 「구제적 강도」은 193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고전소설의 형식을 활용하면서 재미 한인의 생활을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 이민 문학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사례이면서 한국 전통 문화와 미국의 문화가 마주쳤을 때 생겨나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일 것이다.

Thun Nak Chung(1875-1953) was a first-generation Korean American who was included in the Hawaiian immigrant laborers, and moved to Hawaii in 1904 and moved back to California in 1907. He made a living by working on the farm and educated his children and nephews. He wrote several novels and articles around the 1920s and 1930s, which were handed down as unpublished manuscripts and recently donated by his family to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Among them, “Kujejok Kangto[Righteous Robber]” and “Owolhwa[May Flower]” the prequel, reflect the experiences of first-generation and second-generation Korean Americans. The main character of these novels is his son Jack Thun, but it is believed to reflect the experiences of the whole family on the Korean Peninsula, Hawaii, and California, as well as cultural experiences from Korean classical novels, new novels, American films and pop culture. As a result, it is understood that this reflection of the immigrant experience has given the works a kind of cultural hybridity. For example, he used the same style of writing as the Korean classical novel, but used a dialogue style similar to a new novel, and used sentences containing English words in addition to Sino-Korean words. There are also materials and themes that show the lives of Korean Americans, such as racial discrimination and unemployment problems after the Great Depression, nude paintings, hula dancing, tap dancing, and other cultural shocks encountered in America. The “Kujejok Kangto[Righteous Robber]” can be seen as a meaningful case of a hybrid and transitional work in the Korean literature in th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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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이민자 공간과 한인 공동체 - 호주의 산업구조에 따른 집중과 분산 -

신동규

[NRF 연계] 이주사학회 호모미그란스-이주, 식민주의, 인종주의 Vol.19 2018.11 pp.52-71

...한인 공동체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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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도시의 이민자 공동체 특징은 ‘집중(concentration)’과 ‘분산(dispersion)’으로 요약된다. 이는 이민자의 대도시 집중 현상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도시 공간 내에 다양한 이민자 그룹의 분산이라는 두 가지 특징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집중’과 ‘분산’ 현상은 호주에 정착한 이민자들이 형성한 에스닉 공간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호주에 유럽처럼 전형적인 대규모의 비숙련 노동 이민자 공동체가 관찰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대량 생산시스템이 요구하는 대규모 비숙련 이주 노동력을 수용했던 유럽 및 미국의 이민자 집단의 공간 점유와 비교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호주의 백호주의 정책의 포기로 인한 아시아계 이민자의 증가와 호주의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 속에서 ‘집중’과 ‘분산’이라는 이중 현상을 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호주에서 형성된 한인 공동체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In Australia, Migration communities in urban area have two major characteristics: Concentration and Dispersion. It means the coexistence of two features. One is the concentration of immigrants in some of the large major cities and the other is the dispersion of Foreign Population in the urban area. This dual phenomenon shows the characteristic of the ethnic spatial distribution of immigrants. How to explain that in Australia, there isn't a large scale of non skilled migrant workers community we can observe typically in Europe? This australian situation is comparable to the spatial distribution of immigrants in Europe and USA accepting a huge number of non-skilled migration workers for the mass production system.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analyse this dual phenomenon in understanding the Australian industrial structure and the growth of Asian population after the abandonment of the White Australia Policy. In this perspective, we can figure out the characteristic of Korean Community i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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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다룬재일한인분야 연구동향 분석

정영미, 이경규

[NRF 연계]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Vol.62 2018.11 pp.415-437

...한인의 형성은 한국의 일제 식민지시대와 같은 특수한 역사적 사실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 디아스포라 연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디아스포라 관련 국내 학술 논문을 대상으로 기술통계 분석과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keyword network analysis)을 통해 재일한인 디아스포라 연구동향과 지식구조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KCI(Korea Citation Index)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되어 있는 디아스포라 관련 논문 1,367건의 서지데이타를 수집하였다. 논문의 생산추이, 연구 분야, 발행기관 등은 기술통계분석을 통해 파악하였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관점의 재일한인분야의 연구동향 및 지식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수집된 논문의 저자 키워드를 추출하여 이들의 동시출현정보를 사용하여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논문에서 사용한 분석도구는 SPSS v23, KrKwic, UCINET 6이다. 추가로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다룬 재일한인분야 최근 연구 특성과 동향을 살펴보기 위해 발행시기별 분석도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로 도출된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다룬 재일한인분야 연구동향 및 지식구조는 해당 분야 연구자들에게 기존 연구들에 대한 통찰적인 분석과 조망을 제공할 것이고 나아가 이 분야의 미래 연구 주제 발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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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의 형성은 한국의 일제 식민지시대와 같은 특수한 역사적 사실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 디아스포라 연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디아스포라 관련 국내 학술 논문을 대상으로 기술통계 분석과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keyword network analysis)을 통해 재일한인 디아스포라 연구동향과 지식구조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KCI(Korea Citation Index)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되어 있는 디아스포라 관련 논문 1,367건의 서지데이타를 수집하였다. 논문의 생산추이, 연구 분야, 발행기관 등은 기술통계분석을 통해 파악하였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관점의 재일한인분야의 연구동향 및 지식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수집된 논문의 저자 키워드를 추출하여 이들의 동시출현정보를 사용하여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논문에서 사용한 분석도구는 SPSS v23, KrKwic, UCINET 6이다. 추가로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다룬 재일한인분야 최근 연구 특성과 동향을 살펴보기 위해 발행시기별 분석도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로 도출된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다룬 재일한인분야 연구동향 및 지식구조는 해당 분야 연구자들에게 기존 연구들에 대한 통찰적인 분석과 조망을 제공할 것이고 나아가 이 분야의 미래 연구 주제 발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The study of Korean-Japanese is expected to be in a special situation in the study of diaspora in Korea because the formation process of Korean-Japanese is very closely related to the special historical facts such as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refore, this study was to find out the knowledge structures and research trends of the field of Korean-Japanese diaspora by using descriptive statistical analysis and keyword network analysis with Korean articles. For this purpose, 1,367 diaspora related papers in KCI (Korea Citation Index) database were collected. The article production, research field, publishing organization, and so on were identified through descriptive statistics analysis method. In order to understand the research trends and knowledge structure of Korean-Japanese diaspora in Korea, we extracted the author keywords of the collected articles and conducted keyword network analysis through the co-occurrence information of these. The analysis tools used in this study were SPSS v23, KrKwic, and UCINET 6. In addition, we analyzed the period of publication of the article in order to examine recent research characteristics and trends in the field of Korean-Japanese diaspora. The research trends and knowledge structures of Korean-Japanese diaspora field that are derived as a result of this study will provide insightful analysis and perspective on the existing studies to the researchers in the field and can help to find future research topics in this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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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문학의 현황과 의의

박산향

[NRF 연계]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논총 Vol.47 2018.10 pp.155-174

...한인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기초 자료이다. 사할린한인문학은 사할린으로 이주(강제이주 포함)한 한인이거나 사할린에서 출생한 한인, 그리고 사할린 한인1세대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 포함한, 사할린을 근거로하고 있는 한인들의 문학을 말한다. 이들은 신문 『레닌기치』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인들과 함께 활동하였지만 사할린 문학만을 분리시킬 필요성이 있다. 강제징용과 귀환의 거부로 사할린 한인의 역사는 중앙아시아와는 다르게 전개되었으며 지리적으로도 러시아 본토와는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할린 한인 작가들은 대부분 사할린의 조선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웠고, 모스크바나 하바롭스크에서 대학을 마치거나 사할린에서 전문학교를 마쳐 우리말과 러시아어에 두루 능통했다. 이들은 신문사나 방송사 기자로 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할린 작가들의 합류로 러시아 지역의 고려인문학은 더 풍부하고 섬세해질수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남경자, 리정희, 박성훈, 성점모, 장윤기, 정장길, 주영윤, 최영근을비롯해 아나톨리 김, 허 로만 등의 약력과 작품 목록을 살펴보았다.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했으며 척박한 이국땅에서 주변인으로 살아야했던 이들은 사회적 정치적약자이자 타자로서의 생생한 경험을 글쓰기를 통해 증언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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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러시아 사할린 한인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기초 자료이다. 사할린한인문학은 사할린으로 이주(강제이주 포함)한 한인이거나 사할린에서 출생한 한인, 그리고 사할린 한인1세대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 포함한, 사할린을 근거로하고 있는 한인들의 문학을 말한다. 이들은 신문 『레닌기치』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인들과 함께 활동하였지만 사할린 문학만을 분리시킬 필요성이 있다. 강제징용과 귀환의 거부로 사할린 한인의 역사는 중앙아시아와는 다르게 전개되었으며 지리적으로도 러시아 본토와는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할린 한인 작가들은 대부분 사할린의 조선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웠고, 모스크바나 하바롭스크에서 대학을 마치거나 사할린에서 전문학교를 마쳐 우리말과 러시아어에 두루 능통했다. 이들은 신문사나 방송사 기자로 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할린 작가들의 합류로 러시아 지역의 고려인문학은 더 풍부하고 섬세해질수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남경자, 리정희, 박성훈, 성점모, 장윤기, 정장길, 주영윤, 최영근을비롯해 아나톨리 김, 허 로만 등의 약력과 작품 목록을 살펴보았다.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했으며 척박한 이국땅에서 주변인으로 살아야했던 이들은 사회적 정치적약자이자 타자로서의 생생한 경험을 글쓰기를 통해 증언해냈던 것이다.

This paper is a basic data on Russian Sakhalin Korean writers and their works. Sakhalin Korean Literature refers to Sakhalin-based Korean literature, including Koreans who migrated to Sakhalin (including forced migration), Koreans born in Sakhalin, and the first generation of Sakhalin as well as their descendants. They have worked with the Central Asian Korean writers based on the newspaper "Lenin Gichi", but there is a need to separate Sakhalin literature. Due to the forced recapture and refusal of return, Sakhalin Korean history has developed differently from Central Asia and is geographically separated from the Russian mainland. Most Korean writers in Sakhalin learned Korean at the Joseon School in Sakhalin, and were fluent in Korean and Russian after finishing college in Moscow or Khabarovsk, or finishing vocational school in Sakhalin. They often work as journalists and reporters, and with the addition of Sakhalin writers, Korean literature in Russia has become richer and more sophisticated. In this paper, I have reviewed the biographies and works of Nam Kyung-ja, Lee Jeong-hee, Park Sung-hoon, Jang Yoon-ki, Jung Jang-gil, Joo Young-yoon, Choi Young-geun, and Anatoly Kim. Who had experienced colonial rule and who had to live in the outskirts of a barren foreign country, testified through writing that they had experienced vivid experiences as social and political weak and h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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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 여성시 연구

최미정

[NRF 연계]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한국문학과 예술 Vol.27 2018.09 pp.273-321

...한인 여성시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통해 이 지역 시문학의 특징과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뉴욕 지역 시문학은 문단형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여성시인들이 주도해 왔다. 본고에서는 『뉴욕문학』이 발간된 1991년을 기점으로, 이전에 도미하여 활동을 시작한 여성 시인들을 1세대로, 이후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을 2세대로 분류하였다. 1세대에 속하는 곽상희, 김정기, 김송희, 최정자, 2세대에 속하는 조성자, 신지혜, 안영애, 복영미 시를 중심으로 여성시의 특징과 의미를 고찰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이민자 여성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공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시인마다 조금씩 다른 세계인식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뉴욕 지역 여성시의 특징은 크게 ① 낯선 공간에서 유폐의 경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는 점, ② 어머니이자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③ 노동의 체험과 타자 의식을 보여준다는 점, ④ 노마디즘적 사유와 탈영토성을 통해 변화하는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여성시인들의 시작품의 내용은 이민 동기나 시기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민 초기에는 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방인 의식이 시적 주제로 자리 잡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소외 의식,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정착민으로서의 의식을 보여준다. 1990년대 이전 도미한 1세대 여성시인들은 대부분 적응과 정착의 과정을 혹독하게 겪으면서 그와 비례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드러낸다. 이에 비해 한인사회가 정착의 단계인 90년대에 이주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조성자, 신지혜는 선배 시인들에 비해 미국 사회에 수월하게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이며 세계인식과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도 민족과 혈연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린 시각과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 1세대 여성시가 광복 이후 지금까지 뉴욕 시문학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면, 이후 세대의 여성시는 앞으로 뉴욕시문학의 변화와 발전을 가늠하게 해주는 척도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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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뉴욕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재미한인 여성시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통해 이 지역 시문학의 특징과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뉴욕 지역 시문학은 문단형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여성시인들이 주도해 왔다. 본고에서는 『뉴욕문학』이 발간된 1991년을 기점으로, 이전에 도미하여 활동을 시작한 여성 시인들을 1세대로, 이후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을 2세대로 분류하였다. 1세대에 속하는 곽상희, 김정기, 김송희, 최정자, 2세대에 속하는 조성자, 신지혜, 안영애, 복영미 시를 중심으로 여성시의 특징과 의미를 고찰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이민자 여성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공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시인마다 조금씩 다른 세계인식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뉴욕 지역 여성시의 특징은 크게 ① 낯선 공간에서 유폐의 경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는 점, ② 어머니이자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③ 노동의 체험과 타자 의식을 보여준다는 점, ④ 노마디즘적 사유와 탈영토성을 통해 변화하는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여성시인들의 시작품의 내용은 이민 동기나 시기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민 초기에는 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방인 의식이 시적 주제로 자리 잡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소외 의식,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정착민으로서의 의식을 보여준다. 1990년대 이전 도미한 1세대 여성시인들은 대부분 적응과 정착의 과정을 혹독하게 겪으면서 그와 비례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드러낸다. 이에 비해 한인사회가 정착의 단계인 90년대에 이주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조성자, 신지혜는 선배 시인들에 비해 미국 사회에 수월하게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이며 세계인식과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도 민족과 혈연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린 시각과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 1세대 여성시가 광복 이후 지금까지 뉴욕 시문학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면, 이후 세대의 여성시는 앞으로 뉴욕시문학의 변화와 발전을 가늠하게 해주는 척도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the Korean American women's poetry in New York area. New York area poetry has been led by women poets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paragraph. In this paper, set the starting point of "New York Literature" in 1991, and classified the poets who had started their activities in the past as a first generation, and poets who have been active since then, as second generation.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women 's poetry were examined by focusing on Kwak Sang-hee, Kim Jung-ki, Kim Song-hee, and Choi Jeong-ja in the first generation, Jo Seong-Ja, and Shin Ji-hye, An Young-ae, Bok Young-mi in the second generation. On the one hand, they share a common sentiment of immigrant women, while on the other they show a slightly different world recognition and identity for each poet. The characteristics of women's poetry in New York area are as follows: ① they express the nostalgia for their experience and home in a strange space, ② that they reveal their identity as a mother and a poet, ③ they show the experience of labor and other consciousness, and ④ shows the changing identity through Nomadistic thought and de-territorialization. Although the content of the prototypes of female poets differ slightly depending on the motive and timing of immigration, in the early days of immigration, mainly the nostalgia for their hometowns and the consciousness of the Gentiles have become a poetic theme, and the alienation ceremony, And as time passes it shows consciousness as a settler who regards America as their second hometown. In the 1990s, most of the first-generation women poets have been harsh with the process of adaptation and settlement, revealing the nostalgia for their hometowns. Jo Seong-Ja and Shin Ji-hye, who are doing their work in the 1990s as a settlement stage, are adapting easily to American society compared to their predecessors. They also show that they are able to overcome ethnicity and race, It shows the open vision and identity to overcome. If the first generation of immigrant women has been leading the flow of New York poetry since the liberation, it is meaningful that second generation of women's poetry can be used as a measure of future change and development of New York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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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ASEAN)지역 거주 한인디아스포라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고찰 : 선교학 영역 한인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연구한 학위논문(1982-2018) 데이터 분석을 중심으로

김광성, 이강욱

[NRF 연계]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복음과 선교 Vol.43 No.3 2018.09 pp.63-108

...한인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선교학 영역에서도 한인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본 연구는 선교학 영역에서 한인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국내 학위논문을 대상으로 통계학적 측면에서 연구동향을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향후 연구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선교학 영역에서 한인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연구는 1982년 처음 시작되었다. 그 후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2018년까지 현재까지 81건의 학위논문이 제출되었다. 학위논문 주제별 연구동향을 석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00년대 들어 선교학 영역에서 한인디아스포라 관련 학위논문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1982년부터 1999년까지는 매년 1.1편의 학위논문이 발표되었는데, 2000년대에는 연평균 3.6편으로 증가하였다. 둘째, 연구 대상지역의 쏠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전체 학위논문 가운데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연구한 학위논문이 26개로 해당 기간에 발표된 전체 학위논문의 32%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어서 미국 12개(15%), CIS 지역 8개(약 10%) 순이다. 상당수(57%)가 중국, 미국, CIS지역 한인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연구 주제는 선교 대상으로서의 한인디아스포라 연구, 선교 자원으로서의 한인디아스포라 연구, 한인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 한인디아스포라(한인교회, 역사) 연구 등이 있다. 선행연구 통계분석을 통해 발견한 선교신학 분야 한인디아스포라 연구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가 모국중심의 연구가 아니라 한인디아스포라와 모국 양쪽을 존중하는 균형 있는 연구가 되어야한다. 둘째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가 학문적인 성과와 더불어 한인 디아스포라로부터 지지와 협력을 얻어야 한다. 셋째 지역별 연구 편중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넷째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다양한 연구방법 적용이 필요하고 연구 결과물, 연구자현황, 연구동향, 한인 디아스포라 사회의 제반 특징을 담고 있는 백과사전, 백서 발간과 아카이브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정치, 문화, 사회를 제외한 경제와 기타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자는 본 연구 결과를 근거로 아세안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디아스포라에 대한 통합연구를 제안한다. 적절한 통합연구가 수행된다면 아세안 지역의 선교 전략적 중요성, 선교학 영역과 인문사회과학 영역의 학제 간 대화 가능성 확보, 디아스포라 선교전략 수립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한인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 구성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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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제이주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광범하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주는 21세기 메가트렌드로 지구상의 사람 7명중 1명이 이주자이다. 정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도 2016년 현재 전체 인구의 1/7에 해당하는 수가 디아스포라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주의 시대에 학계에서는 한인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선교학 영역에서도 한인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본 연구는 선교학 영역에서 한인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국내 학위논문을 대상으로 통계학적 측면에서 연구동향을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향후 연구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선교학 영역에서 한인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연구는 1982년 처음 시작되었다. 그 후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2018년까지 현재까지 81건의 학위논문이 제출되었다. 학위논문 주제별 연구동향을 석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00년대 들어 선교학 영역에서 한인디아스포라 관련 학위논문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1982년부터 1999년까지는 매년 1.1편의 학위논문이 발표되었는데, 2000년대에는 연평균 3.6편으로 증가하였다. 둘째, 연구 대상지역의 쏠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전체 학위논문 가운데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연구한 학위논문이 26개로 해당 기간에 발표된 전체 학위논문의 32%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어서 미국 12개(15%), CIS 지역 8개(약 10%) 순이다. 상당수(57%)가 중국, 미국, CIS지역 한인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연구 주제는 선교 대상으로서의 한인디아스포라 연구, 선교 자원으로서의 한인디아스포라 연구, 한인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 한인디아스포라(한인교회, 역사) 연구 등이 있다. 선행연구 통계분석을 통해 발견한 선교신학 분야 한인디아스포라 연구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가 모국중심의 연구가 아니라 한인디아스포라와 모국 양쪽을 존중하는 균형 있는 연구가 되어야한다. 둘째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가 학문적인 성과와 더불어 한인 디아스포라로부터 지지와 협력을 얻어야 한다. 셋째 지역별 연구 편중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넷째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다양한 연구방법 적용이 필요하고 연구 결과물, 연구자현황, 연구동향, 한인 디아스포라 사회의 제반 특징을 담고 있는 백과사전, 백서 발간과 아카이브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정치, 문화, 사회를 제외한 경제와 기타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자는 본 연구 결과를 근거로 아세안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디아스포라에 대한 통합연구를 제안한다. 적절한 통합연구가 수행된다면 아세안 지역의 선교 전략적 중요성, 선교학 영역과 인문사회과학 영역의 학제 간 대화 가능성 확보, 디아스포라 선교전략 수립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한인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 구성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Today, international migration is ever more widespread and is occurring in every corner of the world. Its importance is increasing both economically and politically. Migration is a megatrend of the 21st century, and one out of every seven people on earth is a migrant. According to the statistics released by the government, as of 2016, one-seventh of the total population of Koreans live abroad as diaspora. In this era of migration, studies in the field of Korean Diaspora are actively being carried out in the academic world. Since the 1980s, research on the Korean Diaspora has been carried out in the field of missiolog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search trends within the field of missiology by analyzing the statistical aspects of domestic theses on the theme of Korean Diaspora and based on this analysis to present the direction of future research. In missiology, study with a subject on Korean Diaspora began in 1982. Since then, ongoing research has been conducted, and 81 theses have been submitted up to 2018. The results of analyzing the research trends by thesis subject are as follows: First, in the field of missiology entering the 2000s, the number of dissertations related to Korean diaspora increased sharply. Between 1982 and 1999, an average of 1.1 dissertations was published annually, increasing to an annual average of 3.6 in the 2000s. Second, there is a strong tendency of research in concentrated regional areas. Of the total theses, 26 dissertations focused on the Korean Diaspora residing in China, accounting for 32% of the total theses published during that period followed by 12 US (15%) and 8 CIS regions (about 10%). A significant number (57%) are concentrated in the study of the Korean Diaspora in China, the United States, and the CIS. Third, the research topics include research on Korean Diaspora as missions target, research on Korean Diaspora as missions resource, missions through Korean Diaspora and research on Korean Diaspora (Korean church, history). The desirable direction of Korean Diaspora research in the field of missiology discovered through statistical analysis of previous research is as follows: First, Korean Diaspora study should be a balanced research that respects both the Korean Diaspora and the mother country rather than centered on mother country alone. Second, along with academic achievement, Korean Diaspora study should garner support and cooperation from the Korean Diaspora. Third, we must overcome the biases of regional research. Fourth, it is necessary to apply diverse research methods to Korean Diaspora and publish an encyclopedia and white paper containing research result, researcher demographic, research trend, characteristics of Korean diaspora society and construct an archival structure as well. Fifth, there is a need for research on economics and other fields on top of politics, culture and society of Korean Diaspora. Based on the results of this study, this paper proposes an integrated study on the Korean Diaspora living in the ASEAN region. If appropriate integrated research is carried out, it will be possible to expect the strategic importance of missions in ASEAN region, securing interdisciplinary dialogue between missiology and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building a database for establishing diaspora missions strategy and forming a Korean Diaspora missions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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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성 의제로 읽는 아르헨티나 한인 시- 맹하린, 윤춘식, 임동각을 중심으로

최종환

[NRF 연계] 한국비평문학회 비평문학 Vol.69 2018.09 pp.321-352

...한인들의 시문학을 '혼종성'의 아젠다로 탐색하는 것이다. 분석 방법론으로 이동성/로컬리티의 이론을 활용하였다. 연구에서는 이 한인들의 초국가적 이동성이 동북아시아 한인들이 구성시킨 국가주의적 로컬리티와는 다른 맥락을 구성한 부분에 주목하였다. 이 자발적인 이주자들이 이주지에 구성한 장소성은 매우 유동성이 큰 것이어서 그들만의 독특한 혼종적상상력을 끌어내는 유인이 됐다. 재아한인시에 나타난 혼종성은 다양한 각도에서분석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존재론적 혼종성’의 측면에 국한하였다. 이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 교회 위주로 활동했던 그들의 글쓰기 이력과 다문화적신비로 가득했던 남미적 무의식이 상호 교계하는 과정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이연구에서는 이러한 내적 논리를 ‘이동성의 성화(聖化)’라는 키워드로 언급하였다.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 국경을 넘을 수 있었던 이 자발적 이주자들의 경우에 그리움의 대상은 한국이 아닌 모국(母國)이었다. 그리움과 연계한 이 모성적 구원의 공간은 남미의 신비적 언어, 그리고 종교적 어법과 쉽게 혼종되면서 초월성을 띠기시작한다. 이 시인들은 이주지 교회에서 학습한 신앙언어들을 남미주의 신비로운자연 풍광과 혼종화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대자연이 그 피안의 풍광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종교적 초월성을 모성적 모국의 감성으로 성화(聖化)해 냈다. 그들 시에 나타난 '피안 감성'은 그들이 되돌아가야 할 한반도를 지상 너머의 피안으로 자주 상상시켰다. 그들에게 어머니가 계신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욕망은 기독교 신앙과 남미의 다문화 무의식과 혼종되면서 구원의 '길찾기'의 욕망으로 대체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가 아닌 '길'이자 ‘장소’였다. 이 장소는 맹하린의 시에서는 길의 뒤섞임으로, 윤춘식의 시에서는 얼굴의 포개짐으로, 임동각의시에서는 고향의 겹쳐짐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혼종적 상상은 이 세 시인의 디아스포라적 무의식이 여타 지역의 한인들과는 다른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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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한인들의 시문학을 '혼종성'의 아젠다로 탐색하는 것이다. 분석 방법론으로 이동성/로컬리티의 이론을 활용하였다. 연구에서는 이 한인들의 초국가적 이동성이 동북아시아 한인들이 구성시킨 국가주의적 로컬리티와는 다른 맥락을 구성한 부분에 주목하였다. 이 자발적인 이주자들이 이주지에 구성한 장소성은 매우 유동성이 큰 것이어서 그들만의 독특한 혼종적상상력을 끌어내는 유인이 됐다. 재아한인시에 나타난 혼종성은 다양한 각도에서분석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존재론적 혼종성’의 측면에 국한하였다. 이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 교회 위주로 활동했던 그들의 글쓰기 이력과 다문화적신비로 가득했던 남미적 무의식이 상호 교계하는 과정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이연구에서는 이러한 내적 논리를 ‘이동성의 성화(聖化)’라는 키워드로 언급하였다.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 국경을 넘을 수 있었던 이 자발적 이주자들의 경우에 그리움의 대상은 한국이 아닌 모국(母國)이었다. 그리움과 연계한 이 모성적 구원의 공간은 남미의 신비적 언어, 그리고 종교적 어법과 쉽게 혼종되면서 초월성을 띠기시작한다. 이 시인들은 이주지 교회에서 학습한 신앙언어들을 남미주의 신비로운자연 풍광과 혼종화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대자연이 그 피안의 풍광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종교적 초월성을 모성적 모국의 감성으로 성화(聖化)해 냈다. 그들 시에 나타난 '피안 감성'은 그들이 되돌아가야 할 한반도를 지상 너머의 피안으로 자주 상상시켰다. 그들에게 어머니가 계신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욕망은 기독교 신앙과 남미의 다문화 무의식과 혼종되면서 구원의 '길찾기'의 욕망으로 대체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가 아닌 '길'이자 ‘장소’였다. 이 장소는 맹하린의 시에서는 길의 뒤섞임으로, 윤춘식의 시에서는 얼굴의 포개짐으로, 임동각의시에서는 고향의 겹쳐짐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혼종적 상상은 이 세 시인의 디아스포라적 무의식이 여타 지역의 한인들과는 다른 것임을 보여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ad poetry of Koreans thatmigrated to Argentina through 'Hybridity' agenda. The mobility /locality theory was used as a method of analyzing works. Thisstudy focuses on their transnational mobility. Their transnationalmobility has formed a spacial locality that is different from thenationalistic space that Koreans in Northeast Asia region haveestablished in the migration area. The new placeness of this newimmigrant was the result of their voluntary mobility. This is what Iwant to study about the path that made up a unique hybrid spacein their work. The hybridity in Korean poetry in Argentina can beanalyzed from various angles. However, this article confined itselfto the aspect of 'ontological hybridity'. This is because they paidattention to the history of their migration to Argentina. They werechurch-centered and had a South American unconsciousness that wasfull of multicultural mysteries. In this study, I refer to the internallogic of their literature in this process as the keyword 'sanctificationof mobility'. In the case of these Koreans who voluntarily crossedthe border, it was their home country, not Korea, that came to belonging for them. This maternal space of salvation in connectionwith nostalgia begins to become transcendent, easily confused withthe mystical language and religious language of South America. These poets mixed faith languages learned in the church with themystical natural scenery of South America. It is because the nature of Argentina is an provided the scenery of the heaven. They havesanctified this religious transcendence with the sensitivity of theirmother country. These ‘Sacred religious sensibility’ did not imaginewhere they should go back to the Korean Peninsula. To them itwas often imagined as a sacred place beyond the ground. Theirdesire to return to their motherland was mixed with the Christianfaith and the multicultural unconsciousness of South America. Thedesire is replaced by the desire of "finding a way" of salvation. The important thing at this time was not the 'state' but 'the road'and 'place'. This place seemed to be the overlap of the road in thepoem of Meng ha-rin, the overlap of the face in the poem of YoonChun-sik, and the overlap of the hometown in the cpoem of Imdong-gak. This hybrid idea suggests that the three poets' diasporicunconsciousness is distinct from the other Koreans in other parts of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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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코리아(One Korea) 운동과 한인 디아스포라

전진호

[NRF 연계]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日本硏究 Vol.30 2018.08 pp.151-174

...한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하고, 동포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토양을 두텁게 하는 대중, 문화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원 코리아 운동’은 정치조직이 아니라 문화 활동을 통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연대를 강화하는 조직이다. ‘원 코리아 페스티벌’은 그동안, 일본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반목과 갈등을 겪고 있는 재일한인의 화합을 위해 노력해 왔다. 재일한인이 먼저 화합하여 ‘하나’가 되고, 조국과 해외 코리안의 가교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원 코리아’의 실현에 공헌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평화롭고 창조적인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논문은 ‘원 코리아’ 운동의 형성과 전개, 일본사회 내의 ‘원 코리아’ 운동의 의미, 한인 디아스포라 운동으로서의 함의, 일본에서의 일시적인 거류(居留)가 아닌 영구한 정주(定住)로서의 ‘원 코리아’ 운동의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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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오사카에서 ‘원 코리아(One Korea)’를 구호로 내건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 축제는 해방 40주년이 되는 해에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구별을 없애고 하나가 되자는 운동이었다. 일본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포들이 한국계의 민단, 북한계의 총련으로 나뉘어 이념논쟁과 대립을 하지 말고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갖자는 것이다. ‘원 코리아’ 운동은 대중예술을 통해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고정 이미지를 바꾸고, 한국계 동포와 북한계 동포의 화합을 이뤄내자는 축제로 시작되었다. ‘원 코리아 운동’은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재일한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하고, 동포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토양을 두텁게 하는 대중, 문화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원 코리아 운동’은 정치조직이 아니라 문화 활동을 통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연대를 강화하는 조직이다. ‘원 코리아 페스티벌’은 그동안, 일본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반목과 갈등을 겪고 있는 재일한인의 화합을 위해 노력해 왔다. 재일한인이 먼저 화합하여 ‘하나’가 되고, 조국과 해외 코리안의 가교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원 코리아’의 실현에 공헌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평화롭고 창조적인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논문은 ‘원 코리아’ 운동의 형성과 전개, 일본사회 내의 ‘원 코리아’ 운동의 의미, 한인 디아스포라 운동으로서의 함의, 일본에서의 일시적인 거류(居留)가 아닌 영구한 정주(定住)로서의 ‘원 코리아’ 운동의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In 1958, a festival was held in Osaka under the slogan “One Korea.” The festival started with the purpose of having real team spirit as one ethnic group instead of suffering from ideological conflicts between pro-Seoul Korean Residents Union(Mindan) and pro-Pyongyang General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Chogryon). The aim of the One Korea Festival was to change Japanese’ fixed and preconceived image of Korean through popular art and to achieve national harmony between South Koreans and North Koreans. The One Korea Festival has established itself as a social movement that helps young Koreans in Japanese society to embrace their identity and strengthens the mental and cultural grounds of their communities. In other words, the festival is not a political organization but rather an organization that strengthens the solidarity of Korean Diaspora through cultural activities. The One Korea Festival is aiming to unite Korean-Japanese together first and play a key role in bridging the gap between overseas Koreans as well as contribute to realize ‘One Korea’, ultimately bringing about a peaceful and creative East Asian community. In this regard, this paper conducted a comprehensive analysis on the creation and evolution of the One Korea Festival, the significance of the festival within Japanese society, the implication of Korean Diaspora and the importance of One Korea Festival as a permanent settlement in Japan rather than a temporary resid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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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브라질의 경기침체와 한인사회의 도전

최금좌

[NRF 연계] 한국 포르투갈-브라질 학회 포르투갈-브라질 연구 Vol.15 No.2 2018.08 pp.95-133

...한인사회가 2013년 2월 12일 이민 50주년을 맞았을 때, 필자는 “세계 이민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이민 집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 후반기부터 브라질 한인사회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재정위기가 브라질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2016년 8월 31일 질마 호세피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어두운 측면에서 촉발된 브라질의 경제․정치적 위기는 브라질인들의 해외이주를 증가시켰는데, 최근 브라질 한인들 역시 구성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만 명이 한국으로의 귀국을 선택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필자는 브라질의 경기침체 현상이 가시화된 이후, 최근 5년 동안 브라질 한인사회가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를 관찰해보며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2013년까지 브라질 한인사회의 경제적 중심지였던 코리아타운 ‘봉헤치루’(Bom Retiro)에서 브라스(Brás)로 이동했을 정도로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브라질 한인사회는 코리아타운 ‘봉헤치루’(Bom Retiro)를 지켜내기 위해서, 문화마케팅에 전념하고 있다. 그 결과 브라질 「한인회」는 봉헤치루를 한류의 전파기지로 삼고자, 최근 입구에 한인의 상징으로 “우리”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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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이민으로 형성된 브라질 한인사회가 2013년 2월 12일 이민 50주년을 맞았을 때, 필자는 “세계 이민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이민 집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 후반기부터 브라질 한인사회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재정위기가 브라질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2016년 8월 31일 질마 호세피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어두운 측면에서 촉발된 브라질의 경제․정치적 위기는 브라질인들의 해외이주를 증가시켰는데, 최근 브라질 한인들 역시 구성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만 명이 한국으로의 귀국을 선택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필자는 브라질의 경기침체 현상이 가시화된 이후, 최근 5년 동안 브라질 한인사회가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를 관찰해보며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2013년까지 브라질 한인사회의 경제적 중심지였던 코리아타운 ‘봉헤치루’(Bom Retiro)에서 브라스(Brás)로 이동했을 정도로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브라질 한인사회는 코리아타운 ‘봉헤치루’(Bom Retiro)를 지켜내기 위해서, 문화마케팅에 전념하고 있다. 그 결과 브라질 「한인회」는 봉헤치루를 한류의 전파기지로 삼고자, 최근 입구에 한인의 상징으로 “우리”를 건립했다.

When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whose ancestry traces back to the first official emigration group of the Republic of Korea, commemorated the 50th anniversary of the 12th of February, 2013, I named it “the economically most successful immigrant group over the shortest period of time in the history of migration.” Since then, however,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has gone through significant changes. As the global financial crisis in 2008 affected the Brazilian economy, President Dilma Rousseff was impeached on August 31, 2016. The economic and political crisis in Brazil, triggered by the negative aspects of the neoliberal economic system, caused Brazilians to move abroad. The situation also affected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10,000 Korean immigrants, one fifth of the Korean population in Brazil, chose to return to Korea. This article aims to investigate what kind of efforts has been made in the Korean community to overcome the situation, since the economic recession was observed in Brazil, and to suggest some alternatives for future attempts. As the economic base of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has collapsed,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is dedicated to cultural marketing in order to defend its own domain, which caused the Association of Korean Immigrants to decide to construct “Uri” as a symbol of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at the entrance of Bom Ret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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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서 ‘한인여성’으로: 한인여성의 독일이주의 역사화

박채복

[NRF 연계] 한국유럽학회 유럽연구 Vol.36 No.3 2018.08 pp.295-318

...한인여성의 이주역사를 재구성하고 이들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인 고려와 개발 및 국제이주라는 역사적 사실이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파독간호인력 집단을 중심으로 한인여성의 독일이주에 대한 역사화작업을 시도하고자 한다. 한국의 경제개발과정에서 파독간호인력들의 집단이주가 개인의 선택으로 진행된 국제이주란 점에서 이들의 이주에 영향을 주었던 요인들이 무엇이며, 일반적인 한인이주의 역사와는 다른 이주의 특징은 무엇인지 국경을 넘는한인여성들의 독일이주의 배경과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첫째, 독일 한인여성 이주역사를 재구성해보고, 그동안 독일 한인여성의 이주 관련 연구가 어떻게 진행됐으며, 한계 및 문제점은 무엇인지 선행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 및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둘째, 독일 한인여성의 이주 배경과 정책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분석을 위해 개발과 국제이주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독일 이주정책과 한인여성 이주와의 상관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셋째, 초기 집단이주 과정에서 독일 한인여성의 이주의 주체화 및 한국문화와 독일문화의 융합과 혼종성을 통해 국경을 넘는 한인여성들의 타자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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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독일 한인여성의 이주역사를 재구성하고 이들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인 고려와 개발 및 국제이주라는 역사적 사실이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파독간호인력 집단을 중심으로 한인여성의 독일이주에 대한 역사화작업을 시도하고자 한다. 한국의 경제개발과정에서 파독간호인력들의 집단이주가 개인의 선택으로 진행된 국제이주란 점에서 이들의 이주에 영향을 주었던 요인들이 무엇이며, 일반적인 한인이주의 역사와는 다른 이주의 특징은 무엇인지 국경을 넘는한인여성들의 독일이주의 배경과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첫째, 독일 한인여성 이주역사를 재구성해보고, 그동안 독일 한인여성의 이주 관련 연구가 어떻게 진행됐으며, 한계 및 문제점은 무엇인지 선행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 및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둘째, 독일 한인여성의 이주 배경과 정책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분석을 위해 개발과 국제이주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독일 이주정책과 한인여성 이주와의 상관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셋째, 초기 집단이주 과정에서 독일 한인여성의 이주의 주체화 및 한국문화와 독일문화의 융합과 혼종성을 통해 국경을 넘는 한인여성들의 타자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This paper will examine the history of Korean diaspora women’s life and experience in German society by pioneering new life beyond migration. It is worth noting that in order to reconstruct the migration history of Korean diaspora women in Germany, the historical facts of policy consideration and development and international migration at the national level are closely related. What are the factors that influenced the migration of Korean diaspora women in the process of economic development in Korea in terms of the international migration of Korean immigrants, and to examine the background and policy of Korean diaspora women in Germany. To do so, first, this paper will try to reconstruct the history of migration of Korean diaspora women in Germany, and to conduct a systematic review and analysis of previous studies on how migration studies of Korean diaspora women in Germany have progressed, limitations and problems. Second, to analyze the background and policy of migration of Korean diaspora women in Germany, this paper would like to clarify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and German migration policies and Korean migration in terms of development and international migration. Third, this paper will examine the process of objectification of Korean diaspora women over the border through the integration of Korean women and the convergence and hybridity of Korean culture and Germ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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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在蘇)한인 작가들의 문학작품 연구-한인신문 ≪선봉≫에 수록된 작품을 중심으로-

이화경

[NRF 연계]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Vol.43 2018.06 pp.25-43

...한인들의 디아스포라적인 삶과 인식이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으며 어떻게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23년에 창간된 ≪선봉≫은 재소(在蘇) 한인들의 최초의 한글 신문으로, 문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한글문학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고 일군 선구자 역할을 했다. ≪선봉≫은 연해주로 이주한 지식인과 작가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민족어인 한국어로 작품을 창작하고 발표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매체였다. ≪선봉≫은 1937년에 폐간되어 ≪레닌기치≫로 재탄생되기까지 한글문학의 영역을 구소련까지 확대하고 발전시키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형성의 단초를 제공하고, 이후 중앙아시아로 이주하게 된 한인 작가들의 문학적 맹아(萌芽)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선진적인 매체였다. 재소 한인 작가들은 전통의 단절과 새로운 이념의 개입의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을 알리기 위해 ‘신문’과 ‘문학’이라는 근대적인 매체를 통해 연해주 동포들의 인식을 바꿔놓으려 노력했다. 이는 ≪선봉≫의 작가들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상상의 공동체’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으로 무장한 근대문학이라는 ‘느낌의 공동체’를 통해 그들만의 역사적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20~ 30년대라는 특정한 시기와 10월 혁명이 구현된 소비에트라는 공간 속에서 조선의 망명자들이 그들만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를 부여한 역사적 공동체라는 특이점을 보이고 있다. ≪선봉≫매체의 주체들은 재소 한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신문과 한글이라는 언문일치의 도구를 통해 공감된 세계와 상상적 세계를 재현하고자 했다. 물론 과도한 정치적 요구와 이념에 경도된 도구화된 문학으로 점철되어 있는 경향성을 띠고 있긴 하지만 시대정신을 강력하게 상기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상상의 공동체’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으로 무장한 근대문학이라는 ‘느낌의 공동체’를 통해 그들만의 역사적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했다는 점이 지금 현재 무력한 문학을 향해 혁명적 상상력이 왜 필요한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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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상상의 공동체’이자 ‘느낌의 공동체’를 함께 건설하려고 했던 ≪선봉≫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보다 개괄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선봉≫에 실린 문학 작품들을 중심으로 재소 한인들의 디아스포라적인 삶과 인식이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으며 어떻게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23년에 창간된 ≪선봉≫은 재소(在蘇) 한인들의 최초의 한글 신문으로, 문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한글문학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고 일군 선구자 역할을 했다. ≪선봉≫은 연해주로 이주한 지식인과 작가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민족어인 한국어로 작품을 창작하고 발표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매체였다. ≪선봉≫은 1937년에 폐간되어 ≪레닌기치≫로 재탄생되기까지 한글문학의 영역을 구소련까지 확대하고 발전시키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형성의 단초를 제공하고, 이후 중앙아시아로 이주하게 된 한인 작가들의 문학적 맹아(萌芽)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선진적인 매체였다. 재소 한인 작가들은 전통의 단절과 새로운 이념의 개입의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을 알리기 위해 ‘신문’과 ‘문학’이라는 근대적인 매체를 통해 연해주 동포들의 인식을 바꿔놓으려 노력했다. 이는 ≪선봉≫의 작가들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상상의 공동체’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으로 무장한 근대문학이라는 ‘느낌의 공동체’를 통해 그들만의 역사적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20~ 30년대라는 특정한 시기와 10월 혁명이 구현된 소비에트라는 공간 속에서 조선의 망명자들이 그들만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를 부여한 역사적 공동체라는 특이점을 보이고 있다. ≪선봉≫매체의 주체들은 재소 한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신문과 한글이라는 언문일치의 도구를 통해 공감된 세계와 상상적 세계를 재현하고자 했다. 물론 과도한 정치적 요구와 이념에 경도된 도구화된 문학으로 점철되어 있는 경향성을 띠고 있긴 하지만 시대정신을 강력하게 상기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상상의 공동체’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으로 무장한 근대문학이라는 ‘느낌의 공동체’를 통해 그들만의 역사적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했다는 점이 지금 현재 무력한 문학을 향해 혁명적 상상력이 왜 필요한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and examine the writers and works of ≪Seonbong≫, which was an attempt to construct ‘Imaginary Community’ and ‘Feeling Community’ in a more general and concrete dimension. In other words, it is aimed to reveal the trajectory of diaspora life and recognition of the Korean refugees centering on literary works in ≪Seonbong≫, and how they are shaped literary and what meaning and value it has. ≪Seonbong≫, which was created in 1923, was the first Korean-language newspaper of the residents of Soviet., and opened up literary pages to pioneer Korean language literature and acted as a pioneer in the field. ≪Seonbong≫was expanded in 1937 and expanded to the Soviet Union until the rebirth of ≪Lenin Gichi≫ to the Soviet Union, providing the basis of socialist realism, and then the literary bud of Korean writers who moved to Central Asia was an advanced medium that faithfully fulfilled its role. Korean writers who tried to change the perception by means of modern media such as ‘Newspaper’ and ‘Literature’ in order to inform the literary works influenced by the interruption of tradition and the intervention of new ideologies. It can be seen that the writers of ≪Seonbong≫ sought to realize their own historical community through the “imaginary community” composed of communist ideology and the “feeling community” of modern literature armed with socialist realism theory. Also, in the specific period of the 1920s and 1930s and the Soviet space in which the October Revolution was realized, the exiles of Chosun show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 of the historical community that is constituted and meaningful through their own experiences. ≪Seonbong≫ tried to reproduce the world and the imaginary world that were sympathized through newspapers and Hangul, a tool for communicating with Korean residents. Of course, it has a tendency to be dotted with instrumentalized literature that is devoted to excessive political demands and ideologies, but has shown a powerful reminder of the spirit of the times. Above all, they tried to realize their own historical community through the “imaginary community” composed of communist ideology and the “feelings community” of modern literature armed with socialist realism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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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회고로 보는 1900년대 전반기 북간도 한인의 장례문화

김시덕

[NRF 연계]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학연구 Vol.42 2018.06 pp.17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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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a number of research cases on Korean’s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in North Gando. However, it is difficult to find any ethnographical research on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It is because historical studies have focused on examining the cause-and-effect relationship reflected in a historical events. The Koreans in North Gando crossed the Duman(Tumen) River in order to build an utopia and created a self-government organization to live like a human being in another country. In order to overcome the sorrow of losing their country, they staged an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Therefore, their life culture(folklife)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supporting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Korean way of life and culture based on the funeral culture of North Gangdo which has been regarded as the background of the anti- 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from 1900 to 1945. Fortunately, some photographic evidences can allow us to understand the funeral culture through the methodology of photographic folkloristics(history) which reads information from the photo even if very few historical materials survive. From 1910 to 1920, all leaders of Myeongdong village became elders and their second generation became pastors so that the village quickly became a Christian community. The Confucian funeral culture which was predominant in the early days of emigration shifted to the Christian way of ritual. In many ways, however, there have been some mixture of both cultures in the funeral culture. For instance, there was the mourning robes made of silk which has been quite strongly handed down to later generations who are protestant christians. It is quite particular for children to wear ordinary clothes with a cone hat. However, the custom of using funerary host’s stick was completely disappeared. Particularly, when an unmarried young person passed away, the funeral tends to be a simplified without strict rule of clothing. It is similar the traditon that men stand east, while women do west. Unlike the tradition, female family member sometimes join to a journey to the burial site. An ancestral tablet was replaced with a picture of deceased. It is possible that other details such as black ribbons of picture, armbands and weeds could be influenced by Rules of Domestic Rituals(家庭儀禮準則) or funeral culture from Japan. Even if the funeral culture in North Gando was apparently Christian, cultural syncretism with the traditional funeral elements was reflected. Consequently, it can be regarded as Christians' adaptation of the Confucian funeral culture. It is the specific tradition that the Koreans who built an utopia in North Gando calls thei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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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nic Enclave로서의 한인타운의 형성과 역할 분석: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과 뉴욕 한인타운을 사례로

신희정

[NRF 연계] 인문사회21 인문사회21 Vol.9 No.3 2018.06 pp.717-728

...한인타운이 ethnic enclave로써 보유하고 있는 동질성을 문헌분석적 연구방법으로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최근의 이주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며, 한인들은 경제력과 연령, 교육 수준에 따라서 한인타운에 대한 의존도가 상이하게 나타났다. 가구당 소득이 높고, 연령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한인타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다. 교육열이 강하고 경제력이 있는 젊은 층은 한인타운 주변의 백인밀집 지역을 정착지이며 거주 지역으로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부유한 젊은 세대들이 굳이 한인타운에서 거주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연구는 추후에 참여관찰과 심층면담을 포함하는 연구를 통하여 전 세계의 한인 밀집지역을 연구하는데 있어 참고자료로 이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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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이주민들이 정착하는데 있어 ethnic enclave가 대부분의 이주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일반적인 사고에 대한 연구를 함으로써 이주자들의 집단 거주지에 대한 의존도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이 연구는 로스엔젤레스와 뉴욕의 한인타운이 ethnic enclave로써 보유하고 있는 동질성을 문헌분석적 연구방법으로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최근의 이주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며, 한인들은 경제력과 연령, 교육 수준에 따라서 한인타운에 대한 의존도가 상이하게 나타났다. 가구당 소득이 높고, 연령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한인타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다. 교육열이 강하고 경제력이 있는 젊은 층은 한인타운 주변의 백인밀집 지역을 정착지이며 거주 지역으로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부유한 젊은 세대들이 굳이 한인타운에서 거주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연구는 추후에 참여관찰과 심층면담을 포함하는 연구를 통하여 전 세계의 한인 밀집지역을 연구하는데 있어 참고자료로 이용하고자 한다.

This study is based on the formation of the Korean Towns in New York and Los Angelus (LA), USA. LA's Korean Town holds the most population of Koreans and thus is the biggest Korean Town while New York's flushing Korean Town is the biggest Korean Town of the eastern part of USA. The study examined the immigration and residental rate of the two towns, which most significantly represent 'Korean Towns' in its population concentration and scale. This study used other similar studies as reference. Through the study, we examined the similarities of the two towns as ethnic enclaves and how Korean Town's commercial and residental areas affect the Korean immigrants in the area. As a result, the more national income, the less age, and the more education received, the less people relied on the Korean community. Young Koreans with higher education and greater income seemed to prefer Caucasian-concentrated residental areas over Korean Town. It seems, this group of Koreans do not feel the necessity to live in Korean Towns since they are able to speak decent English. We plan to use this study, with the addition of other observation/interview based studies, as a reference to study Korean-concentrated places throughout the world, such as Canada, Brazil. Australia, and New Zea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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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한인 소설에 나타난 개발독재시대의 기억과 자기표상

이상진

[NRF 연계]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Vol.22 No.2 2018.06 pp.189-218

...한인 소설을 대상으로 하여 개발독재 시대 파독이 가져다 준 삶의 변화가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재독한인의 소설은 대체적으로 독일에서의 정주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상태에서 다양한 목적에 따른 이주와 정주과정에서 생긴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것을 가족 해체와 가족 만들기, 문화통합과 역문화충격, 여성이주자 문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주나 정주 과정에서 가족은 중요한 변수로 그려진다. 가족 분리로 인한 불안과 고립감 때문에 국내 가족이 해체되고 한독가정을 꾸리는 이야기나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파독광부와 간호사가 집단적으로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정주의 다양한 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정주이후 독일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변화하고 소통하는 한인들의 긍정적 이야기 한편에서는 고국의 변화된 모습에 역문화충격을 받고 귀향을 포기하는 이야기도 있다. 고착된 기억과 관습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문화적 경제적 수준차이에서 오는 박탈감 때문에 귀향할 수 없는 경계인의 처지가 쓸쓸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부장제의 내면화와 고착으로 인한 성역할 갈등과 노동착취, 가정폭력 등도 주요한 주제이다. 이 중에는 개발독재시대의 여성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소설이 많다. 여성작가조차 자기 속의 가부장적 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문제를 은폐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비주체적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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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2000년대 이후 발표된 재독한인 소설을 대상으로 하여 개발독재 시대 파독이 가져다 준 삶의 변화가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재독한인의 소설은 대체적으로 독일에서의 정주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상태에서 다양한 목적에 따른 이주와 정주과정에서 생긴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것을 가족 해체와 가족 만들기, 문화통합과 역문화충격, 여성이주자 문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주나 정주 과정에서 가족은 중요한 변수로 그려진다. 가족 분리로 인한 불안과 고립감 때문에 국내 가족이 해체되고 한독가정을 꾸리는 이야기나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파독광부와 간호사가 집단적으로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정주의 다양한 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정주이후 독일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변화하고 소통하는 한인들의 긍정적 이야기 한편에서는 고국의 변화된 모습에 역문화충격을 받고 귀향을 포기하는 이야기도 있다. 고착된 기억과 관습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문화적 경제적 수준차이에서 오는 박탈감 때문에 귀향할 수 없는 경계인의 처지가 쓸쓸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부장제의 내면화와 고착으로 인한 성역할 갈등과 노동착취, 가정폭력 등도 주요한 주제이다. 이 중에는 개발독재시대의 여성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소설이 많다. 여성작가조차 자기 속의 가부장적 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문제를 은폐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비주체적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take a look on how the novels of Koreans in Germany are depicting the change of lives due to dispatch to Germany in the developmental dictatorship period. These novels are narrating the events in the process of emigration and settlement in Germany. The novels deal with family issues, cultural integration and reverse culture shock, and female migrators issues. Family is the most primary factor in the process of emigration and settlement. Different aspects of settlement are found through stories of having new Korean-German families with original Korean families dissolving because of anxiety and sense of isolation due to the separation of families or stories of Korean miners and nurses dispatched to Germany meeting in groups in order to obtain the official permission of longer stay via marriage. On one hand, there are bright stories of Koreans, who grow up as confident members in German society, and who achieve Korean-German cultural integration after settlement. However, on the other hand, there are stories of Koreans abandoning going home as well because of the reverse culture shock. They become borderers in that they cannot not fill in the cultural and economic difference between now and then of their mother country; their memories and custom are outdated, and they feel deprivation from how much cultural and economic standards of Korea developed while their life standards they thought hardly did. Gender role conflicts, labor exploitation, and family violence as a result of internalization and fixation of patriarchy are another primary theme. There are many novels that show familistic values where sacrificing for male family members are granted as female subalterns of developmental dictatorship period did. Even in the novels of female writers, it could be confirmed that problems are narrated in non-independent ways ? concealing, equivocating, and insinuating ?, keeping patriarchy in one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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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성과 정치성의 복원과 극복 — 韓中日의 중국 현대 한인제재시가 연구 고찰

김재욱

[NRF 연계] 중국어문학회 중국어문학지 Vol.63 2018.06 pp.249-281

...한인제재시가 연구는 지난 30여 년간 주로 한중에서 지속적인 새로운 작품 소개, 일부 시가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 시가를 전문적으로 논한 논문의 출현, 전문 저서와 자료집 출판, 한중 협력 연구 등의 순으로 비교적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한국 학자를 중심으로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중일의 한인제제시가 연구에도 부분적으로 검토할 부분은 있다. 모종의 경향성에 치중한 연구, 한인제재소설 연구에 종속된 연구, 시가 연구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연구 범위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한국인 관련 중국 현대문학 작품’ 연구에 대한 기초 연구의 하나로 필자는 이 글에서 그동안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韓中日의 중국 현대 한인제재시가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분석하며 앞으로 한중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될 ‘한국․한국인 관련 중국 현대문학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를 준비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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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한국인 관련 중국 현대문학 작품’ 연구는 소설 분야에만 집중되어 시가, 산문, 극본, 한국문학 번역 등 다른 장르에 속하는 작품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장르에 대한 연구 성과는 결코 미미하지 않다. 한인제재시가 연구는 지난 30여 년간 주로 한중에서 지속적인 새로운 작품 소개, 일부 시가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 시가를 전문적으로 논한 논문의 출현, 전문 저서와 자료집 출판, 한중 협력 연구 등의 순으로 비교적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한국 학자를 중심으로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중일의 한인제제시가 연구에도 부분적으로 검토할 부분은 있다. 모종의 경향성에 치중한 연구, 한인제재소설 연구에 종속된 연구, 시가 연구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연구 범위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한국인 관련 중국 현대문학 작품’ 연구에 대한 기초 연구의 하나로 필자는 이 글에서 그동안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韓中日의 중국 현대 한인제재시가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분석하며 앞으로 한중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될 ‘한국․한국인 관련 중국 현대문학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를 준비하도록 하겠다.

It seems that researches on “modern Chinese literary works related to Korea and Korean people” have been concentrated in the genre of novels with little research effort invested in works of different genres including poetry, prose, script, and translation of Korean literature. A closer look, however, depicts a different picture, showing that the research achievements in other genres are never insignificant. In Korea and China over the last 30 years, researches on poems about Korean people have been conducted in a relatively systematic fashion in the order of introducing new works consistently, having intensive discussions about some poems, publishing papers based on the professional discussion of poetry, publishing specialized books and source books, and doing joint researches between Korea and China. There are, however, some parts to review even in the study of poems about Korean people in Korea, China, and Japan as the study has been carried out relatively smoothly mainly among Korean scholars. The parts include researches heavily inclined toward some tendency, those subordinate to the study of novels about Korean people, and the research scope of highlighting the characteristics of poetry research. As a basic study on researches on “modern Chinese literary works about Korea and Korean people,” the present study sorted out and analyzed Korean, Chinese and Japanese research findings with regard to modern Chinese poems about Korean people, which had not attracted attention in Korea, and prepared for total discussions about such works whose research would be full-blown in Korea an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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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한인 의열투쟁과 여성들의 역할

김명섭

[NRF 연계]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 Vol.28 2018.06 pp.175-192

...한인 여성들이었다. 김선희와 전정화는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중국 간도로 가 폭탄과 권총을 사서 기로틴 단원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징역 3년을 구형받아 복역하였다. 기생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한 여성으로는 현계옥을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의열단에 가입해 폭탄제조법과 총 쏘는 방법을 배워 조직의 비밀활동을 담당하였다. 주로 폭탄을 운반하는 위험한 일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혁명가의 자제로서 가풍에 따라 참여한 경우로는 이규숙을 들 수 있다. 그녀는 16세의 나이인 1925년 3월 중국 북경에서 일어난 밀정 김달하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1년여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이어 1930년 11월 부친과 동지들이 획득한 무기를 몸에 간직한 채 만주로 이송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처럼 의열투쟁 과정에서 한인 여성들은 비밀정보 연락원과 총기 및 폭탄 운반 등 매우 위험한 임무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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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항일투쟁의 과정에서 엿보이는 여성들의 활동과 그 역할을 살펴보았다. 국내와 일본, 중국과 만주 등지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의열투쟁인 박열의 반천황제 투쟁과 아나키스트들의 활동, 의열단 투쟁에는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여성들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도쿄에서의 계획은 흑우회의 박열이 서울의 지도자 김한을 통해 추진되었다. 김한은 일본과의 비밀연락을 취하기 위해 기생인 강향란과 이소홍을 참여시켰다. 강향란은 박열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도쿄에 직접 방문한 바 있고, 이후 상해로 떠났다. 그녀가 중국과 한국, 일본을 연결하는 정보요원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이소홍이 김한에게 보내는 박열의 편지를 두 차례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관동대지진 와중의 사회운동가 학살에 대한 보복테러가 대두되었는데, 그 단체인 기로틴단에게 폭탄과 총기를 지원한 이는 한인 여성들이었다. 김선희와 전정화는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중국 간도로 가 폭탄과 권총을 사서 기로틴 단원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징역 3년을 구형받아 복역하였다. 기생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한 여성으로는 현계옥을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의열단에 가입해 폭탄제조법과 총 쏘는 방법을 배워 조직의 비밀활동을 담당하였다. 주로 폭탄을 운반하는 위험한 일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혁명가의 자제로서 가풍에 따라 참여한 경우로는 이규숙을 들 수 있다. 그녀는 16세의 나이인 1925년 3월 중국 북경에서 일어난 밀정 김달하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1년여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이어 1930년 11월 부친과 동지들이 획득한 무기를 몸에 간직한 채 만주로 이송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처럼 의열투쟁 과정에서 한인 여성들은 비밀정보 연락원과 총기 및 폭탄 운반 등 매우 위험한 임무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conduct research the activities and roles of women in the process of anti - Japanese struggle in the 1920s. Through this, it can be seen that women of various professions and classes participated in the Anti-Emperor struggle, anarchists' activities, and the patriotic struggle of Park, which is a representative Euiyol-struggle in Korea, Japan, China and Manchuria. The plan in Tokyo was carried out by the leader of Seoul, Kim Han, as a bellwether. In order to get in touch with Japan, Kim Han participated in the Kanghwa Rangan and Lee Sohong. Hers seems clear that she acted as an intelligence agent linking China, Korea and Japan. In the Kanto Earthquake, a attack against the social activist massacre was on the rise. Korean women were the ones who supported the group, Guillotine party, with bombs and firearms. Kim Sun Hee and Jeon Jung Hwa bought the bombs and pistols and delivered them to the Guillotine party in order to pay back their family members. A woman who came from a ‘Gisang group’ name is Hyun-gueok. She joined the Euiyol-dan. She was the only woman to join a group of booths to learn how to make bombs and shoot guns, and was responsible for the secret activities of the organization. Mainly involved in dangerous things that carry bombs. In addition, Lee Gyu-sook is a case of participating according to the style as a self-restraint of the revolutionary. She had to live in prison for a year after being involved in the assassination of Kim Dal-ha, who died at the age of sixteen in March 1925 in Beijing, China. In November 1930, he carried out the dangerous task of transferring the weapons acquired by his father and comrades to Manchuria. In this process of struggle, Korean women are seen to have participated in very dangerous missions such as secret information liaison, firearms and bomb transpor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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