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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중국어문연구회 중국어문논총 Vol.42 2009.09 pp.245-266
...고문사류찬≫과 ≪경사백가잡초≫에 나타난 문체 분류 현상을 분석하였으며, 비교와 귀납적 방법을 운용하여 이 두 총집의 문체 분류 방법 및 관념상의 이동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논술하였다. 아울러 이 두 총집이 거둔 문체 분류학 방면에서의 성과가 후대의 중국 문체 분류학 대표 논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검토 평가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고문사류찬≫의 문체 분류는 그 구분이 대체로 엄격하고 정밀하며, 선록된 문장의 귀속도 비교적 합당하다. 요내는 문체의 성질에 착안하여 13체류로 분류하였으며, <서목>에서 각 문체의 원류와 변천 및 특징 등에 대해서 간명한 설명을 하였다. 그의 각 문체에 대한 설명은 매우 식견이 있어 상당히 풍부한 문체 이론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성취는 중국 고대 문체 분류학을 그 기초가 정형화된 단계로 나아가게 했으며, 후대 중국 문체학자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둘째, 증국번이 편찬한 ≪경사백가잡초≫는 ≪고문사류찬≫과 같은 간명한 문체 해설은 없지만,≪고문사류찬≫의 분류 기초위에서 부문별로 나누는 분류 방법을 응용하여 분류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또 문장총집의 선록 범위를 경, 사, 자, 집으로 확대하여 이전의 중국 전통 산문파 문체 분류가 당송 고문만 존숭하는 국면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후대 학계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셋째, 1949년 중국 건국 이래로 중국 문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중국 고대 문체 분류학의 성과를 계승하고 참고하는 동시에 현대문학 분류법의 장점을 받아들여 중국 문학작품의 체재에 대해 새로운 정리와 분류 및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중에서 당대 중국 문체 분류학의 연구 성과를 대표할만한 네 권의 논저를 선별하여 각각의 문체 분류 관련 분석과 논술의 주요 내용을 살펴 본 결과, 이들 문체학자들은 문체 분류의 방법 및 관념상 요내와 증국번의 문체 분류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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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 전통 문체 분류학 발전사의 시각에서 ≪고문사류찬≫과 ≪경사백가잡초≫에 나타난 문체 분류 현상을 분석하였으며, 비교와 귀납적 방법을 운용하여 이 두 총집의 문체 분류 방법 및 관념상의 이동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논술하였다. 아울러 이 두 총집이 거둔 문체 분류학 방면에서의 성과가 후대의 중국 문체 분류학 대표 논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검토 평가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고문사류찬≫의 문체 분류는 그 구분이 대체로 엄격하고 정밀하며, 선록된 문장의 귀속도 비교적 합당하다. 요내는 문체의 성질에 착안하여 13체류로 분류하였으며, <서목>에서 각 문체의 원류와 변천 및 특징 등에 대해서 간명한 설명을 하였다. 그의 각 문체에 대한 설명은 매우 식견이 있어 상당히 풍부한 문체 이론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성취는 중국 고대 문체 분류학을 그 기초가 정형화된 단계로 나아가게 했으며, 후대 중국 문체학자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둘째, 증국번이 편찬한 ≪경사백가잡초≫는 ≪고문사류찬≫과 같은 간명한 문체 해설은 없지만,≪고문사류찬≫의 분류 기초위에서 부문별로 나누는 분류 방법을 응용하여 분류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또 문장총집의 선록 범위를 경, 사, 자, 집으로 확대하여 이전의 중국 전통 산문파 문체 분류가 당송 고문만 존숭하는 국면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후대 학계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셋째, 1949년 중국 건국 이래로 중국 문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중국 고대 문체 분류학의 성과를 계승하고 참고하는 동시에 현대문학 분류법의 장점을 받아들여 중국 문학작품의 체재에 대해 새로운 정리와 분류 및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중에서 당대 중국 문체 분류학의 연구 성과를 대표할만한 네 권의 논저를 선별하여 각각의 문체 분류 관련 분석과 논술의 주요 내용을 살펴 본 결과, 이들 문체학자들은 문체 분류의 방법 및 관념상 요내와 증국번의 문체 분류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국내 ≪古文眞寶≫의 연구 개황과 문제점 ― 刊行ㆍ受容ㆍ傳播와 그 硏究를 중심으로
[NRF 연계] 중국어문연구회 중국어문논총 Vol.39 2008.12 pp.33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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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Vol.3 2008.12 pp.23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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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한국중국언어학회 중국언어연구 Vol.26 2008.06 pp.187-212
...古文은 兵器, 陶器, 古璽, 貨幣 등과 같은 고문자를 고증하는 하나의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문의 고문에 대하여 역대로 의논이 분분한데 반드시 그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다. 《汗簡》과 《石經》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소위 ‘傳抄古文’ 중에서도 그 가치를 이미 인정받은 중요한 傍證 자료이다. 《汗簡》과 《石經》을 이용하여 고대문자를 고증하는 학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본 논문도 이에 상응하여 《說文》古文과 《汗簡》, 《石經》의 古文을 서로 비교분석하여 古文의 진위를 가리려고 시도 하였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說文》古文은 모두 409자이다. 그중 《古尙書》,《古老子》,《古孝經》,《古史記》,《古論語》,《古爾雅》、《古周易》、《古周禮》등 ‘壁中書’에 부합되는 古文은 모두 247개이다. 이는 전체 古文의 60%좌우를 차지하고 있으며 ‘古文’임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에 의하여 첨가된 古文이라고 의심되는 글자가 모두 55개로 전체 古文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假借字, 轉注字가 섞여 있는가 하면 甲骨文, 金文 혹은 簡帛과 같은 문헌자료가 없어서 고증할 수 없는 古文이 나머지 26%를 차지하고 있다. 古文을 이용하여 고대문헌자료를 고증할 때 반드시 과학적인 태도로 임하여야 하며 아직도 많은 古文에 대해 정리와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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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文解字》의 古文은 兵器, 陶器, 古璽, 貨幣 등과 같은 고문자를 고증하는 하나의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문의 고문에 대하여 역대로 의논이 분분한데 반드시 그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다. 《汗簡》과 《石經》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소위 ‘傳抄古文’ 중에서도 그 가치를 이미 인정받은 중요한 傍證 자료이다. 《汗簡》과 《石經》을 이용하여 고대문자를 고증하는 학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본 논문도 이에 상응하여 《說文》古文과 《汗簡》, 《石經》의 古文을 서로 비교분석하여 古文의 진위를 가리려고 시도 하였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說文》古文은 모두 409자이다. 그중 《古尙書》,《古老子》,《古孝經》,《古史記》,《古論語》,《古爾雅》、《古周易》、《古周禮》등 ‘壁中書’에 부합되는 古文은 모두 247개이다. 이는 전체 古文의 60%좌우를 차지하고 있으며 ‘古文’임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에 의하여 첨가된 古文이라고 의심되는 글자가 모두 55개로 전체 古文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假借字, 轉注字가 섞여 있는가 하면 甲骨文, 金文 혹은 簡帛과 같은 문헌자료가 없어서 고증할 수 없는 古文이 나머지 26%를 차지하고 있다. 古文을 이용하여 고대문헌자료를 고증할 때 반드시 과학적인 태도로 임하여야 하며 아직도 많은 古文에 대해 정리와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NRF 연계]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Vol.10 No.4 2006.12 pp.30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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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unron in later Joseon Era was a freshly added concept to the existing prose tradition. Instead of following the established writing tradition, experimenting new sort of writing was a quite rebellious and challenging act in the Middle Ages when the compulsion of ideology and censorship was prevailed. One of the strategies which could weaken the danger was to experiment a new kind of prose writing through the traditional prose style. To begin with, medieval prose view of the East can be arranged as follows: First, prose in the East was established and classified according to the effective value of the writings; second, prose functioned as a systematic device not individual literary act; third, among the prose styles, narrative was more appreciated and recognized as a proper form than argument; fourth, prose aimed at reality and excluded fictional elements. In this context, Bijiryu seems the most proper style, because of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within the range of medieval eastern prose view. First, Jeongangryu and Bijiryu, which describes individual's biography, do not belong to literary creation but are a part of history. Second, Bijiryu has the most consistent and strictest structure among the prose genres. Bijiryu is practical prose and a part of history, and includes realistic content in the strict structure. Gomunron, a kind of Bijiryu, which tried a new pattern of prose writing, could have dualistic aspects; it was connected to the king Jeongjo's Munchebanjeong, which was conservative literary theory and the ruling ideology, and to relative and progressive one at the same time.
[NRF 연계]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Vol.9 2006.06 pp.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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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중국어문학회 중국어문학지 Vol.19 2005.12 pp.8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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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중국어문학연구회 중국어문학논집 Vol.28 2004.08 pp.359-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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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중국어문학회 중국어문학지 Vol.13 2003.06 p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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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일본 古文辭學派의 유가 사상에 대한 변용 및 도구화: 오규 소라이·다자이 슌다이의 인성론을 중심으로
[NRF 연계]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Vol.115 2025.03 pp.85-113
...古文辭學 派) which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development of Confucian thought during the mid-Edo period in Japan. On the surface, much like the actions of some contemporary scholars classified as 'Kokaku-ha,' they rejected the metaphysical epistemology and theory of human nature established by Neo-Confucianism and followed the theory of human nature and cultivation from ancient Confucian thought, embodied by Confucius. On one hand, this appears to assert the original intent of Confucianism as a study of statecraft and practical application, as proposed by a group of Confucian scholars during the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ies. However, it actually exhibits a unique order reflecting the distinctive cultural and ideological particularities of Edo-period Japan. By exploring these theories, I aim to shed light on the unique view of social order that was applied to the cultural value ideologies of the Edo shogunate regime and society. This view justifies a vertical class order by logically articulating two claims: the diversity and immutability of human nature and the deficiency of proactive moral cultivation of individuals. It advocates for a return to the origins of traditional Confucian thought, yet, by shedding the core aspects of its essence, it results in a 'instrumentalization' of the thought. Furthermore, it aligns with the theories of the school of law (法家) from ancient China, creating an intrinsic coherence, which allows for an anti-Confucian aspect to coexist within their philosophical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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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examines the theories of human nature put forth by Ogyu Sorai and his disciple, Dazai Shundai, who were key figures of the Kobunji-kakuha (古文辭學 派) which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development of Confucian thought during the mid-Edo period in Japan. On the surface, much like the actions of some contemporary scholars classified as 'Kokaku-ha,' they rejected the metaphysical epistemology and theory of human nature established by Neo-Confucianism and followed the theory of human nature and cultivation from ancient Confucian thought, embodied by Confucius. On one hand, this appears to assert the original intent of Confucianism as a study of statecraft and practical application, as proposed by a group of Confucian scholars during the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ies. However, it actually exhibits a unique order reflecting the distinctive cultural and ideological particularities of Edo-period Japan. By exploring these theories, I aim to shed light on the unique view of social order that was applied to the cultural value ideologies of the Edo shogunate regime and society. This view justifies a vertical class order by logically articulating two claims: the diversity and immutability of human nature and the deficiency of proactive moral cultivation of individuals. It advocates for a return to the origins of traditional Confucian thought, yet, by shedding the core aspects of its essence, it results in a 'instrumentalization' of the thought. Furthermore, it aligns with the theories of the school of law (法家) from ancient China, creating an intrinsic coherence, which allows for an anti-Confucian aspect to coexist within their philosophical perspectives.
[NRF 연계] 한국유교학회 유교사상문화연구 Vol.83 2021.03 pp.109-130
...고문상서의 변위(辨僞) 작업을 집대성한 염약거(閻若璩)는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하여 『상서고문소증』을 완성하였다. 그 대표적인 방법론이 바로 경전(經傳)의 문체가 문장 내의 협운(叶韻)을 중시했던 점에 착안한 성운(聲韻)의 비교 방법이다. 글자의 성운(聲韻)에 대한 염약거의 기본생각은 고음(古音)과 금음(今音)이 단절되었고, 후대인들이 상고 문장의 협운과 상고음을 알지못함으로 인해 『상서』의 위편에 그 허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우모」의 “윤집궐중(允執厥中)”구와 “덕내강(항)(德乃降)”, 「오자지가」의 “울도(鬱陶)”구와 “기삼왈(其三曰)”구, 「태서」의 “천시자아민시(天視自我民視)”구의 불협운(不叶韻)이다. 한편 고문(古文)에서 의도적으로 협운을 만든 경우와 고운(古韻)을 그대로 방치하여 의도치않게 협운이 된 경우도 존재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청대(淸代) 고증학의 성과 역시 현대 음운학(音韻學)에서는 또한 비판을 면치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상고(上古)와 현대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나름의 성과가 있었고, 『상서』의 변위과정에서도 적지않은 역할을 해냄으로써 고문상서의 위작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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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상서의 변위(辨僞) 작업을 집대성한 염약거(閻若璩)는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하여 『상서고문소증』을 완성하였다. 그 대표적인 방법론이 바로 경전(經傳)의 문체가 문장 내의 협운(叶韻)을 중시했던 점에 착안한 성운(聲韻)의 비교 방법이다. 글자의 성운(聲韻)에 대한 염약거의 기본생각은 고음(古音)과 금음(今音)이 단절되었고, 후대인들이 상고 문장의 협운과 상고음을 알지못함으로 인해 『상서』의 위편에 그 허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우모」의 “윤집궐중(允執厥中)”구와 “덕내강(항)(德乃降)”, 「오자지가」의 “울도(鬱陶)”구와 “기삼왈(其三曰)”구, 「태서」의 “천시자아민시(天視自我民視)”구의 불협운(不叶韻)이다. 한편 고문(古文)에서 의도적으로 협운을 만든 경우와 고운(古韻)을 그대로 방치하여 의도치않게 협운이 된 경우도 존재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청대(淸代) 고증학의 성과 역시 현대 음운학(音韻學)에서는 또한 비판을 면치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상고(上古)와 현대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나름의 성과가 있었고, 『상서』의 변위과정에서도 적지않은 역할을 해냄으로써 고문상서의 위작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제시되었다.
[NRF 연계] 한국중문학회 중국문학연구 Vol.75 2019.05 pp.245-267
...고문교육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고사성어를 통한 고문 교육의 효율과 그 선정기준, 학습내용 등을 고찰하였다. 고사성어를 통한 고문교육은 중국어에 대한 역사적, 공시적 이해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 나가는 지혜와 통찰, 그리고 고대 중국의 문화를 이야기 구성을 통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고사자체의 의미를 비롯하여, 원문과 관련된 어휘, 어법적 분석과 그 변천과정, 그리고 이를 통한 원문 해독, 관련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의 이해, 현대중국어로의 번역 등을 학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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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사성어를 통하여 현재 대학 중국어 고문교육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고사성어를 통한 고문 교육의 효율과 그 선정기준, 학습내용 등을 고찰하였다. 고사성어를 통한 고문교육은 중국어에 대한 역사적, 공시적 이해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 나가는 지혜와 통찰, 그리고 고대 중국의 문화를 이야기 구성을 통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고사자체의 의미를 비롯하여, 원문과 관련된 어휘, 어법적 분석과 그 변천과정, 그리고 이를 통한 원문 해독, 관련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의 이해, 현대중국어로의 번역 등을 학습한다.
This study is a part of efforts to overcome the problems in the teaching of Chinese classics to undergraduate students through ancient idioms, examined the efficiency of Chinese classics education through the use of ancient idioms, its selection criteria, and contents of study. Chinese classics education through the use of ancient idioms allows not only the historical and disciplinary understanding of Chinese, but also the wisdom and insight to live in modern times, and the interest of ancient Chinese culture through storytelling. In this course, students will learn about the meaning of the idioms itself, vocabulary related to the text, legal analysis and its process of translation, interpretation of the original text, understanding the related historical and cultural background, and translation into modern Chinese.
[NRF 연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Vol.100 2017.12 pp.361-388
...古文尙書』 의혹설에 주목한다. 청나라 사행단을 통해 명말청초 경학가 朱彛尊・顧炎武・毛奇齡의 설을 접한 것이 그 계기다. 그 가운데 『古文尙書』 문제를 촉발시킨 학자는 모기령이다. 모기령의 梅賾本 眞本說의 의도가 주자의 『古文尙書』 의혹설 부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학계에서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지식인들은 주자 설의 초년과 만년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 정설을 해명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 과정에서 주자의 의경정신 역시 파악하고 그 학문태도를 본받는 방향으로 학술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주자 설을 부정하는 목적을 가진 모기령의 尙書說을 접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기령의 설에 대응하기 위하여 주자의 尙書說을 보완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하려고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이준, 고염무, 염약거의 설을 적절한 논거로 활용한다. 특히 주이준의 尙書說은 조선후기 지식인이 주자의 『古文尙書』 의혹설에 주목하게 된 계기일 뿐만 아니라 모기령 비판의 핵심 논거로 활용된다. 서유구・성해응・정약용 등이 孔壁古文梅賾進上說・孔壁古文未確認說・書序孔傳疑惑說 등 주자의 의혹설의 요지를 파악하고 이를 해명하기 위하여 『曝書亭集』 권58 <尙書古文辨>, 권59 <書論>, 『經義考』 권73~77 「書」, 권284 「承師」 4 <尙書> 등에 수록된 주이준의 설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조선후기 지식인들이 주이준의 설을 근거로 주자의 『古文尙書』 의혹설을 옹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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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지식인들은 주자의 『古文尙書』 의혹설에 주목한다. 청나라 사행단을 통해 명말청초 경학가 朱彛尊・顧炎武・毛奇齡의 설을 접한 것이 그 계기다. 그 가운데 『古文尙書』 문제를 촉발시킨 학자는 모기령이다. 모기령의 梅賾本 眞本說의 의도가 주자의 『古文尙書』 의혹설 부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학계에서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지식인들은 주자 설의 초년과 만년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 정설을 해명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 과정에서 주자의 의경정신 역시 파악하고 그 학문태도를 본받는 방향으로 학술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주자 설을 부정하는 목적을 가진 모기령의 尙書說을 접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기령의 설에 대응하기 위하여 주자의 尙書說을 보완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하려고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이준, 고염무, 염약거의 설을 적절한 논거로 활용한다. 특히 주이준의 尙書說은 조선후기 지식인이 주자의 『古文尙書』 의혹설에 주목하게 된 계기일 뿐만 아니라 모기령 비판의 핵심 논거로 활용된다. 서유구・성해응・정약용 등이 孔壁古文梅賾進上說・孔壁古文未確認說・書序孔傳疑惑說 등 주자의 의혹설의 요지를 파악하고 이를 해명하기 위하여 『曝書亭集』 권58 <尙書古文辨>, 권59 <書論>, 『經義考』 권73~77 「書」, 권284 「承師」 4 <尙書> 등에 수록된 주이준의 설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조선후기 지식인들이 주이준의 설을 근거로 주자의 『古文尙書』 의혹설을 옹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The starting point of the issue was because they received Zhu Yi-zun, Gu Yan-wu, Yen Juoch's views. The orthodox neo Confucian scholar though, send envoys to channel to Qing Dynasty. Among them, scholar Mo Ki-rung, triggered the matter of Guwenshangshu. Because of that intention, Mo Ki-rung insisted that meize' Guwenshangshu copy was original which was to deny orthodox Neo-Confucianism.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Chos?n Dynasty, which is selected orthodox Neo-Confucianism as ruling ideology, they thought that Mo Ki-rung's theory had an underground opinion and can not be criticised. So Korean confucianists needed to conform to Mo's opinion. that's why they tried to supplement the view about 'Guwenshangshu' to arouse suspicion and prove the validity. Along the way they adopt Zhu Yi-zun, Gu Yan-wu, Yen Juoch's theory as grounds for the argument. Especially Zhu Yi-zun's theory is served as a momentum that Korean confucianists focused on the Chu Hsi's theory of shangshu and used this as the key argument. Seo yu-gu, Seong hae-uhng and Jeong Yak-yong selected Zhu Yi-zun's theory for the justification Chu Hsi's theory. It is these cases that jung-jo period's intellectuals used Zhu Yi-zun's theory for surporting Chu Hsi's theory.
[NRF 연계]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Vol.66 2017.06 pp.69-103
...古文辭學은 이 경학적 성격, 문학적 성격, 文化․思想的 성격을 모두 지닌다. 이 때문에 일본 유학에 관심을 보이는 학술의 장 여기저기서 徂徠의 古文辭學을 논하고 있다. 그런데 각각의 분야가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古文辭學 내에서 이 셋이 어떻게 만나고 연결되는지에 대한 탐토는 간과되었다. 뿐만 아니라 古文辭學의 성립과 형성에 있어 간과되어온 문제적 지점들을 探討의 장으로 소환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이 문제들을 다루어 徂徠의 六經 강조와 擬古文 지향이 ‘선왕과 공자의 道’를 ‘일본에 재현’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밝혔고, 그것은 조선 예교에 대한 대결의식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할 측면이 있다는 것을 논하였다. 또 하나, 우리는 우리 눈으로 徂徠 또는 徂徠學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반성적 질문을 제기하였다. 우리나 일본은 17, 8세기 지성계를 연구할 때 ‘근대성 찾기’에 대한 강박과 오류에 빠지곤 한다. 일본 경학에서의 근대성과 관련하여 집약적 상징성을 지닌 아이콘을 하나 꼽자면 徂徠라 할 수 있다. 우리 학계의 조래에 대한 시각은 일본 학계의 시각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일본 학계의 ‘근대성 찾기’ 강박에 우리까지 동원될 필요는 없다. 나아가 그것이 우리 학술사와 사상사 연구에 다소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조래학의 성격 규명과 함께 이 문제를 학계에 던지고자 한다.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日本 經學 분야에서 우리나라 학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학자는 荻生徂徠(1666-1728)이다. 그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커져 왔고, 그 연구 열기는 당분간 지속되리라 전망된다. 흐름은 크게 셋, 經學 방면의 연구, 文學 방면의 연구, 文化․思想 방면의 연구이다. 그의 古文辭學은 이 경학적 성격, 문학적 성격, 文化․思想的 성격을 모두 지닌다. 이 때문에 일본 유학에 관심을 보이는 학술의 장 여기저기서 徂徠의 古文辭學을 논하고 있다. 그런데 각각의 분야가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古文辭學 내에서 이 셋이 어떻게 만나고 연결되는지에 대한 탐토는 간과되었다. 뿐만 아니라 古文辭學의 성립과 형성에 있어 간과되어온 문제적 지점들을 探討의 장으로 소환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이 문제들을 다루어 徂徠의 六經 강조와 擬古文 지향이 ‘선왕과 공자의 道’를 ‘일본에 재현’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밝혔고, 그것은 조선 예교에 대한 대결의식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할 측면이 있다는 것을 논하였다. 또 하나, 우리는 우리 눈으로 徂徠 또는 徂徠學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반성적 질문을 제기하였다. 우리나 일본은 17, 8세기 지성계를 연구할 때 ‘근대성 찾기’에 대한 강박과 오류에 빠지곤 한다. 일본 경학에서의 근대성과 관련하여 집약적 상징성을 지닌 아이콘을 하나 꼽자면 徂徠라 할 수 있다. 우리 학계의 조래에 대한 시각은 일본 학계의 시각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일본 학계의 ‘근대성 찾기’ 강박에 우리까지 동원될 필요는 없다. 나아가 그것이 우리 학술사와 사상사 연구에 다소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조래학의 성격 규명과 함께 이 문제를 학계에 던지고자 한다.
This essay aims to examine the significance of the philology of Ogy? Sorai(1666-1728). Sorai is the Japanese scholar who has recently received the most enthusiastic scholarly attention among the Korean scholars of the Chinese classics. The scholarly attention to the Confucian philosopher has been steadily growing, and it will be continued for a while. The critical studies of Sorai have been performed in three major fields, that is, in those terms of Chinese classics, of literature, and of cultural history. His ancient rhetoric known as kobunji shows all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Chinese classics, literature, and cultural history. Because of this tendency, there has been discussions of the Sorai's ancient rhetoric, especially among those academic groups interested in Confucianism of Japan. However, since each field is completely separated, it has been overlooked how these different fields can be converged and connected in the study kobunji.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summon the problematic points that have been neglected in the establishment and formation of Sorai's ancient rhetoric. This paper deals with these problems and suggests that Sorai's emphasis on the six classics and his stress on the ancient philology are the ultimate purposes to 'represent in Japan' of the 'doctrines of the late king and Confucius. I also argue that we need to understand his kobunji in relation to conscious confrontation with Chosun's ethical code. Moreover, I raise a reflective question of whether we examine Sorai's classical studies with our own subjective eyes. When we study the intellectual communities of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y in Japan or Korea, we often fall into the compulsive dilemma of being eager to uncover the so-called "modernity." If we can name one iconic or symbolic figure who can show such spirit of modernity in the fields of the chinese classics in Japan, Sorai can be the one. However, the scholars in Korean academy community has followed in the footsteps of Japanese academia in the study of Sorai. There is no need to press us to join the Japanese academia that is obsessed with 'finding modernity' of Sorai's kobunji. Furthermore, the compulsion can cause serious problems in our historical studies of Korean classics and philosophies. I would like to throw this question into Korean academia while illuminating the modern characteristics of the Sorai's ancient rhetoric.
茅坤의 唐宋 古文 評點 비평에 대한 고찰 – 《唐宋八大家文鈔》를 중심으로
[NRF 연계]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Vol.86 2016.02 pp.45-69
...고문의 문장을 품평하고 감상하였으며 문장의 편장 구조와 창작의 기교 등을 주의하여 분석하였다. 모곤의 평점 비평은 字法, 句法, 章法과 풍격, 기교 등 당송 문장의 창작 방법과 이론에 대해 논평함으로써 고문 비평과 미학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모곤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고문 비평 이론은 많은 독서인들이 당송 고문을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점 비평에 반영된 모곤의 고문 비평 이론은 대략 세 가지로 귀납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文統觀”을 계승하여 비평 이론에서 문학의 전통적인 載道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문장의 “법식”에 주의하여 당송 고문의 작문과 구성의 법칙과 문학성 등을 탐구하였으며 체계적인 비평 이론으로 정리하여 당송 고문의 문학 감상과 비평 이론을 정립시켰다. 셋째, 문장이 전달하는 정감을 중시하고 작가의 개성적인 풍격에 주의를 기울여 당송 고문의 문학성을 부각시켰으며 당송팔대가 각 작가들의 문학적 개성을 보편성을 지닌 문학적 범주로 포괄해내었다. 바꿔 말하면, 당송팔대가 문장의 아름다운 정감과 문학적 개성은 모곤의 평점 비평을 통하여 널리 인식되었고 더불어 명대의 비평 이론으로 정리되었다. 그리하여 《당송팔대가문초》는 명대 문인들이 애독하는 중국 고문선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모곤은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점 비평을 통하여 당송 고문의 문장을 품평하고 감상하였으며 문장의 편장 구조와 창작의 기교 등을 주의하여 분석하였다. 모곤의 평점 비평은 字法, 句法, 章法과 풍격, 기교 등 당송 문장의 창작 방법과 이론에 대해 논평함으로써 고문 비평과 미학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모곤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고문 비평 이론은 많은 독서인들이 당송 고문을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점 비평에 반영된 모곤의 고문 비평 이론은 대략 세 가지로 귀납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文統觀”을 계승하여 비평 이론에서 문학의 전통적인 載道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문장의 “법식”에 주의하여 당송 고문의 작문과 구성의 법칙과 문학성 등을 탐구하였으며 체계적인 비평 이론으로 정리하여 당송 고문의 문학 감상과 비평 이론을 정립시켰다. 셋째, 문장이 전달하는 정감을 중시하고 작가의 개성적인 풍격에 주의를 기울여 당송 고문의 문학성을 부각시켰으며 당송팔대가 각 작가들의 문학적 개성을 보편성을 지닌 문학적 범주로 포괄해내었다. 바꿔 말하면, 당송팔대가 문장의 아름다운 정감과 문학적 개성은 모곤의 평점 비평을 통하여 널리 인식되었고 더불어 명대의 비평 이론으로 정리되었다. 그리하여 《당송팔대가문초》는 명대 문인들이 애독하는 중국 고문선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NRF 연계] 퇴계학연구원 퇴계학보 Vol.136 2014.12 pp.245-287
...고문 종합과 그 정치철학적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즉 정현은 과연 무슨 이유와 어떤 방식으로 漢代 經學의 두 축인 금⋅고문경학을 종합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는지를 그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통해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다음 두 가지의 문제의식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첫째는 ‘왜 정현은 이전의 古文經學이 西漢 今文經學의 단점인 讖緯化 문제와 그로 인한 정국불안 및 西漢末의 정권 수요인 劉漢 정권의 정당성 문제를 잘 해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버리고 새롭게 금⋅고문을 종합하고자 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이에 더하여 ‘정현은 왜 금문경학의 최대 단점이었던 讖緯說을 그의 금·고문 종합에 여전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정현이 금·고문을 종합하게 되는 이유로, 漢代 經學은 東漢末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금·고문으로 분리되어 서로 대치하면서 그 각자의 학파와 經說에 얽매여 쓸모없는 고답적인 해석만 일삼았다. 이로 인해 공부의 양에 비해 성과는 적었다. 심지어 의문이 있어도 家法과 師法에 얽매여 감히 그것을 고칠 수도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일신하지 않으면 한대경학의 동맥경화증을 치료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둘째는 정현이 금·고문을 종합하는 방법과 목적인데, 기본적으로 그는 스승 馬融과 같은 通儒들처럼 실증적이고 고증학적인 고문경학을 중심으로 금문경학의 장점을 흡수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러한 원칙에 매이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객관성을 중시하는 동시에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금⋅고문을 회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자의 元意의 회복’이라는 목적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금⋅고문을 아우를 수 있는 보다 큰 원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현이 금문경학의 최대 단점인 참위설을 수용하고 활용한 이유인데, 그것은 王莽과 光武帝가 참위로 황제가 된 이후 그것이 東漢代에 광범위하게 펴졌기 때문이다. 또 明帝는 五經의 異說을 讖緯에 의해 바로 잡도록 했고, 章帝는 백호관 회의에서 五經의 同異를 토론하면서 緯書를 끌어들여 經을 증명했다. 이 때문에 鄭玄에 이르면 참위가 경전과 같이 취급되었고, 또 경전과 참위가 뒤섞여 구분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정현도 자연스럽게 참위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뿐만 아니라 그의 경학은 참위를 필요로 하였다. 즉 금·고문이나 家法과 師法이 상호 충돌할 때 讖緯로 그것을 조정할 수 있었고, 또 東漢末의 사회⋅정치적 수요인 皇權의 정당성을 구축하는 자료인 感生帝說과 六天說의 근거도 讖緯書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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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東漢末에 살았던 鄭玄(A.D.127~200)의 금⋅고문 종합과 그 정치철학적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즉 정현은 과연 무슨 이유와 어떤 방식으로 漢代 經學의 두 축인 금⋅고문경학을 종합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는지를 그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통해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다음 두 가지의 문제의식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첫째는 ‘왜 정현은 이전의 古文經學이 西漢 今文經學의 단점인 讖緯化 문제와 그로 인한 정국불안 및 西漢末의 정권 수요인 劉漢 정권의 정당성 문제를 잘 해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버리고 새롭게 금⋅고문을 종합하고자 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이에 더하여 ‘정현은 왜 금문경학의 최대 단점이었던 讖緯說을 그의 금·고문 종합에 여전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정현이 금·고문을 종합하게 되는 이유로, 漢代 經學은 東漢末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금·고문으로 분리되어 서로 대치하면서 그 각자의 학파와 經說에 얽매여 쓸모없는 고답적인 해석만 일삼았다. 이로 인해 공부의 양에 비해 성과는 적었다. 심지어 의문이 있어도 家法과 師法에 얽매여 감히 그것을 고칠 수도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일신하지 않으면 한대경학의 동맥경화증을 치료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둘째는 정현이 금·고문을 종합하는 방법과 목적인데, 기본적으로 그는 스승 馬融과 같은 通儒들처럼 실증적이고 고증학적인 고문경학을 중심으로 금문경학의 장점을 흡수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러한 원칙에 매이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객관성을 중시하는 동시에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금⋅고문을 회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자의 元意의 회복’이라는 목적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금⋅고문을 아우를 수 있는 보다 큰 원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현이 금문경학의 최대 단점인 참위설을 수용하고 활용한 이유인데, 그것은 王莽과 光武帝가 참위로 황제가 된 이후 그것이 東漢代에 광범위하게 펴졌기 때문이다. 또 明帝는 五經의 異說을 讖緯에 의해 바로 잡도록 했고, 章帝는 백호관 회의에서 五經의 同異를 토론하면서 緯書를 끌어들여 經을 증명했다. 이 때문에 鄭玄에 이르면 참위가 경전과 같이 취급되었고, 또 경전과 참위가 뒤섞여 구분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정현도 자연스럽게 참위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뿐만 아니라 그의 경학은 참위를 필요로 하였다. 즉 금·고문이나 家法과 師法이 상호 충돌할 때 讖緯로 그것을 조정할 수 있었고, 또 東漢末의 사회⋅정치적 수요인 皇權의 정당성을 구축하는 자료인 感生帝說과 六天說의 근거도 讖緯書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試論由舊鈔本《古文孝經孔氏傳》所使用的異體字來測定傳入祖本的時代
[NRF 연계] 경성대학교 한국한자연구소 漢字硏究 Vol.11 2014.12 pp.9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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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 book called “Guwen Xiaojing” or “Guwen Xiaojing Kongshi Zhuan” in Japan which is handwritten but not printed. The book does not exist in China anymore but it does in Japan. It also contains a lot of variant characters that showed in the Middle Age. On the basis of the ample evidence that I collected from a monument and the documents excavated from Tunhuang cave temple, I argue that we can see the times when the original text was written from the use of these variant characters. I implemented a comparative study of the material both in Chinese and Japanese. The result shows that “Guwen Xiaojing” or “Guwen Xiaojing Kongshi Zhuan”, which was stored in Japan, was written around the time from the sixth to the seventh century. This clearly denies the view that the text was counterfeited in Japan. In addition to this, the original text before Japanese people copy it proves that it was stored at the time of the Sui dynasty or the Tang dynasty. In conclusion, this study has illustrated how important it is to study the Confucian history with respect to the history of the Confucian text editing.
[NRF 연계] 영남중국어문학회 중국어문학 Vol.60 2012.08 pp.109-137
...古文家,而他的书写也接近于汉赋,也运用颇为正确的词。同时,他不满于当时古文家的书写,是因为气势不振,仍失于空疏。结果,他摸索吸取汉赋书写,要给桐城的古文加以雄奇风格。值得注意的是,他救济当时古文书写之方是,反而言之,和当时汉学对桐城派的批评同调的。从中看出,他所构筑的文论是从桐城派书写有限的认识出发,参考汉学理论成就的。可谓是,曾国藩的文论在和汉学交互作用之下形成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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众所周知,曾国藩参看和吸取汉赋的书写手法,以改善了桐城派的弊端,奠定了其复兴之基。不过,当时是离汉学兴旺的乾嘉年间不久,因此到了曾国藩那一时代,汉学仍然占据学术上的优势。要考虑如此情况,曾国藩为何接受桐城学派,是很难理解的。为了找到其线索,首先,我们要考虑湖南学风。湖南历来被誉为“理学之邦”,宋学传统面面传承下来,四处洋溢着“有体有用之学”风气,汉学则不太受欢迎。加之,当时经世致用的学风兴起了,汉学逐渐被视为无用之学,这使得湖南人士对汉学予以激烈的批评。当地某人士甚至说,太平天国运动便是因汉学之弊而造成的。曾国藩即使不同意如此主张,整体来看,他的思考也很难摆脱湖南学术传统。这可能是他对桐城学术有好感的基本背景。还有,他在文论上重视“雄奇之文”,像钱基博所说的那样,这也有可能来自“犟有力”。曾国藩也在湖南学风的熏陶之下起初对汉学没有任何兴趣,而成了京官,在跟一些学者交流的过程中才始有兴趣了。这表示他不仅是固守门户之见,反而广泛摄取当时学术成果,以期重新构筑桐城学术。要注意的是,他深为感叹汉学成果,并且对一些汉学家深有钦佩之情,是超乎我们所意料的程度。据考察,这是因为段玉裁、王念孙等以训诂辨析出汉赋书写的长处,即是每个词汇都非常正确地安排的。看来,这引起他对汉学重新评价,高度重视。如此一来,他依靠汉学的成果,看中汉赋书写,并且注目书写上训诂的重要性了。在这一点上,他对杨雄、韩愈颇有仰慕之情,特别是,据他理解,韩愈虽是古文家,而他的书写也接近于汉赋,也运用颇为正确的词。同时,他不满于当时古文家的书写,是因为气势不振,仍失于空疏。结果,他摸索吸取汉赋书写,要给桐城的古文加以雄奇风格。值得注意的是,他救济当时古文书写之方是,反而言之,和当时汉学对桐城派的批评同调的。从中看出,他所构筑的文论是从桐城派书写有限的认识出发,参考汉学理论成就的。可谓是,曾国藩的文论在和汉学交互作用之下形成的。
[NRF 연계]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중국학논총 Vol.36 2012.05 pp.99-110
...고문운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당송 고문운동의 태동원인, 내용, 계승발전, 영향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의 고문운동은 한유, 유종원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古文’이란 두 글자도 한대이후 경학에서 ‘今文’과 구별되는 문자명칭으로만 쓰이다가 한유⋅유종원 이후부터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문체명칭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청대의 증국번(曾國藩)이 ‘고문’이란 두 글자로 육조이래 ‘文筆’가운데 單行散體의 ‘筆’을 지칭한 것이 한유로부터 연유하였다고 한 후부터 중국 근현대의 학자 전기박(錢基博), 나연첨(羅聯添), 웅례회(熊禮匯) 등은 하나같이 증국번의 견해를 언급하며 그의 말에 힘을 실어왔다. 예를 들면 나연첨(羅聯添)같은 경우 증국번의 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한유 이전 및 동시대인의 문집을 다 뒤졌지만, 한유 이전 고문가들 중 ‘古文’이란 명칭의 용례를 발견하지 못했고 다만, ‘고문’이란 두 글자로 쓰기 전에 고문운동의 선구라 불리는 문중자(文中子)나 유면(柳冕)의 문장 가운데에 ‘古之文’ 혹은 ‘古人之文’이라 쓴 경우는 있어서 이를 한유의 ‘古文’이란 명칭의 전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한유의 생년(768년)보다도 58년 이른 시기(710년)에 초당 사학자 유지기에 의해 쓰여진 ≪사통(史通)≫에 ‘古文’이란 명칭이 몇 차례 보이고, 그 사전적 함의를 살펴보았을 때 가리키는 바가 한유 이후 고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유지기와 고문가들의 ‘고문’에 대한 취사(取捨) 태도에 차이가 있고, 유지기가 당시나 후대 영향력이 있는 사학가이었으므로 한유 등이 ≪사통(史通)≫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설령 읽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유지기가 사용한 명칭이 한유 등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古文’이 한 대 경학에서 문자의 명칭에서 문체의 명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유지기의 ‘古文’이 실제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와 영향력은 비록 한유의 ‘고문’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시기적으로 한유보다 앞서는 것은 분명하므로 이렇게 ‘고문’이란 명칭의 연원설의 한 문제로 제기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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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고문운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당송 고문운동의 태동원인, 내용, 계승발전, 영향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의 고문운동은 한유, 유종원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古文’이란 두 글자도 한대이후 경학에서 ‘今文’과 구별되는 문자명칭으로만 쓰이다가 한유⋅유종원 이후부터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문체명칭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청대의 증국번(曾國藩)이 ‘고문’이란 두 글자로 육조이래 ‘文筆’가운데 單行散體의 ‘筆’을 지칭한 것이 한유로부터 연유하였다고 한 후부터 중국 근현대의 학자 전기박(錢基博), 나연첨(羅聯添), 웅례회(熊禮匯) 등은 하나같이 증국번의 견해를 언급하며 그의 말에 힘을 실어왔다. 예를 들면 나연첨(羅聯添)같은 경우 증국번의 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한유 이전 및 동시대인의 문집을 다 뒤졌지만, 한유 이전 고문가들 중 ‘古文’이란 명칭의 용례를 발견하지 못했고 다만, ‘고문’이란 두 글자로 쓰기 전에 고문운동의 선구라 불리는 문중자(文中子)나 유면(柳冕)의 문장 가운데에 ‘古之文’ 혹은 ‘古人之文’이라 쓴 경우는 있어서 이를 한유의 ‘古文’이란 명칭의 전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한유의 생년(768년)보다도 58년 이른 시기(710년)에 초당 사학자 유지기에 의해 쓰여진 ≪사통(史通)≫에 ‘古文’이란 명칭이 몇 차례 보이고, 그 사전적 함의를 살펴보았을 때 가리키는 바가 한유 이후 고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유지기와 고문가들의 ‘고문’에 대한 취사(取捨) 태도에 차이가 있고, 유지기가 당시나 후대 영향력이 있는 사학가이었으므로 한유 등이 ≪사통(史通)≫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설령 읽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유지기가 사용한 명칭이 한유 등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古文’이 한 대 경학에서 문자의 명칭에서 문체의 명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유지기의 ‘古文’이 실제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와 영향력은 비록 한유의 ‘고문’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시기적으로 한유보다 앞서는 것은 분명하므로 이렇게 ‘고문’이란 명칭의 연원설의 한 문제로 제기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NRF 연계]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Vol.25 2011.12 pp.383-423
...고문작법과 산문비평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하여 그의 저작에 나타난 작법과 비평을 분석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고찰하였다. 김창희는 唐宋부터 明淸 대에 이르기까지 27명의 고문 작가들의 저작에 대한 비평과 자신의 고문에 대한 관점을 피력한 「會欣穎」, 중국역대 문장가들의 문장을 품계를 나누어 수록한 「四品集選」, 唐宋八大家의 문장을 모은 「八大家文鈔」 등의 문학이론관련 저작을 남겼다. 김창희는 唐宋古文을 추구한 가운데 자신만의 문학론을 확립하였다. 이를 통하여 韓歐正脈의 맥을 이으며 法外之法을 강조하였고, 無法則有法의 명제를 가장 잘 구현한 한유를 추숭하였다. 또한 그는 辭達을 중시하였는데, 김창희는 辭達을 ‘문자를 통해 대상에 대하여 전달함’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문장이 후세까지 전달됨’으로 파악하고, 문장이 이러한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文彩를 지녀야 함을 주장하였다. 한유가 주창한 것과 마찬가지로 陳腐語의 제거를 통한 문채의 획득을 역설하였다. 그는 ‘師己意不師其辭’라는 명제에 대하여 동의하면서 반드시 자신에게 나온 말(辭必己出)로 작성된 문장만이 참신성을 획득하여 영속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김창희는 隻眼과 見識의 함양을 문장창작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척안과 견식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히 하여 사물과 자아와의 관계를 개선함을 통해 획득되어 지는 것으로, 사물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말한다. 김창희는 이러한 감식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장을 짓는 것을 엄격히 차단하였다. 또한 한유를 비롯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작가들은 높은 안목으로 인해 그와 같은 경지를 이룰 수 있었으니, 척안과 견식의 함양 즉, 독서와 자기 수련을 통해 높은 경지의 감식안을 확보할 것을 역설하며 문장창작에 있어 독서를 통한 자기 수련으로 획득된 작가적 역량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김창희는 개별 작가들의 ‘論文之文’을 통해 비평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 비평의 기준이 된 것은 앞서 김창희가 강조한 문장작법의 기본 원리들이었다. 이러한 비평의 양상은 실제 작가의 창작에서 비평대상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보이며 단순 감상비평에서 벗어나 실증적인 비평의 면모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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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19세기 후반의 문인 김창희의 고문작법과 산문비평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하여 그의 저작에 나타난 작법과 비평을 분석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고찰하였다. 김창희는 唐宋부터 明淸 대에 이르기까지 27명의 고문 작가들의 저작에 대한 비평과 자신의 고문에 대한 관점을 피력한 「會欣穎」, 중국역대 문장가들의 문장을 품계를 나누어 수록한 「四品集選」, 唐宋八大家의 문장을 모은 「八大家文鈔」 등의 문학이론관련 저작을 남겼다. 김창희는 唐宋古文을 추구한 가운데 자신만의 문학론을 확립하였다. 이를 통하여 韓歐正脈의 맥을 이으며 法外之法을 강조하였고, 無法則有法의 명제를 가장 잘 구현한 한유를 추숭하였다. 또한 그는 辭達을 중시하였는데, 김창희는 辭達을 ‘문자를 통해 대상에 대하여 전달함’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문장이 후세까지 전달됨’으로 파악하고, 문장이 이러한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文彩를 지녀야 함을 주장하였다. 한유가 주창한 것과 마찬가지로 陳腐語의 제거를 통한 문채의 획득을 역설하였다. 그는 ‘師己意不師其辭’라는 명제에 대하여 동의하면서 반드시 자신에게 나온 말(辭必己出)로 작성된 문장만이 참신성을 획득하여 영속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김창희는 隻眼과 見識의 함양을 문장창작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척안과 견식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히 하여 사물과 자아와의 관계를 개선함을 통해 획득되어 지는 것으로, 사물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말한다. 김창희는 이러한 감식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장을 짓는 것을 엄격히 차단하였다. 또한 한유를 비롯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작가들은 높은 안목으로 인해 그와 같은 경지를 이룰 수 있었으니, 척안과 견식의 함양 즉, 독서와 자기 수련을 통해 높은 경지의 감식안을 확보할 것을 역설하며 문장창작에 있어 독서를 통한 자기 수련으로 획득된 작가적 역량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김창희는 개별 작가들의 ‘論文之文’을 통해 비평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 비평의 기준이 된 것은 앞서 김창희가 강조한 문장작법의 기본 원리들이었다. 이러한 비평의 양상은 실제 작가의 창작에서 비평대상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보이며 단순 감상비평에서 벗어나 실증적인 비평의 면모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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