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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이 글은 1905년 이전 일본의 독도인식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초기 독도인식은 17세기 중엽 에 기록된 오야・무라카와 가문 문서에 나오는 울릉도근해 어업기록을 통해서 독도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말이 되어서는 이른바 ‘안용복사건’으로 한일 간에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가 있었는데 이후 에도막부는 일본인들에게 울릉도 도항을 금지한다. 그러나 일본은 당시 ‘일본인울릉도도 항금지’는 울릉도에서의 어업금지령이지 지금의 독도에 대해서는 도항금지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만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이라는 사실은 다양한 일본문서를 통해서도 증명된 사실이다. 또한 18세기 초에는 아이즈야 하치에몬 이라는 사람이 울릉도에 도항해서 밀무역을 했다는 죄목으로 막부에 의해 사 형을 당하는 이른바 ‘덴포죽도일건(天保竹島一件)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하치에몬이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도항이었음이 증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는 당시 일본의 최고 행정기관 태정관에서 발행한 이른바‘태정지령문(기죽도약도 포함)’이 말해주듯이 1905년 이전에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이 틀 림없었다.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독도는 전략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 고시40호라는 지방정부의 고시를 통해서 독도무주지선점 논리로 강제편 입 했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독도에 대해서 고유영토논리를 주장하면서 영유를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 해서 일본의 독도영유주장논리는 전전에는 독도가 무주지여서 선점했다 하더니 이제는 고유영토라고 주 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일본의 독도영유주장이 왜 모순이며 허구인지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본 한국일본학회는 일본관련 학회로는 1973년에 한국 최초로 성립되어 2015년 3월 현재 가입회원수 기준 1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학회로 발전하였다. 본 학회는 일본어학 및 일본학은 물론,일본의교육,사상,역사,민속 등 일본학 전반에 걸친 연구와 한일간의 일본학 전반에 걸친 비교 연구를 대상으로 하는 학회로서 회원들의 연구기회 제공과 정보의 교류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분회 발표를 포함하여 매년 20회 가까운 학술발표회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서 발표 기회의 제공과 함께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의 장으로도 활용하며 건전한 학회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간행물
간행물명
한국일본학회 학술대회
간기
반년간
수록기간
1974~2026
십진분류
KDC 913DDC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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