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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북간도 장암촌 학살 재검토
Reexamine of the 1920 Massacre of Norapawie(JangAm) Villages at the K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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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2집 (2020.12)바로가기
  • 페이지
    pp.117-142
  • 저자
    김연옥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87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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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thesis reexamined the reality and impact of the Norapawie incident(“The Norapawie Massacre”), which feared that international criticism would expand, such as the “second Jeam󰠏ri incident” within the Japanese military. In particular, by discovering new historical sources that have not been used so far, this paper was able to newly suggest the trend and the aftermath of the international public opinion on the Norapawie incident. The main points revealed in this paper are as follows. First, the realities of the massacre revealed through were to destroy Norapawie Village from the beginning in order to eliminate the threat of the Korean village of the independent army that threatens behind Yongjoung village, the base of the Higashi troop, the enemy of Cheongsan󰠏ri's great conquest., and revealed that he had healed a terrible casualty enough to consume 370 rounds in about two and a half hours from 06:30 to 09. Second, the reports of letters and public opinion by missionaries centering on Martin and Foot in the Kando area about the terrible massacre of Norapawie Village had a significant ripple effect. In particular, the British ambassador and 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Canadian Presbyterian Church demanded a protest. In the end, the Japanese Foreign Ministry, including Consul General Shimizu, officially acknowledged that there could be misunderstandings, and it was over. However, it was not “sutured” by what was absent, but the spread of the Japanese movement actually began with the spread of public opinion about the inhumane behavior of the Japanese military across the world.
한국어
본 연구는 일본군 내에서 ‘제2의 제암리 사건’처럼 국제적 비난이 확대될 것을 우려했던 장암촌 학살 사건의 실태와 파장을 재검토하였다. 『간도출병사』에 수록된 기록만으로는 선교사의 과대과장 보고와 그에 대한 육군성 간부인 미즈마치 대좌의 서신을 통해 작은 문제로 일단락된 듯한 이미지를 준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그동안 활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료를 발굴함으로써 장암촌 사건에 대한 국제 여론의 추이와 여파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 주요하게 밝힌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암소탕상보」를 통해 드러난 학살 실태는 청산리 대첩의 맞수인 히가시 지대의 거점인 용정촌 일대 후방의 연락선을 위협하는 독립군 한인촌 마을의 위협요소를 초기에 제거하기 위해 처음부터 장암촌 ‘초토화’를 겨냥한 작전을 수립하고, 06시 30분에서 09시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370발의 탄을 소모할 만큼 참담한 상황을 유추하는 근거임을 지적하였다. 둘째, 참혹한 장암촌 학살 실태에 대해 간도 일대에 있던 마틴, 푸트를 중심으로 한 선교사들의 서신 보고와 여론전은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영국대사와 캐나다 장로파 전도본부의 항의 요구가 두드러졌다. 결국 시미즈 총영사를 비롯한 일본 외무성은 공식적으로 ‘오해가 있을 수 있었던’ 점을 인정하며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없던 사건처럼 ‘봉합’된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본군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비난이 거듭되면서 배일(排日)운동 확산의 계기로 작용했다. 결국 ‘장암촌 사건’에서의 희생은 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의 불씨를 확산시키는 일에 일조(一助)했다고 할 수 있겠다.

목차

1. 머리말
2. 「장암소탕상보」로 본 학살 실태
3. 선교사들의 보고서에 나타난 학살 실태
4. 육군성 미즈마치 대좌의 대응
5. 영국 및 캐나다 전도본부의 항의
6.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키워드

장암촌 학살사건 간도참변 1920년 마틴 푸트 Norapawie incident Kando disastrous accident Martin Foote 1920

저자

  • 김연옥 [ Kim Yeonok-Ok |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조교수, 일본근현대사 전공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The 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 Dongguk University]
  • 설립연도
    1979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동국대학교 부설 일본학연구소는 일본의 역사, 문화, 사회를 연구하여 한일간의 상호이해증진과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고자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시한다. 첫째, 한일관계의 연구발표 및 강연회를 개최한다. 둘째, 정기 간행물과 연구도서 발간 및 자료를 수집한다. 셋째, 한일관련 연구비를 보조한다. 넷째, 내외 저명인사의 초빙과 임직원의 해외파견을 실시한다. 다섯째, 부속도서실을 운영한다. 여섯째, 기타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을 실시한다. 이상과 같은 사업을 통하여 한일관계의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지금까지 가깝고도 먼 양국관계에서 가까운 양국관계를 구축해 가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학 [The Ilbon-Hak(Journal of Japanology)]
  • 간기
    연3회
  • pISSN
    1598-1134
  • eISSN
    2713-7309
  • 수록기간
    1981~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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