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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기 朝-淸 항일 연합전선의 구축과 동학농민군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Joseon-Qing’s AntiJapanese Alliance Front and the Donghak Peasant Army during the Sino-Japanes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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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학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학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1호 (2019.06)바로가기
  • 페이지
    pp.305-339
  • 저자
    유바다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57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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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1894, Donghak Peasants War and Sino-Japanese War took place simultaneously in Joseon. In June 1894, Japanese army attempted to capture Joseon's Gyeongbok Palace to take control of the Joseon government and overthrow the Donghak Peasants Army. Therefore, the Donghak Peasants Army had to strategically consider its alliance with Qing's army, which was in conflict with Japanese army. The uprising of Donghak Peasants Army and the Joseon entry of Qing's army differed in purpose, but there was a kind of united front against the communal enemy of Japanese army. King Gojong first would dispatch a secret envoy to Qing from within Joseon, and Daewongun also would send a secret letter to Qing's army. Jeon Bongjun, leader of Donghak Peasants Army, responded accordingly, and was ready for second uprising in early September with Daewongun's letter. Donghak Peasants Army entered anti-Japan uprising through a medium of Daewongun to keep up with Qing's army. At that time, Min Byeong-seok at Pyeongyang also sent a secret letter to Jeon Bong-jun to engage in building an anti-Japan coalition between Donghak Peasants Army and Qing's army. Of course, the motive and purpose of each subject was different, so the united front was not very successful. Nevertheless, the slight experience of building a united front with a strong enemy of Japan became the beginning of the struggle of the two people of Korea and China deemed to spread it out since then.
한국어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이 동시에 일어났다. 1894년 6 월 일본군은 조선의 경복궁을 점령하여 조선 정부를 장악하고 동학농민군을타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대치하고 있던 淸軍과의제휴를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청군의 조선 진주는그 목적은 서로 달랐지만 일본군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이들 사이에 일종의연합전선이 구축되고 있었다. 먼저 조선 내부에서부터 국왕 고종은 淸에 밀사를 파견하는가 하면 대원군또한 밀서를 淸軍에 보내기도 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도 이에 호응하여 9월 초 대원군의 효유문을 받고 재봉기를 준비하였다. 동학농민군이대원군을 매개로 항일 봉기에 돌입하여 청군과 보조를 맞추게 된 것이다. 이때 평양에 있었던 민병석도 밀서를 전봉준에게 전달하여 동학농민군과 청군사이에 항일 연합전선을 구축할 것을 타진하였다. 물론 각 주체마다 그 동기나 목적은 달랐기 때문에 이 연합전선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는 강력한 적 앞에서 미약하나마연합전선을 구축했었던 경험은 이후 한국과 중국 양국 인민이 줄기차게 전개해나갈 항일투쟁의 시초가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초기 동학농민군의 대외인식과 淸·日軍의 조선 출병
3. 朝-日 군사동맹 결성에 대항하기 위한 대원군과 淸軍의 접촉
4. 동학농민군-淸軍 간 연합전선의 구축과 와해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전봉준 대원군 청군 Donghak Peasants War Sino-Japanese War Jeon Bong-jun Daewongun Qing's army

저자

  • 유바다 [ Bada Yoo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학학회 [The Donghak Society]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학학보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7566
  • eISSN
    2713-3605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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