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nghak peasant, defeated i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disbanded in the Taein battle. Hae-wol, who was watch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Jeonbuk Imsil, met Son Byeong-hee, a so-called ‘BUKJUBKUN’(北接軍). The Donghak leadership succeeded in hiding from the Jeolla province, Chungcheong province, and Gyeonggi province through Inje, Gangwon province, overcoming the government forces and the Japanese army.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was at the risk of being collapsed, but the leadership centered on Haewol devoted to reconstruction of Donghak denomination. For about four years from 1895 until his arrest in April 1898, he established the basis for the reconstruction of Donghak. Major activities during this period were: First, renovating the denomination by introducing young leaders such as Son Byeong-hee, Kim Yeon-guk, and Son Cheon-Min into the front of the denomination. In the end, Son Byeong-hee was given responsibility for the denomination. Second, he extended the influence to the north region of Hwanghae province, Pyeongan province, and Hamkyung province, which have not been affected by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s a new prospect of propagation. Third, he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Donghak doctrine. The law that Haewol presented at this time became an important basis for the subsequent consciousness doctrine of Donghak. The law of ‘MANSAJI(萬事知) is a bowl of rice’ has become a law that represents Donghak ‘s life idea, and the law of’ HYANGASULWI(向我設位)’ has been the ritual that best deals with Donghak’ s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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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외세를 목적으로 9월에 총기포한동학농민군은 공주 점령을 위한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하고 연패를 거듭하다 태인전투 후 호남과 호서의 동학군은분리하였다. 전북 임실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주시하던 동학교주 해월 최시형은 호서동학군, 소위 ‘북접군’ 지휘부인 손병희를 만나 관군과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전라도에서 충청도,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 인제로 피신하는데 성공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실패로 인해 동학교단은 존폐의 위기에 처하였으나해월은 강원도와 경기도 등지에 은거하면서 동학농민혁명으로 와해된 교단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895년부터 1898년 4월 체포될 때까지의 약 4년간 해월은 동학 재건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 활동으로는 첫째, 첫째, 교인들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인력으로 된 일이 아니라 천명에 의한 사건이라고 규정하여 공과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키고 교인들의 단합을 꾀하였다. 둘째, 결국 1897년 손병희에게 도통을 전수하여 교단을 책임지웠다. 셋째, 동학의 새로운 포덕 대상지로 동학농민혁명의 피해를 입지 않은 평안도와 황해도 등 북부 지방을 삼아 교세를 확장시켰다. 넷째, 동학 교리의 정립에 기여하였다. 해월이 이 시기에 설파한 법설은 이후 동학의 의식과 교리 정립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만사지(萬事知)는 식일완(食一碗)’의 법설은 동학의 생명사상을 대표하는 법설이 되었고, ‘향아설위(向我設位)’의 제례는 동학의 사상을 가장잘 담은 제례법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해월 최시형은 은신하면서 붕괴 직전의 교단을 정비하고 후계 체제를 정립하여 이후 손병희가 천도교로 교명을 바꾸고 국내 제일의교단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