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rticle is about the spread of Donghak in Wonju, Gangwon-do, and the Donghak Peasants’ movement of natives of Wonju. After reviewing the spread of Donghak into Gangwon-do during Choi Je-woo and Choi Si-hyung of Donghak leader, I reviewed about the acceptance of Donghak by a person from Wonju. Then, I examined the activities of Donghak believers from Wonju in Kangwon-do such as Gangneung and Hongcheon, and them in Chungcheong-do such as Gongju. It was Jang Ki-Seo that accepted Donghak first as a native of Wonju. He believed Donghak in the late 1860s through Lee Gyeong-hwa, who had been in exile in Yeongwol. Then, after the “Lee Pil-je’s Rebellion” in 1871, Choi Sihyung and other leaders of Donghak came to Gangwon-do and published the Donghak Bible and expanded the missionary work. In the early 1890s, Im Soon-ho, Lee Won-pal, Ewha Womans, Shin Taek-woo, Kim Hwa-bo, Lee Gyu-hwa, Lee Jong-tae, Im Myung-hwa, Im Seok-hwa, and others worked in Wonju. Donghak Believers in Wonju occupied Gangneung-bu on September 4 with Donghak Believers of Kangwon-do, protesting the occupation of Gyeongbok Palace by the Japanese army on August 20, 1894. Some of the Donghak Believers from Wonjufought in Ugeumchi, Chungcheong Province. After the Donghak Farmers Movement, Donghak believers from Wonju contributed the leaders of Donghak as Choi Si-hyung and Son Byung-hee to hide and engage in missionary work in Wonju. After Choi Sihyung’s death in 1898, Wonju Donghak believers supported Sohn Byunghee in general. And in 1904, the Donghak believers of Wonju founded the Jin-bo-hoe and launched a movement for civilization in 1904, socalled “the Gap-jin Gae-hwa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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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원도 원주지역의 동학 전파와 원주 출신 동학인의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연구이다. 먼저 최제우와 최시형이 교주로 활동하던 시기, 강원도 원주 출신 인물의 동학 수용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기 원주 출신 동학인의 강릉·홍천 등 강원도에서의 동학농민운동과 그 성격에 대해서 알아보고, 충청도에서 벌인 활동에 대해 검토하였다. 강원도 원주인으로 처음 동학을 수용한 사람은 장기서였다. 그는 1860년대후반 영월에 유배 와 왔던 이경화를 통하여 동학에 입교하였다. 그리고 1871 년 ‘이필제의 난’ 이후 최시형 등 동학 지도부의 인물들이 강원도에 피난을 와서 경전을 간행하고 포교를 확대하자, 원주지역에도 점차 동학이 확산되었다. 1890년대 초 강원도 원주에는 임순호, 이원팔, 이화경, 신택우, 김화보, 이규하, 이종태, 임명화, 임석화 등이 교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강원도 원주의 동학인들은 1894년 음력 8월 20일 경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에 항거하며 봉기하여 음력 9월 4일 강릉부 관아를 점령하고 제2차 동학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부의 동학인들은 최시형, 손병희와 함께 충청도 우금치 등지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였다. 동학농민운동 후 원주의 동학인들은 최시형과 손병희 등 동학 지도부의 인사들이 원주에 와서 은거하며 포교활동을하는 것을 도왔다. 1898년 최시형의 사망 후 원주이 동학인들은 대체로 손병희를 지지하였다. 그리고 1904년 원주의 동학인들은 진보회를 설립하고 소위 갑진개화운동을전개하였다. 1904년 소위 갑진개화운동 시 원주의 동학인들은 진보회를 설립하고 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원주인의 동학 수용과 동학 포교 3. 원주 출신 동학인의 동학농민운동 4. 동학농민운동 후 원주 출신 동학인의 동향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원주동학농민운동장기서임순호강릉부 점령갑진개화운동WonjuDonghak Farmers’ MovementJang Ki-seoIm SoonhoOccupation of Gangneung-buand the Gap-jin Movement for civilization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