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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동해안과 삼척
East Sea Coast and Samcheok in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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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이사부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이사부와 동해 바로가기
  • 통권
    10호 (2015.08)바로가기
  • 페이지
    pp.145-183
  • 저자
    張日圭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4053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article is studying the East Sea Coast route and historical position of Samcheok. Among the public road of Silla, The east road and north road ware placed in the mid and 2nd century a century. At the time, Silla was conquered Siljik. For expanding the area, The northern roads was major route. ‘How to use the ship in good shape(舟楫之利)’ was established in the early 6th century. Looking up the sea route, this time stressed Samcheok. It was the center of a traffic route was Samcheok. Also, a naval port and naval forces bases were installed. Because of Silla set up a ju(州) in Samcheok. Isabu was Minister of Siljikju. General Isabu was invaded Usan(Ulleungdo). He knew their way around the sea. Heunghae and Samcheok is important to him. East Sea Coast of the most important naval port was Samcheok. Because of this Kingdom occupied was able to. Samcheok was constantly emphasized in The Silla royal family. Uisang, Wonhyo, such as jinpyo, the monks went north along the East Sea coast. King Heongang was focused on Samcheok. Temple Samhwasa was interested and involved it. The most important place on the East Sea coast was Samcheok.
한국어
이 글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신라가 동해안을 따라 영역을 확대한 과정 을 지리적 조건이나 육로 ․ 해로와 관련하여 살펴본 것이다. 특히 동해안 해로의 중심으로 삼척의 역사적 위상을 주목하였다. 신라는 소지마립간 9년(487)에 왕경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친 官道를 수리하였 다. 이미 1세기 중반∼2세기 초반에 탈해이사금이 등장하고 음즙벌국을 정복하면 서 동로와 북로가 개설되었다. 신라는 당시에 실직곡국을 정복하면서 북로를 신라 의 영역을 확대하는 주요 통로로 중시하였다. 지증마립간 6년(505)에 수로와 해로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운송과 교역, 군사 활 동의 이점을 높이려는 방안으로 ‘舟楫之利’가 제정되었다. 동시에 삼척과 흥해, 영 천 등지에 12곳의 성을 쌓은 뒤에 실직을 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신라는 6세 기에 해로의 정비와 관련하여 삼척을 강조하였다. 동해의 해안선은 육로로 통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灣이 잘 형성되지 않 았기에 큰 항구가 발달하기도 어려웠다. 다만 양양, 강릉, 삼척, 흥해, 영일, 포항 등지에는 하천 유역에 제법 넓은 평지에 형성되었다. 삼척은 바닷가에 연접하였으면서도 오십천을 통해 낙동강 상류는 물론 남한강 상류로 가는 육상교통로를 갖 추었으며, 넓지는 않지만 오십천의 하구를 군항이나 수군 양성 기지로 쓸 수 있었 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따라 지증마립간은 삼척에 주를 두고 이사부를 주둔시 켰다. 지증마립간 13년(512)에 이사부는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그는 지도로왕 때 沿 邊의 관리를 맡아 내륙수로는 물론 해로에도 익숙하였고, 연안 해로는 물론 원양 해로에도 익숙하였다. 그는 왕경과 가까워 기밀을 유지하기에 편리하면서 선박 제 작에 필요한 수림이 울창하였던 흥해 일대에 주목하여 선박의 제조와 수군의 양 성을 주도하였다. 나아가 연안 해로를 따라 선박과 수군 등 인적․물적 자원을 운 송하여 삼척을 동해안 최대 군항으로 활용하였다. 그런 다음에 원양 해로를 이용 하여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은 신라의 동해안 인식을 확고하 게 하였다. 신라 왕실은 삼척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인식을 꾸준히 유지하였다. 삼국통일 전후에 왕실과 緣故된 의상과 원효, 진표 등은 낙산사와 고성군을 찾았다. 그들은 무열왕 5년에 삼척에 설치한 北鎭에서 연안 해로를 따라 북상하였다. 신라 말에 헌강왕은 일본의 사신 파견과 관련하여 울산 일대의 항구와 포구에 관심을 가졌 다. 더불어 신라 北邊의 상황과 관련하여 삼척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다. 그 것은 삼화사와 관련되어 나타났다. 당시 왕실과 결연한 해인사 승려 決言은 860 년 쯤에 삼척 삼화사 철불 조성에 깊이 관여하였다. 당시의 해인사 승려들은 헌강 왕은 물론 정강왕이 주관한 선왕의 명복을 기원하는 佛事를 주도하였다. 자연히 신라 왕실은 삼화사를 통해서 삼척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삼척은 동해안 일대의 여러 군현 가운데 신라의 영역 확대는 물론 신라 국가의 안녕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끊임없이 주목되었던 곳이었다.

목차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Ⅱ. 동해안 교통로의 개설
 Ⅲ. 동해 해로의 운용
 Ⅳ. 동해안 인식과 삼척
 Ⅴ. 맺는 말
 [ABSTRACT]

키워드

于山國 정벌 East Sea Coast Samcheok Northern route ‘How to use the ship in good shape’ Isabu Conquest of Usan Temple Samhwasa. 東海岸 三陟 北路 舟楫之利 異斯夫 憲康王

저자

  • 張日圭 [ 장일규 | 한국학중앙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이사부학회 [The korean isabu society]
  • 설립연도
    2009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고대 인물 이사부, 동해안지역 역사문화, 동해, 해양 환경, 울릉도, 독도 등과 관련된 다양한 학술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이사부학 정립 및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이사부와 동해 [The review of Isabu and east sea]
  • 간기
    반년간
  • pISSN
    2093-2030
  • 수록기간
    2010~2018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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