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특집: 메이지유신에 ‘동아시아 근대(성)’를 묻는다: 메이지유신 150주년 특집

국학의 메이지 유신 : 복고의 착종으로부터 신도를 창출하기까지
Kokugaku in the Meiji Restoration : Creating “Shintō” from the Confusion of “Restoration”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비평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19호 (2018.08)바로가기
  • 페이지
    pp.70-95
  • 저자
    배관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3466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4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the transformative era spanning both the late Edo period and the beginning of the Meiji period, the Kokugaku school led by Hirata Atsutane envisioned a revival of Shintō and the imperial rule. Nonetheless, this group of scholars lost dominance in the political stage due to the revolutionary outbreak of new government system right after they declared a “restoration.” Instead, scholars from Tsuwano area took the leading role in the modern administration for Shintō and court rituals. This fact demonstrates the frustration that the Hirata group went through. The narrative from Yoakemae[Before the Dawn] written by Shimazaki Tōson illustrates the same story. It seems clear that the restoration envisioned by Kokugaku scholars was a complicated entanglement of opposing ideas including the Declaration of Great Teaching and the controversy over rituals. Although it may be true that the influence of Hirata group was limited and short-lasted, the fact that they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national Shintō cannot be denied as their various ideas amalgamated into the modern Kokugaku studies.
한국어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근대 전환기에 히라타파 국학은 ‘왕정복고’와 ‘진무 창업’의 기치 아래 이루어진 천황친정 체제에 복고신도 사상의 실현을 기대했다. 고대 율령제 시대의 태정관과 신기관 제도의 부활에 따라, 이들이 제정일치 국가를 꿈꾸며 구체적인 정치강령을 구상한 것은 야노 하루미치의 건백서 등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복고’를 선언하는 동시에 새로운 국가제도의 창출이라 할 만한 대개혁이 시작되자, 이들은 곧 정치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만다. 근대적 신기 행정과 제도 정비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은 오쿠니 다카마사, 후쿠바 비세이 등의 쓰와노파 국학자들이었다. 여기에 이른바 히라타파 국학의 패배와 좌절이 확인된다. 시마자키 도손의 유명한 역사소설 『동트기 전』이 보여주는 것도 거의 그에 가깝다. 확실히 대교선포 운동과 제신 논쟁에 이르기까지 국학자들이 그리는 ‘복고’는 서로 대립하고 복잡하게 착종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히라타파 국학의 영향력이 설령 일시적이고 한정적이었다 해도, 다양한 갈래의 국학 사상이 일원화되면서 이후 국가신도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은 신사 비종교론을 표명하면서도 천황제와 표리일체를 이루듯, 다분히 정치적인 상황과 결합되어 있었다. 일례로 요시오카 노리아키의 『고사기전략』은 당시 국학의 합리화 및 단일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메이지의 건국신화이자 기원신화가 수렴된다는 점에서 메이지 초기 『고사기전』의 수용의 일면이 아니라 그 자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목차

1. 문제 제기: 『동트기 전』을 출발점으로
 2. 막부 말기의 국학: 노리나가는 유신을 환영했을까
 3. ‘복고’의 착종
  1) 히라타파 국학의 국가 구상
  2) 왕정복고의 실현과 좌절
 4. ‘신도’의 창출
  1) 쓰와노파 국학의 국가 구상
  2) 단일화한 메이지 건국신화
 5. 끝나지 않는 근대 국학

키워드

히라타 아쓰타네 야노 하루미치 오쿠니 다카마사 복고신도 국가신도 Hirata Atsutane Yano Harumichi Ōkuni Takamasa Restoration Shintō State Shintō

저자

  • 배관문 [ BAE KWANMUN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 설립연도
    2004
  • 분야
    사회과학>지역학
  • 소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일본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4년11월19일 설립되었다. 본 연구소는 서울대학교에서 일본지역학의 교육ㆍ연구 체제를 갖춘 국제대학원이 주관하며, 서울대학교의 다양한 학문 분야의 일본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 연구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운영된다. 일본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 정보네트워크 구축, 연구활동 지원, 대외적인 학술ㆍ인물 교류 등 일본연구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그간의 실적을 토대로 하여 새롭게 출범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오늘날 국내외 정세의 변화를 배경으로 일본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한국의 일본 연구 및 교육의 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연구의 새로운 틀을 창출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비평 [Korean Journal of Japanese D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2092-6863
  • 수록기간
    2009~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09 DDC 306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일본비평 제19호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