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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淸戰爭前後の福澤諭吉の朝鮮改革論-『時事新報』朝鮮関連社説を中心として-
A Study on Fukuzawa Yukichi's Cho-sun Reformation Theory in the period of Shino-Japan War(1892-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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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일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0권 (2004.08)바로가기
  • 페이지
    pp.611-633
  • 저자
    高城幸一
  • 언어
    일본어(JPN)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2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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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일본어
明治23(1890)年7月の第1回総選挙と明治25(1892)年の第2回総選挙の結果、日本帝国議会は自由党·改進党の民党(野党)が吏党(政府与党)を圧して過半数以上の議席を占め、盛んに政府攻撃を行なった為明治政府は国会運営に苦慮する。このように、官民間の対立が激化すると、福沢は危機感を抱くようになる。福沢は『時事新報』社説で官民対立を解消し官民調和を促進する為の方策として、国民の関心を国内政治から国外、特に朝鮮に向ける必要があるとして、日清両国共同による朝鮮改革を提唱する。東学党の亂を契機に清国に対抗して日本が朝鮮に大軍を派遣すると、福沢はその兵力を背景に日本単独による朝鮮改革を提起するようになる。更に、日本による朝鮮改革が至急必要であると見る福沢は、朝鮮政府の実態は‘袁世凱の政府’とでも言うべき状態であると見て、日本による朝鮮改革の最大の妨げとなる袁世凱と牙山の清国兵の朝鮮からの退去を求め、朝鮮政府が日本の朝鮮改革案の受け入れを拒絶すると清国と朝鮮に対する戦争を主張する。 日清戦争下で日本政府は明治外交の第1人者である井上馨を朝鮮内政改革の責任者として駐朝鮮日本国公使に任命する。福沢は井上馨に期待する。井上の主導下で朝鮮の内政改革が軌道に乗るように見えたが、日清戦争における日本の勝利の後に成された三国干渉によって日本主導による朝鮮内政改革を大きく後退するにつれて福沢の朝鮮改革論の主張も大きく後退する。更に、引き続く閔妃殺害事件、ロシア勢力の朝鮮政界への浸透、俄館播遷によって日本主導による朝鮮内政改革は完全に挫折すると、福沢は朝鮮内政改革に対する意欲を喪失する。

키워드

朝鮮內政改革 日淸戰爭 三國干涉 閔妃殺害事件 俄館播遷

저자

  • 高城幸一 [ ソウル大学校 法科大学 BK21法学硏究團 博士後硏究員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일본학회 [Korea Association Of Japanology]
  • 설립연도
    1973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본 한국일본학회는 일본관련 학회로는 1973년에 한국 최초로 성립되어 2015년 3월 현재 가입회원수 기준 1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학회로 발전하였다. 본 학회는 일본어학 및 일본학은 물론,일본의교육,사상,역사,민속 등 일본학 전반에 걸친 연구와 한일간의 일본학 전반에 걸친 비교 연구를 대상으로 하는 학회로서 회원들의 연구기회 제공과 정보의 교류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분회 발표를 포함하여 매년 20회 가까운 학술발표회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서 발표 기회의 제공과 함께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의 장으로도 활용하며 건전한 학회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학보 [The Korean Journal of Japanology]
  • 간기
    계간
  • pISSN
    1225-1453
  • 수록기간
    1973~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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