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공 최아신도비는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분토동 전주최씨 제각인 주덕재 좌측에 위치한 문성공 묘소 옆에 있다. 1920년에 세운 이 비는 방형 대석에 흰 대리석으로 비신을 세우고 옥개형 개석을 갖춘 보편적인 비의 형태이다. 비문은 이효순이 짓고 후손 최병심이 썼으며 윤용구가 두전을 썼다. 두전의 글씨는 공간 배치를 위하여 좌우로 심하게 구부려 자형의 안정감을 꾀하려 하였다. 최병심이 쓴 비문의 글씨는 예서체로 한비(漢碑)의 필법에 해서의 필의가 담긴 강직한 서체이다. 문성공 최아는 최입평의 아들로 고려 충숙왕 때 무과에 급제하여 문하시랑 평장사직에 올라 문성공의 시호를 받았다. 《전주최씨 상고사》에 의하면 최아의 상계에 대해 논란이 많으나 여러 고증 사료에 의해 최입평의 아들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문성공 최아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용생(龍生)은 경상도 안렴사요, 차남 용각(龍角)은 대호군으로 해주목사요, 3남 용갑(龍甲)은 판사요, 4남 용봉(龍鳳)은 중랑장이다. 후손들 중에는 최아를 1 세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에서는 상계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의 자손 중 차남 용각의 후손과 4남 용봉의 후손들이 가장 번성하여 전국 각처에서 이름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