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일조관계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많은 일본인이 조선왕조와 통교하였다. 이 중에서 조선에 향화한 왜구의 首魁에게는 관직이 제수되었고, 「수직왜인」이라고 불렀던 조선통교자의 한 유형이 출현했다. 필자는 이전에 조선초기의 수직왜인을 「전기수직인」 壹岐 왜구인 藤九郞의 수직이후의 수직왜인을 「후기수직인」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전기수직인의 성격과 그 종언, 후기수직인의 출현요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이를 고찰하였다. 또 후기수직인 중에서 예외적인 사례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어, 수직왜인의 성격이 어떻게 변질했는가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조선초기의 수직왜인은 왜구계 수직왜인ㆍ기술계 수직왜인ㆍ平道全의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대부분은 수직 본래의 목적인 왜구회유책에 의해 출현한 왜구계 수직인이었고, 일본 기술의 도입을 목적으로 했던 기술계 수직왜인과, 對馬와의 교섭 창구로써 수직했던 平道全은 명확히 성격이 다르다. 己亥東征[대마도정벌] 이후, 왜구계 수직왜인의 수직관행은 단절되었다. 이 조선 측의 요인으로는, 왜구가 점차 감소함에 따라 왜구를 철저히 단속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점과, 平道全ㆍ表思溫의 불법행위에 의해 대마도에 대한 불신감이 증대되었던 점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대마 측의 요인으로는, 1410년대에 추진되었던 왜구의 무역상인화 및 수직왜인의 대우가 감소함에 따른 수직요구의 消失을 들 수 있다. 세종 후기에 수직한 藤九郞이 향화 후에 귀국해서, 수직 권익을 기초로 조선과 무역을 행하게 되자, 다시 일본인에 대한 수직 관행이 부활하였다. 이 시기의 수직왜인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조선과 교역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수직인통교자」가 대부분이었다. 또 이 시기에 조선에 향화했던 수직왜인도, 그 향화의 목적은 조선과의 교역에 있었다. 결국 왜구회유책을 단서로 하여 태조~태종기에 수직한 「전기수직인」과, 세종후기 이후 조선과의 교역을 위한 통교권으로써 수직을 요구했던 「후기수직인」은 명확히 성격이 다른 조선통교자이었다.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