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개인의 일기를 통해 한 농촌 마을에서 겪었던 해방과 한국전쟁을 살펴보았다. 일기를 작성한 양아무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운영하는 대농장이 많았던 익산군 왕궁면에 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서와 신학문을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장성해서는 일본어를 혼자 익힐 수 있는 책을 구입하여 공부하였다. 그는 정규 직원으로 채용되지는 않았지만 면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해방 후에는 면서기가 될 수 있었다. 주업은 농업이었지만 제 땅이 없었던 그는 일본인 농장의 소작인으로 일제강점기를 보냈기 때문에 해방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일기를 보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6일 해방에 대한 기술이 있지만 내용은 기쁨이 아니라 놀라움의 표현이었다. 며칠 후 왕궁면에서는 ‘면 건국임시위원회’를 조직하고 노적된 벼를 창고에서 풀어 호별로 나누어 주었는데 면민들은 해방을 실감했을 것 같다. 그러나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군정은 10월 5일 일반고시 제1호로 쌀의 자유시장 개설을 허용하였으나 자유시장 정책은 한 달도 되지 않아 폐기해야 했다. 10월 30일 법령 제19호에 이어 11월 19일 일반고시 제6호로 쌀 자유시장을 철폐하였다. 그리고 공정가격으로 쌀과 보리를 수매하는 일제강점기의 통제정책으로 돌아감으로서 해방은 되었지만 식량사정이나 공출 모두 이전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국가적으로도 비극이지만 개인에게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인민군이 왕궁면을 두 달여 동안 접수했다가 떠난 후 지역사회에는 우익혐의로 살해된 자, 좌익혐의로 행방불명된 자가 발생하면서 혼란스러웠다. 면 직원이었던 그도 한밤중에 면 인민위원회에 소속된 네 사람에게 지서 치안대로 끌려갔고 포박에 묶인 채 갇혀 있다가 다음 날 오후 3시경에 풀려나왔다. 그가 나중에 은밀히 조사해보니 학살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탄환이 없어서 시행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전쟁 중에도 미곡 공출이 가혹했고 쌀값은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였다. 년 말에는 마을 주민의 70~80%가 양식이 바닥났을 정도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인민군이 물러가기는 했지만 전쟁 상황에 따라 다시 피난을 궁리해야 하는 가운데 그는 오로지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는 정전을 반대하는 집회에 나가야 했다. 휴전 협상 후 세상이 모두 기뻐한다는 그의 일기는 전쟁이 끝나기를 모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영어
This study is concerned with Korea’s liberation from Japan and the Korean War in rural areas through a personal diary. Mr. Yang who kept the diary lived in Iksan during the Japanese Ruling Era. There are many plantations the Japanese managed. He must have waited for Korea’s liberation for he would encounter heavy exploitation. But he did not write something about Liberation on Aug. 15, 1945, and the next day, wrote not joy but a surprise about it. He expected to be free from hunger if Korea was liberated because most Korean people were starving. After Liberation,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controlled the rice, but the price of rice was still high like before, so farmers had to live a rugged life. In the Korean War-time, they also lived a difficult life for the army’s delivering rice, drought, flood, and damages by blight and insect. After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came into Iksan, he was taken to the security forces owing to his job, public official. He got out of the forces in a matter of days, and was later relieved of worry as he knew that his name was listed on massacre. After the Armistice Agreement, he wrote in the diary that there was the joy in the world.
목차
Ⅰ. 머리말 Ⅱ. 정세의 변화와 농촌사정 1. 해방부터 전쟁 이전까지 2. 한국전쟁 Ⅳ. 공동체 속의 일상 1. 가정 내의 일상 2. 지역사회에서의 일상 Ⅴ. 맺음말 <별표 1> 물가 변동표 <국문초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