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가타라시히메’ 전승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오키나가氏’ 一族의 행보를 살피지 않고서는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오키나가氏’에 대해서는 여러 說만 존재할 뿐, 딱히 이렇다 할 定說은 나와 있지 않은 형편이다. 『古事記』와『日本書紀』양 문헌에 의하면 ‘오키나가氏’는 호쿠리쿠(北陸)와 야마토(大和)를 연결하는 요지에 위치한 오우미(近江)國 사카타(坂田)郡를 근거로 하던 호족으로 게이코朝 이후의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돌연 게이타이朝부터 나타나 천황가와 혼인관계를 맺고 천황의 외척으로서 세력을 떨친다. 그리고「天武 13年10月條」에 야쿠사노카바네(八色姓)로 마히토노카바네(眞人姓)를 하사받은 기록이 있는 名門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메이천황과 ‘오키나가노마히토오유’ 外는 이렇다하게 정치무대에서 활약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古事記』와『日本書紀』에서의 ‘오키나가타라시히메’ 전승을 ‘오키나가氏’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단언하기에는 각 계보의 요소요소에 보이는 모순들이 지금까지의 사료로는 충족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게이타이朝 이전의 ‘오키나가氏’ 관련 전승은 가상된 이야기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게이타이천황 이후의 계보만으로 ‘오키나가氏’를 ‘오키나가타라시히메’의 父系譜로 삼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오카나가氏’의 본거지였던 琵琶湖 주변지역이 철의 산지이며 철 제조기술을 가진 ‘아메노히보코’를 시조로 하는 도래계의 본거지이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정황들로 인해 ‘오키나가타라시히메’전승 속의 ‘오키나가氏’ 행보가 오진천황의 母인 ‘오키나가타라시히메’와 도래계와의 연관을 숨기기 위한 수고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오키나가타라시히메’의 모계인 ‘아메노히보코’ 계보 연구를 통해 정립해 나가고자 한다. 사실 여기서 텍스트로 삼은『古事記』와『日本書紀』만을 가지고 황가의 계보를 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부모계 특히 도래계를 모계로 둔 계보와 민간신앙 등의 절충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키나가타라시히메’ 계보를 부계만으로 논할 수는 없다. 적확한 고증이 따르지 않은 부정적 추정은 천황대의 실제적 첫 천황이라고 말해지는 오진천황의 계보마저 뒤틀어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