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 일본의 교육정책을 비롯한 각종의 문화정책에 관한 연구는 권력으로부터 강제되는 왜곡된 국민사상의 구축과, 그 결과 나타나는 일그러진 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보는데 있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고는 근대일본의 ‘소리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창가를 대상으로, 창가의 생성과정 및 창가교육의 실태, 그리고 문부성 산하 음악조사계(音樂取調掛)의 존재에 주목하면서 창가 장르의 형성 과정과 전개에 이르는 사상사적⋅문예사적 자리매김과 동시에, 구체적으로는 ‘국민사상’의 형성에 중점을 둔 메이지 초기 창가교육의 실태 분석을 통해 근대 일본인의 심상(心象) 구축에 있어 창가의 교육과 보급이 어떻게 관여하고 기능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음악과 음악교육은 본래 어떠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도 구속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것이 특히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음악과 음악교육의 시작은 메이지 신정부의 국체(國體) 형성이라는 이념적 도구로서 창가를 이용했다. 다시 말해 메이지정부의 서양음악 도입의 근저에 있던 것은 ‘국민형성(國民形成)’을 위한 도구로서 창가를 이용한 것이었지 예술이라는 개념은 안중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학성지(敎學聖旨)’⋅‘교육칙어(敎育勅語)’에서 말하는 ‘충군애국(忠君愛國)’과 ‘인의충효(仁義忠孝)’이라는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국민사상의 창조였으며, ‘덕육(德育)’ 교육을 통한 ‘덕성(德性)의 함양(涵養)’이라는 교육의 가치는 창가교육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되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