鑑眞은 753년에 일본에 건너와서 戒律과 天台教學을 전함으로써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격의 일본 불교가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때문에 감진의 渡日은 飛鳥시대의 불교전래에 버금가는 일본불 교사의 대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당으로부터는 絶域에 해당되었고, 험한 바다 너머에 위치하였기에 지옥의 문이라고까지 인식되 던 곳이었다. 감진은 이미 명망있는 고승이었지만, 12년간의 온갖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도일의 뜻을 이루었 다. 이 때문에 감진은 왜 도일을 결심했는가에 대한 연구가 일찍부터 이루어져왔다. 본고는 이 문제에 관한 선 행연구의 검토를 주된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 배경과 의의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먼저, 聖徳太子敬慕説은 일본 천태종의 성립 및 전개에 중심축을 이루는 것이지만, 이 연구의 기초사료인 『 東征傳』과 『名記傳』의 기사를 엄밀히 분석해보면 감진의 발언과 일본 승려들의 발언은 서로 엇갈리고 있 어서 감진이 성덕태자를 경모하여 도일에 이르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곤란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당의 스파이설은 나라시대의 정치사에 대한 인식의 상위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 자체는 검토의 대상은 아니 나, 일본 견당사의 傳戒師 요청 경위에 대한 문제의식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었으며, 이는 감진 도 일이후의 불교계의 반응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어서, 慧思신앙설은 중국인 학자에 의하여 제기된 것으로, 감진이 혜사의 後身을 쫒아 일본에 건너가게 되 었다는 견해이다. 중국측 입장에서의 시각과 사료의 사용으로 그동안 일본인의 관점에 의해 이루어져온 연구 에 일석을 던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혜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감진과 혜사, 천태신앙과의 관 계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점이 아쉽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천태불교포교설은 『名記傳』의 기사를 근거로 감진과 그의 제자들이 천태종을 전하기 위하여 도일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감진과 그 일행의 일본에서의 행적을 보면, 천태불교를 포교하기 위한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으므로, 설득력이 약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처럼, 감진의 도일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을 찾기 어렵다. 감진에 관해서는 당시의 다른 고승보다 많은 사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위대한 승려로써의 감진의 이미지에 가려져 그 실상이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 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일시점이나 방법론에서 나아가 다양한 프리즘을 이용하여 스펙트럼을 넓혀서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