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论周禮的文化内涵及现代价值 KCI 등재

景紅艶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90집 2020.03 pp.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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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周禮)는 중국 예악문화의 연원이 자기원이다. 그 문화내용의 주요 부분은 선진(先秦)시대의 ‘삼례’(三禮)에서 비롯되며, 내용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예악 문화, 귀족생활의 의례제도와 관련된 예악 제도와 이론의 세부분으로 구성된다. ‘주례’의 내용은 중국전통문화의 핵심정신을 이루는데, 예스럽기도 하지만 젊고 새로운 부분도 있다. 오늘날 현대국가를 통치하는 데에도 정치수단과 운영 철학에 있어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개체의 사상 가치와 도덕정신에 대해서도 여전히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Zhou Li is the origin of Chinese ritual music culture. Its cultural connotations mainly come from the ‘three courtesies’ of Pre-Qin society. It consists of three parts: the ritual music culture at the national level, the etiquette system of aristocratic life, and the related rites and music theories. The content of Zhou Li has formed the core of Chinese traditional culture. It is ancient and young. It not only inspires modern society to govern the society, but also plays a guiding role in the ideological value and moral spirit of the individual living in the society. It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exchange and communication between globalized countries and man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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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禮』 考工記의 ‘營國’ 원칙과 前漢 長安城의 구조

박한제

[NRF 연계] 중국고중세사학회 중국고중세사연구 Vol.34 2014.11 pp.4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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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论文通过检索史料,得出两点结论。第一,《周礼ㆍ考工记》的“营国”条规定的是什么朝代,什么样的都城模式。 第二, 回答了中国第一个统一帝国——西汉的都城长安城,是否是在《周礼》的影响下构建的。首先,把根据《周礼ㆍ考工记》的原则建造出的都城是(洛)邑(今河南洛阳市)与齐国临淄城(今山东淄博市)。其次,从西汉长安城的建筑结构来看,在《周礼》中提示的“中央宫阙”、“面朝后市”、“左祖右社”、“左右民廛”的四原则中,除了“面朝后市”原则以外,都不太符合那个原则。西汉长安城的城门数字以及道路的排列等,符合《周礼》的原则。《周礼》的确对后世影响很大。城市平面为方型,经纬相等,十二座城门平均分布在四面,每个面都有三座城门,城门有三条门道,其宽度正好根据车轨的宽度,这些都是受到《周礼》的影响,说明《周礼》的原则在建造西汉长安城方面得到一定程度体现。不过,我们考察西汉长安城的建筑布局结构,首先要考虑的是,长安城虽然符合《周礼ㆍ考工记》建设都城的一般原则,但是与隋唐时代的复城结构的长安城相比,西汉长安城的建筑布局结构是单城结构,这就是两者间的最大的差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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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淸 思想史의 成果와 課題 -이탁오의 사상 연구를 중심으로-

신용철

[NRF 연계] 명청사학회 명청사연구 Vol.19 2003.10 pp.6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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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友鼎 명문의 戰役과 인물을 통해 본 周厲王의 권력

이유표

[NRF 연계] 수선사학회 사림 Vol.61 2017.07 pp.30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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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友鼎,1980年出土于陕西省西安市长安区斗门镇,现藏陕西历史博物馆,通高51厘米、口径50厘米、腹深31厘米,重35公斤。形制为立耳圜底,腹较深,三蹄足,口沿下饰两道弦纹。其断代为西周厉王时期。腹内壁铸有铭文二百七十九字,记载了西周王朝晚期时击退猃狁侵犯的历史事实。笔者认为这篇铭文有三个方面的重要意义:一,从猃狁入侵到多友出征击退之,详细记载了其战事始末;二,此铭所见主要人物为周王、武公、多友,他们之间的关系显得很凸出:此铭所见军事命令、献俘、赏赐,在“周王和武公”、“武公和多友”的关系下分别进行;三,通过分析本铭,可以管窥当时厉王的权力。 首先,讨论多友鼎铭文所见的军事问题。一,重构当时的战役过程:战争爆发->战争命令->战况报告->献俘->战功赏赐;二,探讨猃狁的内侵目的和周邦的应战目的:猃狁速战速决地内侵,俘获京师和筍地的人民,同时理应亦掠夺了当地的物资,这应该是他们入侵的目的所在,多友在收复京师和筍后,继续追击猃狁而作战,将被猃狁所俘虏的人民成功地营救后,才班师回朝,由此可见,多友击退猃狁的目的不在于收复土地,而在于试图将人民、物资损失降到最低。三,分析战争期间和行军里程,多友一天要行军至少42公里以上(直线距离),可见这次战役十万火急的情况。 其次,探讨周王-贵族-私属武将(家臣)之间的领导关系。贵族接受周王之册命,成为周王之臣,贵族家臣以“策名委质”与贵族结成主从关系,周王对贵族,贵族对家臣要求“勿废朕命”之态度,贵族为周王,家臣为贵族坚持“不敢墜”“不知二命”的态度。不过,周王与贵族的家臣之间,没有册命关系,因此,周王对贵族家臣不能要求“勿废朕命”的态度,贵族家臣也不必为周王“不敢墜”“不知二命”。这种重层性私属关系,从西周战争铜器铭文所见的战争命令、把握战况、战功赏赐、蔑历和对扬等关系中,可以得到验证。 最后,试图管窥当时厉王的权力。传世文献所示“厉王无道”,则西周晚期国内外情况不稳定,猃狁的入侵也可以证明这一点。虽然如此,此铭所示以周王为中心的军事领导机制也照样顺利运作。那么这是否与传世文献有矛盾?夷王和历王前期,征伐犬戎、南国孳,周王拥有很强大的权力。但是多友鼎铭文所见的厉王的权力,恐怕并非如此。应该注意的是,铭文所示击退猃狁的军事力量,并非系自周王,而是系自武公。此外,从禹鼎铭文中也可得到旁证:噩侯驭方反周,周王无法以自己的军事力量应对反叛。此时便由禹率领武公的“公戎车”平定反叛,生擒鄂侯驭方,并且武公能对自己的私属赏赐“圭瓚”。据此可以推测,当时厉王自己的军事实力不是很强,主要依靠武公等贵族的军事力量来平叛和拒止外族的入侵。总之,多友鼎铭文所示的厉王晚期的权力,并非“无道”的独裁者,也不是贤君,而只是治上、军事上要依靠武公等贵族的懦弱的君主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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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공간을 연결하는 노래 - 저우쉬안, 덩리쥔, 리꾸이를 중심으로

최명숙

[NRF 연계] 한국중국문화학회 중국학논총 Vol.87 2025.09 pp.24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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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저우쉬안, 덩리쥔, 리꾸이라는 세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음악이 어떻게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상호 연계되어 왔는지를 고찰하였다. 특히 저우쉬안의 음악을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문화적 다리로 해석하며, 그녀의 감성적 창법이 후대 대중가수들에게 어떻게 계승되고 변용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 저우쉬안이 창조한 기성 창법은 중국 현대 대중음악의 기초를 형성했으며, 대륙과 홍콩, 대만 등 중화권 음악의 상호 교류와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덩리쥔은 저우쉬안의 음악을 리메이크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서정적 감수성을 넓은 지역으로 확장시켰으며, 그녀의 음악은 정치적 이념을 넘어선 감정의 언어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리꾸이에게로 이어지는데, 리꾸이는 1980년대 신시기 중국에서 저우쉬안과 덩리쥔의 음악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 감성에 부합하는 민족풍 서정가곡의 음악풍을 창출해냈다. 본 연구는 이들 세 인물의 음악을 통해, 중국 유행음악의 흐름 속에서 여성 가수들이 수행한 문화적 역할과 예술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감성의 연속성과 음악적 변용의 과정을 역사적 시야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This study examines how the music of three iconic female singers?Zhou Xuan, Teresa Teng, and Li Guyi?acquired cultural significance within their respective sociocultural contexts and became interconnected across time and space. Rather than viewing Zhou Xuan’s music as a relic of the past, this research interprets her work as a cultural bridge linking the past, present, and future. It traces how her emotional vocal style, particularly her signature qisheng (breathy voice) technique, was inherited and transformed by subsequent generations of popular singers. Zhou’s innovative style not only laid the foundation for modern Chinese popular music but also significantly influenced musical exchange and development across Mainland China, Hong Kong, and Taiwan. Teresa Teng reinterpreted Zhou Xuan’s classics with a modern sensibility, expanding the lyrical and emotional reach of Chinese popular music across Greater China and Southeast Asia. Her music functioned as a universal emotional language, transcending political ideologies. This emotional lineage continued with Li Guyi, who in 1980s reform-era China, inherited and adapted the musical traditions of Zhou and Teng. Li fused elegant melodies with a lyrical, folk-infused vocal style that resonated with the sentiment of a new era. Through an exploration of the musical trajectories of these three singers, this study re-evaluates the cultural roles and artistic significance of female vocalists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Chinese popular music. It highlights the continuity of emotional expression and the evolving nature of vocal styles across different peri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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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과 원세개・이홍장・주복의 교류(1881~1887) - 장정체제 구축과 종속의 네트워크 -

박은숙

[NRF 연계] 고려사학회 韓國史學報 Vol.61 2015.11 pp.52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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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은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개화와 자주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유교적 가치를 지키면서 서구의 기술을 수용하려는 동도서기론자로 평가되고 있지만, 더욱 주목되는 것은 그가 중국통 외교가로서 근대 이행기 한중관계 재편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이다. 김윤식은 영선사로 청에 파견되었던 1881년 말부터 청의 이홍장-주복-원세개 라인과 교류하였다. 김윤식과 청인들의 인적 관계망은 장정체제를 구축하고, 조선의 정치・경제・외교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가로막고 청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통로로 작동했다. 김윤식은 1882년 7월초 조선으로 출병하는 배 안에서 진압군 원세개와 처음 만났다. 24세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밤낮으로 어울려 조선 문제와 양국 관계를 모의했다. 두 사람은 청국식 근대화를 추동하고, 청선구류사건・이범진사건 등에 개입하여 장정체제의 구축과 청의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갑신정변 후 조선의 외교 수장과 청의 파견 총리로서 재회한 두 사람은 조러밀약과 조불조약, 거문도사건・백두산정계비 등 조선의 정치・외교와 통상 및 국경 문제 등을 협의・조율했다. 그러나 대부분 사안이 청의 의도대로 진행되었고, 김윤식은 매사를 원세개의 명령에 따르는 ‘袁黨’으로 지목되었다. 두 사람의 결탁은 조선의 주권과 이권 상실, 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이권 실현의 도구로 작동했다. 조선의 외교관 김윤식과 청의 대조선정책 라인 원세개・주복・이홍장과의 교류는 외교라는 공적 업무를 매개로 형성된 관계였다. 따라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꾀하였다. 그러나 상하 관계를 천명한 상국과 속방의 외교관의 교제는 불평등했으며, 친청노선을 고수했던 김윤식은 더욱더 종속적이었다. 그들의 교류는 조선의 자주권과 이권 상실로 이어졌고, 장정체제 구축과 종속의 기제로 작동했다. 결국 반청자주를 꿈꾸던 고종과 중국의 권력자 사이에서 줄타기 했던 김윤식은 토사구팽 당하여 8년여를 유폐되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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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易의 禮를 적용한 鄭玄 『周易』 해석의 특징 고찰

안승우

[NRF 연계] 한국공자학회 孔子學 Vol.37 2019.02 pp.6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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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鄭玄의 『周易』 注를 중심으로 하여, 易의 세 가지 의미와 禮의 상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周易』 鼎卦 九四 爻辭, 離卦 九四 爻辭, 旅卦 初六 爻辭에 대한 정현의 해석을 중심으로, 『周禮』에 기반한 정현의 禮에 관한 사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정현이 언급한 禮의 관계적 질서와 도덕적 의미, 그리고 禮를 어긴 데 대한 엄중한 처벌에 관한 사유를 고찰함으로써, 형벌과 罪의 절대적 기준, 특히 不易의 행위기준으로서의 禮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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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王曆② - 周代의 曆法 一考察

서정화

[NRF 연계] 한국동양철학회 동양철학 Vol.47 2017.07 pp.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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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경문은 태음력을 기반으로 동지가 포함된 달을 1월로 시작하며 그때를 春이라고 명명한다. 아울러 그것의 置閏에 대한 기사는 단 두 건만 확인된다. 본 논의에서는 『좌전』의 추가적인 윤월 기사를 통해 『춘추』왕력에서 활용한 치윤의 방법에 관해 추론해 보았다. 『좌전』 「文公」 元年의 “나머지 날수들을 ‘끝’으로 보낸다.”라는 기록에서의 그 ‘끝’을 연말로 이해하여 歲末置閏으로 인식한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그에 대해 ‘時末置閏’ 내지는 ‘中氣가 들어 있지 않은 달로의 치윤’으로 해석하였다. 『서경』 「泰誓」 「牧誓」 「武成」편 등 ‘武王伐殷’ 기사가 서술된 내용 속에서는 당시의 역수가 『춘추』왕력과 동일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죽서기년』의 그와 관련된 기록들에서도 동일한 역수가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周初부터 적어도 『춘추』 경문이 만들어진 춘추시대까지는 왕력이라고 하는 주력이 사용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편, 당대의 역법 체계가 비교적 잘 수록되어 있는 『맹자』와 『좌전』을 통해 본다면, 전국시대에는 周曆과 夏曆이 혼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漢代 이후에는 ‘동짓달=春’이라는 계절명이 더 이상 일반적인 관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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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白詩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연구 — 시의 해석과 상상력의 문제

서용준

[NRF 연계] 중국어문학회 중국어문학지 Vol.66 2019.03 pp.5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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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aggerated metaphor for their common sense and that the content was just an emotional expression that said the ship had disappeared far away. This, however, was the result of not understanding that Li Bai used his imagination to modify the existing chinese poetic precedent. Li Bai cleverly used the precedent poetic quotation-the ship of immortal hermit, to make his farewell poem. The ship that had disappeared into the sky in his eyes was actually a ship of immortal hermit from that long literary tradition. Meng Li Bai’s quatrain, ‘Yellow crane tower sending Meng Haoran leaving for Yang Zhou’ is very famous farewell song of Chinese classical poetry. But even though it is famous to modern readers, this song has been difficult to properly understand it’s literary quality. This is mostly because the expressions in the third and fourth lines of poetry were out of line with the general public’s understanding. The poet said that Meng Haoran’s boat had flown out of the sky, but people understood that this was an Haoran was the flying immortal himself who flew in that immortal ship. The ship of immortal hermit performed the friendly function of the poetry in traditional Chinese poetics. Li Bai displayed his outstanding poetic ability and was able to capture both feelings of sadness and hope in his poem, ‘Yellow crane tower sending Meng Haoran leaving for Yang Zhou’. We need to pay more attention to his hyperbole and imaginary ability and their literary utility when reading Li Bai’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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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의 관점에서 본 다산(茶山) 『주역(周易)』 해석의 특징

안승우

[NRF 연계] 한국유교학회 유교사상문화연구 Vol.76 2019.06 pp.8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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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주역(周易)』 해석의 특징 가운에 하나는 예(禮)를 통해 『주역』을 해석한다는 점이다. 다산의 경우처럼 『주례』 및 고대 주대(周代)의 예제를 통해 본격적으로 『주역』을 해석하기 시작한 시초는 거슬러 올라가 정현의 『주역』 해석에서 발견된다. 이처럼 예를 통해 『주역』을 해석한다는 점에서 정현과 다산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산은 일부 정현의 견해, 예컨대 역(易)의 의미에 대한 정현의 해석과 정현의 『주례』 해석 등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특히 다산은 정현이 제시한 역(易)의 세 가지 의미인 이간(易簡), 변역(變易), 불역(不易) 가운데 변역만을 인정했고 나머지 이간과 불역은 잘못된 학설로 평가했다. 본 논문은 다산이 『주역』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주목했던 예에 대한 사유를 정현의 『주역』 해석과의 비교, 다산이 파악한 『주역』의 변화의 원리와 예(禮)의 원리와의 연관성, 다산이 이해한 『주역』의 현실적 적용을 위한 문헌적 특성과 예의 실천성을 위한 모색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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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 제도와 牛李黨爭을 통하여 본<周秦行紀> 서사의 비평적 고찰

송윤미

[NRF 연계] 한국중문학회 중국문학연구 Vol.32 2006.06 pp.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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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민족의 한중(일) 대위법 - 리둥메이, 『이광수와 저우쭤런의 민족문학론』, 소명출판, 2020

정한나

[NRF 연계] 상허학회 상허학보 Vol.62 2021.06 pp.419-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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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둥메이의 『이광수와 저우쭤런의 민족문학론』의 주요 테마인 상호부조론, 민족진화론, 민족문학론을 중심으로 저자의 논의를 정리하고 이와 관련한 필자의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 리둥메이는 이광수와 저우쭤런이 각각 조선과 중국에서 근대문학의 개념을 정초했을 뿐 아니라, 사상적 유사성이 크다는 데 주목한다. 저자는 이들의 민족론과 문학론을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귀스타브 르 봉과 크로포트킨의 사상을 수용, 전유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이처럼 이광수와 저우쭤런은 실제로 교류하지 않았음에도 사상적, 전기적으로 상당한 공통점을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공통점의 뿌리에 두 사람의 일본 유학이 있다고 본다. 1906~1910년 무렵 일본에서 접했던 서구 사상이 이들 사상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과 르 봉의 『민족 진화의 심리학적 법칙』은 이광수와 저우쭤런은 민족성 개조론과 민족문학론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이광수와 저우쭤런은 아나키즘 사상에 근거한 국가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생존의 원리로서 상호부조론을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불변하는 근본적인 민족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가변적인 부속적 민족성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면서 민족개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원리를 통해 민족의 심리와 신체는 전면 개조 가능한 것으로 표상된다. 마지막으로 이광수와 저우쭤런은 근대적 개념의 문학 개념을 정착시키고 이를 민족문학으로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프로문학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책은 자료에 근거한 실증적 연구방법론으로 다양한 학문이 국경을 넘나드는 정황을 면밀히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광수와 저우쭤런의 사상을 섬세하게 조망한다. 저자의 이러한 방법론은 한중 비교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의의가 있다.

This article summarizes A Study on the Modern Literature Theory of Lee Gwangsu and Zhou Zuoren written by Dong-mei LI, focusing on the three main themes, which are mutual aid theory, national evolution, and national literature discourse, and raises some questions based on LI’s argue. LI emphasizes that Lee Gwangsu and Zhou Zuoren, who established the concept of modern literature in their own countries, have great similarities in social roles and thought. LI analyzes the national and literary discourses of the two characters, then investigates that they adopted and appropriated Gustave Le Bon and Pyotr Alekseyevich Kropotkin’s theory. In this way, even though not interacting actually, they showed considerable ideological and biographical commonalities. LI regards that their experience studying in Japan would be the cause of these commonailites. It is said that the Western thoughts they encountered in Japan around 1906-1910 became the foundation of their thoughts. Kropotkin’s mutual aid theory and Le Bon’s The Psychology of Peoples serve as the theoretical basis for the theory of national reform and the theory of national literature. Lee Gwangsu and Zhou Zuoren shared a view of the nation based on anarchism and emphasized the mutual aid theory as a principle of survival. In addition, evaluating the fundamental nationality of their own positively, both of them argued that it is possible to reform the nationality by correcting negative subsidiary ethnicity. Through this principle, the psychology and body of the nation are represented as completely changeable. Lastly, Gwangsu Lee and Zhou Zu-Len settled the modern concept of literature and tried to establish it as national literature, while taking a critical stance toward proletarian literature. This book is an empirical research methodology based on data, which closely examines the circumstances in which various disciplines across borders, and provides a detailed view of the thoughts of Lee Gwangsu and Zhou Zuoren. The author’s methodology is meaningful in that it has opened a new horizon for comparative research between Korea an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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