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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에서 후쿠시마까지, 더 넓은 지평으로
김지환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4-5
가을을 만날 때면 읽는 시 : 마리아 라이너 릴케의 「가을날」
박정은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6-10
가을, 은밀한 희망 : 리스트, 세 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중 〈탄식Un sospiro〉
신은주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1-15
클랙슨의 경제학
김금수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6-25
쳇지피티Chat GPT와 포스트휴먼Posthuman
신승환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7-35
너무 많고 너무 적은 문제
이수지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36-46
청년, 기성세대의 책임을 져야 하는 세대인가
박은지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47-52
‘지상의 평화’와 교회
강주석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53-61
기로에 선 활동수녀회, 예언자적 길을 찾아
이현숙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62-69
나는 이런 ‘세계청년대회’를 꿈꾼다!
홍예진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70-79
그리스도인과 학살 : 그리스도인은 평화 감수성을 키워가야 한다
박문수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80-92
‘그리스도 왕인 예수’에 관한 새로운 이해
디아무드 오무쿠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93-100
내가 보란 듯이 잘살아가려는 이유 : 어느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
채동엽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01-104
특집_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10주년 : ‘복음의 기쁨’과 오늘의 교회
우리신학연구소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105
「복음의 기쁨」이 열어준 희망의 10년, 교회는 어디까지 왔나?
국춘심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06-119
성직주의와 교회쇄신, 「복음의 기쁨」은 어떻게 말하는가?
박상훈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20-132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가는 ‘복음의 기쁨’
이미영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33-145
한 ‘그리스도인’의 「복음의 기쁨」 읽기
정경일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46-159
여성사제 서품, ‘쇄신’과 ‘단절’의 기로에서
조민아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60-171
보편적 출생신고와 이주아동
이진혜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72-178
바르예수를 넘어 바오로가 되다 : 독립 선교사 바오로의 탄생
김진호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79-189
바오로는 예수를 배신했는가 : 존 도미니크 크로산의 『첫 번째 바오로의 복음』과 『예수는 누구인가』
조현진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190-200
나의 채식운동 : 채식은 인간종우월주의와 종차별주의를 뛰어넘는 시작이다
한주영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01-210
정답이 없는 질문에 나를 가두지 않는 삶
정다빈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11-224
프란치스코 교황과 나눈 대화
박지혜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26-227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박승용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28-229
남을 돕고 나눌 때 참으로 행복해지는 삶
이효정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30-231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 디에디트 〈디에디트〉
박형대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32-233
매일을 ‘특별함’으로 만들어주는 노래 〈티키틱〉
차노엘
가톨릭 평론 제41호 (2023.09) pp.234-235